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다시, 한국정신의 의미를 묻다
갤러리그림손 기획전 ‘한국정신’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현대 한국 현대미술은 수많은 사조(思潮)와 화파(畵派)로 가득하다. 급변하는 시대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전 세계 흐름과 영향의 범람 속에서 살아가는 모양새다.
중국과 일본에도 여러 화풍과 사조가 있겠지만, 그래도 세계 미술시장에 중국은 중국만의 특색과 색감으로, 일본은 일본만의 화풍으로 자신들의 개성과 특징을 내놓았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에서는 중국답다, 또는 일본답다라는 평가가 일부 내려지기도 한다.
요즘 한국 젊은 작가들의 그림에 대해서도 “한국답다”는 말을 분명히 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것을 한국다운 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종상, 원형상-염원II, 160x130cm, 장판화, 2015
현대미술의 혼돈 속에서 한국만의 정신, 문화, 개념을 되짚어 보고 젊은 세대 미술가들과 차세대 작가들에게 한국정신의 근본적 중요성을 일깨워 주자는 의미로 ‘한국정신’ 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1부는 갤러리 그림손에서 3월 4일∼17일 2주간, 그리고 2부는 강릉 시립미술관에서 3월 25일∼4월 14일 3주간 전시될 예정이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이번 전시를 ‘다시, 한국정신의 의미를 묻다’라고 표현했다. 사실 ‘한국정신’이라는 단어는 진부하다. 오랫동안 회자된 말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적 미의식, 한국의 미의식 원형처럼 한국정신의 맥을 강조하는 주제전, 기획전이 많았다.
▲이종상, 원형상-순명, 146x116cm, 장판화, 2015
이번 기획전은 한국정신에 대한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던질 뿐이다. 그러면서 한국정신이 ‘오래된 미래’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또한 한국화, 서양화, 사진, 조각설치 등 다른 장르들이 한국정신이라는 주제 아래 모인 별난 전시이기도 하다.
한국화 형식실험의 출발점 된 이종상
수묵의 본성을 추구한 수묵화 운동, 고구려 고분벽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벽화 운동, 한국 산수의 원형을 추적한 원형상 시리즈, 그리고 동판 위에 금박을 붙이고 유약을 발라 고열로 접착시킨 동유화 등 한국화의 형식실험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시도와 제안들은 이종상(77)에게서 유래했다.
▲차기율,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 400x507x400cm(h), 자연목, 테라코타. 캔버스위 콘테, 2015
그 형식실험의 연장선에서 작가는 스스로 장판화로 명명한 일련의 그림들을 내놓았다. 근작으로 보기엔 꽤나 오랫동안 숙성시켜온 그림들이다. 알다시피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종이장판을 방바닥재로 사용해왔다.
한국인처럼 방바닥에 종이를 깔고 사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이장판은 한국인 고유의 생활감정과 철학이 긷든 예로 봐도 되겠다.
종이 장판은 사이즈가 한정돼 있어서 마치 조각보가 그런 것처럼 면과 면을 연이어 붙여야 한다. 이런 연유로 종이장판에는 면과 면이 어우러진 면 구성이 있고 화면 운영이 있다. 여기에 치자 물을 들여 은근한 색채감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김선두, 느린동경-다시오다, 160x120cm, 장지에 먹, 분채, 2008
작가의 형식실험은 생활오브제를 직접 도입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술의 계기를 발견하는 경우로 심화된다.
서정태(63) 그림의 특징은 푸른 색조의 배경화면과 그 위에 덧그려진 왜곡된 인물, 그리고 푸른 색조와 어우러진 초상이 불러일으키는 밤의 서정을 꼽을 수 있다. 청색과 왜곡 그리고 밤 정도로 키워드가 정리된다. 서양식 논법이긴 하지만, 청색은 우울한 기질을 상징한다. 우울한 기질이 좀 그렇다면 내면적이고 사색적인 성향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차명희(68)는 캔버스나 종이 위에 안료로 밑칠을 한 후, 그 칠이 채 마르기 전에 그 위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린다. 무채색 화면에 무심하게 드리워진 선들을 보고 있으면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정경이 떠오른다.
김선두(57)는 사회학적 의미가 뚜렷한 그림으로 시작했다. 줄을 타는 광대와 곡마단, 한잔 술로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포장마차 같은 그림들이다. 작가는 남도의 풍경에 눈을 돌렸다. 여기서 남도는 장소의 의미보다는 우리 산하와 우리 정서를 대변해주는 보편적인 의미가 된다.
각기 다른 매체와 색깔-기법으로 한국정신을 추구한 작가들
김황록(54)의 조각은 입체그림이라고 불릴 만큼 회화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더러는 실제 자연풍경과 같은 그림을 그려 조각으로 재현된 입체풍경과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
민병헌(60)의 흑백사진은 컬러사진보다 강렬하다. 작가는 실제로 강변의 물안개와 같은, 모든 대상을 물안개가 품어 안는 극적 순간 같은 풍경사진을 통해 대상의 흐릿한, 애매한, 아득한, 시적인, 서정적인 품성의 순간을 열어 보인다.
우종택(42)은 수묵의 범주를 몸그림으로 확장시킨다. 시원의 기억을 더듬어 존재의 겉에서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근작에선 자연의 본질이며 수묵의 본성을 파고드는 것으로 주제의식을 확장-심화시키고 있다.
▲이종상, 원형상 관계III, 185x135cm, 수묵화, 2006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 사이는 차기율(54) 작업의 주제다. 여기서 방주는 노아의 방주에서, 강목은 생태환경을 집대성한 ‘본초강목’에서 차용해왔다. 이로써 주제로 볼 때 작가의 작업은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원형을 하나로 아우르는 거대서사에 의해 지지된다.
홍지윤(45)에게는 한국화의 형식파괴를 선도하는 작가 내지 ‘퓨전 동양화’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작가의 그림을 보면 무당과 무속이라는, 어두우면서도 밝은 기운이 떠오른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