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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명절이 끝나고 친분이 있는 기자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필자가 이즈음에 기자들에게 흔히 받는 질문은 “명절이 지나면 이혼 소송이 늘어나나요?” 하는 겁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명절증후군’, ‘명절이혼’ 등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명절증후군이라는 것을 마케팅의 재료로 삼으려고 시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과연 명절과 이혼이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을까요?
명절이 지나면 이혼 소송이 증가하는 것은 통계상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에도 명절 직후에 선임하는 가사사건이 늘어나기는 합니다.
그런데 명절 직후에는 다른 종류의 사건도 늘어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명절 직전에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사 갈등이 있더라도 명절 때까지는 어떻게든 갈등을 풀어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명절 전에는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명절 직후 이혼 소송이 증가한다는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명절이 있었던 달과 명절이 지난 다음 달에 접수된 사건 수를 비교하면서 명절이 지난 다음 달에 몇 %의 이혼 사건 접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명절이 있는 달에 접수된 사건의 수가 적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일단 명절 연휴를 제외하면 사건 접수를 실제로 할 수 있는 날이 줄어듭니다. 명절 연휴가 짧은 경우라도 거의 1주일가량의 평일(영업일)이 줄어듭니다.
일반적으로 휴일에 소송을 접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줄어든 출근 일수는 소송의 접수 사건 수에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필자는 일률적으로 명절이 있는 달과 그 다음 달에 접수된 이혼 사건 수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혼이나 상속과 관련한 가사 분쟁이 있다고 합시다. 명절에는 나름 가족 전체가 모일 기회가 되기 때문에 서로 모여서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행이 이 과정에서 잘 해결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명절 연휴가 끝난 후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가사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절은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 하기 마련이고, 명절만이라도 갈등을 감추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일단 분쟁을 묻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필자는 명절 직후에 마법처럼 가사사건이 해결되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 명절 연휴가 끝난 월요일 오전, 의뢰인으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합의가 됐으니 합의문 작성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명절 기간 중에 함께 이야기를 많이 하고 화해했다는 것입니다.
명절 증후군에 의한 소송? 사실과 달라
이 사건은 의뢰인의 가족 간 문제인데 쉽게 해결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크지 않은 쟁점일 수 있지만, 당사자의 자존심 문제와 결부돼 사건이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커다란 부분에서는 모두 합의했는데 크지 않은 부분이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양 당사자가 모두 힘든 상황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도 1년 넘게 쌍방이 크게 다투면서 법정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의외로 쉽게 해결됐습니다.
필자가 급히 상대방 측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니 역시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상대방 측 변호사와 합의서 작성을 마치고 나서 서로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위로의 뜻을 전한 바 있습니다.
한 사건을 가지고 장기간 다투다 보면 변호사들 간에는 (비록 법정에서는 적으로 마주할지 모르지만) 묘한 동지 의식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려운 사건이 종결됐다는 점에서 그리고 원만히 끝났다는 점에서 그런 감정이 생겨납니다.
필자의 경험상 명절 증후군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명절이 갈등의 기폭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단지 명절 기간에 있었던 감정싸움만으로 이혼에 이르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소위 명절 증후군이라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있었던 문제가 명절을 기점으로 해서 드러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명절 후에도 각종 뉴스에 가족 간의 안타까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자살한 이야기, 친척 간의 폭력행사 이야기, 명절 갈등으로 이혼하는 이야기 등 자극적인 기사가 명절이 죄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명절 관련 뉴스에서는 좀 더 훈훈한 이야기들을 많이 보았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필자의 명절을 위한 변명이었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