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 최정화 전]‘옆’으로 버리는 것에 예술 있다?
▲작품과 함께한 최정화 작가. 사진 = 박여숙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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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왕진오 기자) 민속박물관 곳곳에 위치한 유물들 사이로 20세기를 상징하는 각종 플라스틱 제품들이 여기 저기 놓여 있다. 과거의 산물 사이에 플라스틱이 마구 섞여 있는 모습이 우리 삶을 빗댄 듯하다.
플라스틱들은 충남 아산시 주민들이 모아준 1만여 점이고, 이것들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한국 고유의 생활문화를 보전해온 온양민속박물관이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최정화(54) 작가가 만나, 박물관과 박물관 옆에 사는 지역 주민들의 일상(日常)을 예술로 화합시켜낸 이색 전시가 펼쳐진다.
아산시 온양민속박물관 구정아트센터에서 3월 31일부터 시작된 최정화의 ‘옆’전은, 전방위 예술가의 새로운 시도이자 삶이 곧 예술임을 보여준다.
▲최 작가의 ‘생생활활(生生活活)’ 시리즈 작품이 설치된 온양민속박물관. 사진 = 박여숙화랑
최 작가는 90년대의 놀이문화를 섭렵하고 인테리어, 건축, 영화 미술감독,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수많은 비엔날레와 해외 유수 미술관-기관들에서 프로젝트를 전개한 그는 지난해 문화역서울 284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망라한 ‘최정화 - 총천연색’전을 통해 온갖 색깔의 자신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그동안 근대화와 경제성장의 산물인 대량생산과 물질주의, 소비문화 등을 주제로 다뤄왔다. 인조 꽃, 알록달록한 소쿠리, 로봇 인형, 구슬 등 일상의 평범한 물건들이 예술로서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진행한 개인전에서 “앞으로 유리와 나무, 돌, 쇠, 지푸라기 등 버려진 것들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겠다. 민속과 현대미술의 융합을 선보일 것”이라는 자신의 예고를 실현한 것이다.
▲최정화 작가가 ‘꽃의 향연’ 시리즈로 공개한 ‘9층탑’. 사진 = 박여숙화랑
“한 집안의 때 묻은 흔적을 통해 어제, 오늘, 내일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나를 주장하고 너를 확인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이 ‘옆’의 의미입니다. 옆의 우리, 옆의 가족, 옆의 하나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우선 아산시 신창면에서 3대째 종손으로 살아온 이광수 선생 자택의 살림살이를 통해, 빠르게 살아가는 시간에 묻혀 옆으로 스쳐 지나간 것들을 ‘옆의 옆’이라는 소주제로 삼아 신작 14점으로 재구성했다.
느티나무에 매달린 밥상보는 하늘에 닿을듯 한데,
‘내일의 꽃’은 핵폭탄이라도 맞은 듯 나비가 없네
이광수 종손 집안의 밥상 식기를 쌓은 ‘9층탑’, 박물관 주변 주민들이 모아준 플라스틱 용기 1만여 점을 방사선형으로 늘어놓은 ‘생생활활(生生活活)’은 그릇 또는 용기들이 우리 삶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온양민속박물관 정문에 설치된 최정화 작가의 ‘숨쉬는 꽃’. 사진 = 박여숙화랑
기다란 복도에 14점 화분이 늘어선 ‘내일의 꽃 시리즈’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선보이는 꽃은 나비가 날아들 만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화려한 형광색과 무채색의 대조는 삶과 죽음을 말한다.
최 작가에게 꽃은 살아 있다는, 살고 있다는 증거다. 흡사 핵전쟁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그의 꽃나무들은 녹아 흘러 있거나 까칠까칠하며 푸석푸석하다. 용암 속에서 재가 돼버렸을 법한 꽃은 모순되면서도 뒤얽혀 있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활활(活活活)’ 타오른 꽃은 조용한 침묵을 선사한다.
▲최정화 작가의 ‘내일의 꽃’ 시리즈가 설치된 온양민속박물관. 사진 = 박여숙화랑
느티나무에 밥상보를 매단 ‘바람탑’은 하늘에 닿을 듯 하고, 관객들의 소원을 가득 담은 소원나무는 한들한들 흔들린다. 비닐 가방을 3층 높이로 쌓은 ‘꽃의 여가’, 스카프 두른 야외 석상 등은 민속으로 향하는 작가의 관심과 더불어 일상용품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옆으로 밀어낸 것들은, 과거로부터 앞으로 나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돌이켜보는 이 전시는 6월 30일까지 계속된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