[현장 - 서울미술관 한국 근현대 거장 36인전]이중섭 ‘황소’부터 운보 ‘예수’까지
근현대 걸작이 한 자리에
▲‘오 홀리 나잇’에 설치된 운보 김기창 작 ‘예수의 생애’ 설치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왕진오 기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당당한 수탉과 그 뒤를 묵묵히 따라오는 암탉의 애틋함은 이중섭 작가가 일본인 부인 마사코와 결혼 후 첫날밤의 느낌을 그려낸 것이죠.”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회장이 이중섭의 ‘환희’를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94)에게 설명한 대목이다.
작품마다 소장 사연이 다 다른,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최영림, 김환기 등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거장(巨匠) 36인의 예술적 궤적을 따라 한국 미술의 저력과 가능성을 되짚어 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마련한 ‘2014 서울미술관 소장품’전을 통해 공개된 한국 미술 명작 70여 점을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57) 회장의 30년 세월이 묻어나는 컬렉션 중 특히 아끼는 작품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작품들로 구성됐다. 소장품 중 3분 1에 해당하는 작품을 한꺼번에 공개한 것이다.
▲출품된 박수근의 작품을 큐레이터가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안병광 회장의 ‘작품찾아 30년’ 스토리 함께
안 회장은 “30년 동안 제가 모은 작품을 공개해 따듯한 감성을 공유했으면 하는 의미로 마련했습니다. 개관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는 미술관 구성원 전체가 힘을 모아 마련한 자리”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한국 미술을 빛낸 36인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는 ‘거장’전과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을 선보이는 ‘오, 홀리나잇!’으로 구성됐다.
‘거장’전에는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 최고가인 35억 6000만 원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중섭(1916∼1956)의 ‘황소’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마동의 ‘메밀꽃 필 무렵’도 안 회장이 매우 아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은 안 회장의 고향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것.
▲서울미술관 거장전에 공개된 이중섭의 ‘황소’. 사진 = 왕진오 기자
박수근(1914∼1965)의 ‘우물가’, 천경자(90)의 ‘청춘’, 김환기(1913∼1974)의 ‘섬 스케치’, 이대원(1921∼2005)의 ‘사과나무’, 이인성(1912∼1950)의 ‘남산병원 수술실’ 등 보기 드문 명작도 함께한다.
근현대 거장들의 유산인 이들 작품은 전통 양식과 새로운 서구 양식이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근현대미술이 태어났음을, 그리고 한국 미술의 근간을 이룬 거장들의 노고와 열정이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궤적까지 보여준다.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으로 구성된 ‘오, 홀리나잇’은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재고해 보는 의미로 열렸다.
서울미술관의 주요 소장품 중 하나이자 운보 김기창(1913∼2001)의 대표작인 ‘예수의 생애’ 시리즈는 2001년 모 대기업이 일괄 구매한 작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 명동성당에 특별 전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회장. 사진 = 왕진오 기자
신약성서의 주요 장면들을 30점의 화폭에 압축적으로 담은 한국적 성화이다.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를 비롯해 조선시대 복색을 한 등장인물들, 우리 전통 가옥이 유연한 세필로 묘사돼 생생한 현장감의 전통 풍속화를 연상시킨다.
다른 나라의 성화에서는 볼 수 없는 독자적인 기법으로 그려진 예수의 일대기는, 기독교가 토착화되었음을 드러내는 한국적 성화로서 가치가 높다. 또한 빠른 운필과 뛰어난 구성력 등 운보의 드높은 회화적 성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회화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작품들에는 작품 소장 과정에서 안 회장이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가 곁들여졌다. 자신의 첫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이대원의 ‘사과나무’,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오치균의 ‘감’, 그리고 5년 동안 소장가를 추적한 끝에 구입한 ‘예수의 생애’ 등 기업가로서 또 미술애호가로서 그의 30년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2015년 2월 15일까지.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