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현대자동차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전]아버지 ‘참외트럭’에 추억이 흐르고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전에 전시된 김종구의 작품 ‘아버지의 풍경’.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트렁크에 놓인 안락한 소파, 여행용 가방으로 변신한 자동차 시트,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등 자동차가 폐차될 때까지 사람들과 함께했던 부품들이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해 화려한 모터쇼 행사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들은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0월 17일∼11월 4일 실시한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 캠페인을 통해 폐차 예정이거나 중고차 판매로 차량을 떠나보내는 현대차 고객들의 차량과 관련된 사연 1만 8000여 건을 응모 받았고, 그 중 14명을 선정해 그들이 타던 차량과 부품을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현대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현장의 모습이다.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는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1월부터 전개한 캠페인으로 불과 3개월여 만에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자동차의 기술과 성능 디자인을 중시하던 기존 마케팅이 아닌 사용자인 사람의 감성에 초점을 맞춘 글로벌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용백 작 ‘포터를 위한 기념비 엔젤솔저’. 사진 = 왕진오 기자
이민을 가기 위해 차를 판 노수린(45)씨의 애마 베라크루즈는 노수린씨가 앉았던 운전석을 뜯어내 아티스트 이광호(34)가 ‘Luggage, Woven Bag’이라는 여행 가방으로 만들었고, 30년 택시운전기사에서 은퇴하는 김영귀(66)씨의 택시 그랜저 XG는 아티스트 칸(46)에 의해 뒷좌석을 이용한 소파작품인 ‘미스터 택시(Mr. Taxi)’로 만들어졌다. ‘이제는 뒷좌석에 편히 앉아 쉬시라’는 의미의 설치작품이다.
또, 방현우(37)-허윤실(36) 부부 등 6명의 작가가 그룹으로 활동하는 에브리웨어는 연극배우 이도엽(42)씨가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썼던 산타페를 ‘메모리얼 드라이브’라는 미디어 작품으로 만들었다. 핸들을 돌리면 전면에 설치된 후방카메라를 통해 이 씨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천천히 줌인(zoom-in)된다.
사진작가 김찬홍(60)씨가 20년 동안 탔던 갤로퍼는 아티스트 김병호(41)에 의해 ‘8 프레임즈(Eight Frames)’라는 설치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은하(27)씨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결혼을 해 엄마가 될 때까지 20년 동안 탔던 아반떼는 신유라 작가에 의해 차의 부품들을 엮은 샹들리에로 다시 태어났다.
전시장 한 가운데 펼쳐진 쇳가루 산수화가 김종구(52)의 ‘참외향 가득한 트럭’에는 참외 농가에서 사용된 운반용 포터 트럭이 폐차되기 직전의 모습으로 우뚝서있다.
▲DDP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전의 사진작품들. 사진 = 왕진오 기자
이 차량은 경북 상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포터를 사서 농사도 잘 되고 자신도 편히 공부를 했지만, 참외값 폭락으로 경북 곳곳에 팔러 다니던 부모님이 이제 곧 칠순을 맞게 된 현재 평생 참외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가 처음 샀던 포터를 기억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아들 김중희(31)씨의 사연을 듣고 작업으로 펼쳤다.
포터의 몸체를 그라인더로 갈아서 바닥에 커다란 광목을 펼쳐놓고 아들이 바라본 아버지의 풍경, 즉 거대한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이룩한 삶의 모습을 써내려갔다. 작가의 행위는 불완전한 텍스트들과 함께 바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뼈대만 남겨진 포터의 앞 유리에 투사된다.
김 작가는 “참외향 가득한 트럭 사연을 읽고 아버지의 일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졌죠. 트럭은 아버지의 동료이자 가족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제 아버지와 함께 멀리까지 달릴 수는 없지만 가정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마을의 상징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선기 작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사랑벨트’. 사진 = 왕진오 기자
전시장 한편에는 그네에 매달린 빨간색 소나타가 관람객들의 승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 차량은 작가 양수인(40)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이야기 그네’란 작품이다.
