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큐레이터 다이어리]박현웅·박영희 부부의 동상이화전(同想異畵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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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지난해,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숨은 그림 찾기’로 풍성하게 전시를 장식했던 박현웅 작가는 올해 같은 달에 새로운 전시를 기획했다. 아내인 박영희 작가와 함께 전시를 열어보자는, 가족의 달에 의미를 더하는 계획이었다. 전시 주제는 동상이화전(同想異畵展)이다. “두 사람의 같은 생각과 다른 그림”이라는 부부의 금실이 담긴 이번 주제는 동상이몽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차용됐다. 박영희 작가는 이화대학교 동양화를, 박현웅 작가는 홍익대학교 금속공예를 전공했는데, 새내기 1학년 때 지인을 통해 우연히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대학원 과정 때 결혼해 20년을 함께 해온 부부다. 필자는 기획 의도에 맞춰 전시를 준비하면서 부부 작가의 삶이 궁금했다.
아내 박영희 작가는 가족의 일상을 소제로 삼아 채색화 작업을 이어왔다. “초기 작업은 보통 엄마의 마음이 그렇듯이 아이에게 집중된 일상이 작품에 반영됐어요. 아이가 커가면서 청소년 시기에 들어서자 청소년, 소녀의 미묘한 감정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작업을 거쳐 이제는 가족이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 그림에는 가족이 모두 등장합니다.”
박영희 작가는 ‘May-Pool’이라는 테마로 아늑한 느낌이 드는 풀장에 가족이 함께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을 그린다. “제 작품 중에 ’같이 있어도 자유롭게’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는데, 현재 우리 가족이 바라는 모습 같아요. 함께 있지만, 편안하고 서로 존중하며 꼭 무엇을 함께 하지 않아도 각자에게 자유를 주는 모습이 담긴 것입니다.”
남편 박현웅 작가는 일상의 소품 하나에 의미를 두고, 마치 그 물건의 사연을 풀어내듯이 섬세하게 재단한 자작나무 합판에 그림을 그려 퍼즐을 맞추듯 끼우고, 합판에 층을 쌓는다. “저는 작품을 위해 하루 10시간을 작업해요. 먼저 손바닥 그림으로 에스키스를 하고 이것들 모아 조합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SAVE The Children’에서의 박현웅(왼쪽)과 박영희 작가.
올해 그는 그 동안 틈틈이 써온 글과 함께 ‘숨은 그림 찾기’라는 에세이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작가의 작품에는 또 다른 그림이 숨겨져 있다. 어린이 신문이나 만화 잡지에 등장했던 이 숨은 그림 찾기 게임은 잊고 지낸 추억을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즐거움을 준다.
부부는 작품 활동뿐 아니라 재능기부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우리는 처음 친구가 운영하는 스페인 음식점에서 자작나무로 재단해 만든 작은 브로치를 팔았는데, 돈을 버는 의미보다 기부하면 좋겠다는 친구의 제안에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 자연스럽게 한 단체에 재능기부를 시작하게 되었고요.”
부부는 7~8년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해왔다. 이 둘은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에서 ‘월드 키즈 컬러링 데이’, ‘모자 뜨기’, ‘아프리카에 염소 보내기’, ‘스쿨미’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모금, 모집에 보태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강당에서 염소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제 아이의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직접 뜬 모자를 아프리카 신생아에게 전달하기 위해 말리(Mali)에 가서 벽화도 그려보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서로를 잘 알아도 소통하고, 돌다리를 두드려 건너듯 길을 찾는 과정을 통해 부부는 작가로 성장했다. 부부의 얘기를 들어봤다.
-두 분은 언제 만났으며, 당시 서로 어떤 모습이었나요?
박영희 “대학교 1학년부터 7년간의 연애 기간에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고받았어요. 당시 박현웅 작가는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저는 조금 적극적인 사람이었어요.”
-두 분 모두 작가의 길을 선택했는데 어떻게 서로 동의하신 거예요?
박현웅 “우리는 서로 떠올린 아이디어를 자주 이야기했어요. 자연스럽게 서로의 관심사를 인정하다보니 다른 길은 생각도 못 했어요. 당연히 함께 작가의 길을 갈 것으로 생각했어요. 서로 암묵적 지지가 있었던 거죠.”
-함께 작가의 길을 가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박영희 “둘 중 한 명은 직장을 갖고, 다른 한 명은 작가 생활을 하는 것이 안정적이잖아요. 작가는 수입이 일정치 못한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려움을 재밌게 즐기려고 노력했어요. 처음엔 각자의 작업실이 있었는데, 출산 후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작업실을 집으로 옮겼어요. 저는 오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를 데려오기 전까지 틈틈이 작업했어요. 그렇게 9번의 개인전을 할 수 있었어요. 아이가 학원을 가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조금 더 생겼지만, 슬럼프가 찾아 왔어요. 모유 수유도 하면서 열심히 했는데…. 그때 박현웅 작가가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오히려 박현웅 작가는 본인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를 더욱 자극하고 독려했던 것 같아요. 작가로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해요. 서로 자신의 방향을 알고 있어도 묻고, 확인해요.”
▲2014년 박현웅의 ‘숨은 그림 찾기’ 전시장.
“보다 마음속에 쌓이는 추억이 재산이죠.
가족이 함께 여행하며 추억 만드는 일은
시간을 놓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잖아요”
박현웅 “박영희 작가는 변함없이 저를 응원하는 동반자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사실 박영희 작가의 그림을 보고 많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습니다. 아마 박영희 작가는 몰랐을 거예요, 하하. 처음엔 대화가 서툴러 상처 주는 말도 많이 했는데, 오랜 시간 함께 하니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그림에 대해 조언해주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이 쌓이는 것보다 마음속에 쌓이는 추억이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추억을 만드는 일은 그 시간을 놓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행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과 느낌이 영감이 되고, 마음속에 행복이 있으니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박현웅, 박영희 부부는 모두가 바쁘고 어렵게 살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가족이 함께 색도 칠하고, 숨은 그림도 찾으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일상에서 함께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박현웅, 박영희 부부가 뜻 깊은 추억을 쌓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또한 이번 전시를 찾는 남녀노소 관객 모두에게도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가 되길 기대해본다.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