‘이야기 그네’는 어느 신인 영화감독의 현대자동차 소나타 Ⅱ에 얽힌 짧은 추억과 그에 대한 작가의 공감에서 출발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감독을 꿈꾸며 영화 촬영에 나선 의뢰자에게 폐차 직전의 소나타Ⅱ가 나타난다.
지낼 곳이 없어 차에서 먹고 잔다는 설정의 영화 속 주인공의 차는 ‘이야기 그네’로 재탄생했다. 누구나 문을 열고 올라타면, 그 순간 외부로부터 차단된 은밀한 공간에서 소나타Ⅱ의 주인이었던 영화감독의 낯선 목소리를 듣게 된다.
▲한진수의 ‘Flying DOOR Clock’. 사진 = 왕진오 기자
“당신이 경험했거나 상상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세요” 관객은 상대가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고해성사하듯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때부터 그네는 이야기가 멈출 때 까지 서서히 흔들린다.
스쿨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처럼 아이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형상화한 박선기(49)의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사랑벨트’는 청각장애 어린이들이 사랑하던 스쿨버스를 작품으로 만들어달라는 교사 윤지훈(35)씨의 사연에 한국구화학교 학생들과 함께 학교로 달렸던 38인승 통학버스에 담긴 아이들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우주+림희영의 작품 ‘진심을 그대에, 붉은 상어’. 사진 = 왕진오 기자
박선기는 스쿨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처럼 아이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형상화 해 부조 형식에다 세 개의 레이어 와 배경 조명을 통해 서로 중첩된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들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38인승 스쿨버스 좌석 안전벨트를 연결해 하나의 스크린을 만들어 그 위에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랑벨트’에는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염원하는 작가의 바램도 담겼다.
한편, 현대차는 이들의 자동차가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이 캠페인은 지난해 11월 한국광고PR실학회가 수여하는 광고상과 2014 서울영상광고제 동상을 받은바 있으며 ‘산타페 그리고 프로포즈편’ TV 광고는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선정한 11월의 베스트 광고에 뽑히기도 했다.
인생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자동차를 아티스트 14명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전시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 展은 2월 17일까지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알림 1관에서 관람객들과의 소중한 만남을 이어간다.
▲신유라 작 ‘숨겨진 기억들’을 보는 관람객. 사진 = 왕진오 기자
광택의 2010년대 가고 이제 전통·재생의 2010년대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차장
예술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가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보인다. 대규모 모뉴멘탈 건축과 애써 광택 낸 예술작품이 각광받던 2000년대 규모의 경제터널을 지나, 이제 우리는 재생, 환경, 참여의 가치가 강조되고 있는 2010년대 터널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실례로, 중국 전통건물의 벽돌과 재료를 재활용해 새로운 건축을 선보인 왕슈가 바라본 전통의 가치. 그리고 재활용 종이를 활용한 시게루 반의 발상은 2012년과 2014년 프리츠커 건축상으로 이어지며, 사람들로 하여금 전통, 재생, 환경, 참여의 의미에 대해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2015년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서 있을 ‘현대 커미션’ 첫 번째 작가인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의 설치 작품도 앞서 언급한 커다란 맥락 안에서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전통, 재생, 환경, 참여… 이들 키워드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로 ‘인간’을 추출해 보았다.
크게는 인간에 대한 이해, 작게는 고객에 대한 이해를 출발점으로 고민한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는 자동차, 참여 작가, 그리고 고객의 추억이 만들어낸 3중주이다. 빠듯한 전시 일정 속에서도 베니스 비엔날레, MoMA PS1 등 화려한 이력의 작가 분들이 기꺼이 이번 전시에 참여해 주셨다. 14명의 설치미술 작가 전시, 4명의 사진작가 전시, 대학생 공모전,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영상 작업까지, 각 섹션을 책임진 협력 파트너들의 밤낮을 잊은 기획과 인사이트가 모여서 만들어졌다.
그분들의 아이디어와 협력이 만들어낸 이 독특한 전시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을 만들어 내는 일, 그것이 현대차가 이번 전시에 기여한 작은 부분이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