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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 시리즈 ① 닛산]“붓으로 획긋는 일본적 라인의 화려함”

나카무라 디자인 부사장의 ‘각 아닌 선’ 철학으로 중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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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0호 안창현 기자⁄ 2015.07.23 08:52:57

▲닛산 노스 아메리카가 최근 공개한 2016년형 370Z 쿠페와 로드스터의 렌더링. 사진 = 닛산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미국처럼 ‘차가 발’인 나라에서는 일본 차처럼 잔고장이 없는 차가 최고다. 차가 고장나면 발이 묶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발달된 나라에선 차가 고장나도 이동에 사실상 아무런 지장이 없다. 더구나 뿌리깊은 체면 문화 때문에 ‘차의 등급과 멋’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적이 안 좋던 기아차가 ‘디자인 기아’를 내세우면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나름 좋은 판매실적을 올리는 것에서도, 차 구입자의 디자인 중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에 CNB저널은 이번 호부터 각 자동차 브랜드의 디자인 전통과 철학을 알아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 중 닛산은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에도 많은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말 경영난으로 쓰러져가던 닛산을 살린 것은 디자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자동차 업계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카를로스 곤 대표는 닛산을 회생시키기 위해 디자인 혁명을 통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이른바 ‘닛산 디자인 리바이벌(Nissan Design Revival)’이었다. 이를 계기로 ‘열정과 상상력으로 만든 앞선 디자인을 통해 파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닛산의 디자인 세계가 확립됐다. 이후 닛산은 자사의 고급 브랜드 인피티니와 함께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닛산은 1989년 자사의 기술력을 집약해 북미 시장에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를 선보이며 Q45 모델을 출시했다. 1980년대 미국의 고급차 시장이 커지면서 토요타의 렉서스, 혼다의 아큐라 등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저마다 럭셔리 브랜드를 출범시킬 때였다. 하지만 닛산의 럭셔리 브랜드는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캐딜락 등 유럽과 미국의 기존 고급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뒤늦게 뛰어든 것이다. 닛산은 중저가 자동차 이미지를 벗기 위해 최고급 브랜드를 별도 운영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디자인 혁신으로 브랜드 확립

그러던 중 1999년에 전환기를 맞았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닛산이 프랑스 르노의 수혈을 받고, 카를로스 곤 대표가 취임했다. 이후 닛산은 과감한 디자인 정책을 펴면서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닛산이 인피니티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새로운 디자인 전략을 세우면서 닛산과 인피니티의 서서히 확립됐다.

당시 닛산·인피니티의 혁신적인 차량 디자인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나카무라 시로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이다. 그는 카를로스 곤 대표의 요청으로 1999년 닛산에 합류해 닛산과 인피니티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는 직선 디자인의 기존 Q45를 ‘일본 전통 회화에서 따 왔다’는 곡선 디자인으로 탈바꿈시켜 큰 성공을 거뒀다.

▲‘2011 서울 모터쇼’에서 인피니티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여행 가방이 포함된 에센스 조각을 선보였다. 나카무라 부사장이 직접 감수한 에센스 조각은 전 세계 300점 한정판으로 제작됐다. 사진 = 인피니티 코리아

나카무라 부사장의 곡선 디자인이 도입된 1999년 이후부터 인피니티는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고성능 세단,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쿠페와 SUV를 접목한 크로스오버 SUV 등을 출시하며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모든 것은 하나의 선에서 시작한다(It all starts with a single line).” 이 문구는 일본 가나가와현에 위치한 닛산 글로벌 디자인 센터의 입구에 적혀 있다. 단순함을 바탕으로 하는 닛산의 디자인 철학을 엿보게 하는 문구다.

이는 선과 여백을 중시하는 나카무라 부사장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자동차를 디자인할 때 붓으로 하나의 선을 먼저 그리면서 디자인을 시작한다고 한다.

‘자동차 디자인 북’(길벗)의 저자 조경실 디자이너는 나카무라 부사장의 디자인 철학을 3C로 소개했다. 명확성(Clear), 창조성(Creative), 일관성(Consistent)의 3C 개념이다.

나카무라 부사장은 “닛산은 넓은 범위의 제품군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제품들이 닛산의 이름만 다는 것이 아니라 각 세그먼트에서 최고의 디자인이 되기를 바란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목표로 하는 3C 개념을 더욱 명확히 하며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전기차 부문 판매량 1위를 기록 중인 리프(Leaf). 사진 = 닛산 코리아

각각의 디자인 요소들을 통합해 전체적으로 닛산 디자인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일관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닛산 자동차 디자인의 핵심이라는 점에 대한 강조다.

동양화처럼 선과 여백 중시하는 인피니티

닛산·인피니티 자동차의 디자인에서 일본 문화는 중요하다. 나카무라 부사장은 “닛산은 글로벌 회사다. 글로벌 회사로서 일본 문화를 전달하고, 일본의 개성을 알리려는 노력 또한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디자인은 세부적인 표현이 매우 중요한데, 일본 전통 공예품에는 세부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이 많다. 닛산은 이런 일본 전통을 자동차에 표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디자인 철학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2009년 인피니티 브랜드 런칭 2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콘셉트카 에센스(Essence)였다. ‘먹물을 먹은 붓이 창조하는 선(線)’에서 영감을 받은 에센스는 매혹적이고 정교한 차체를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에센스는 20여 년간 고성능 차량을 소개해 온 인피니티의 역사와 미래를 동시에 제시하는 혁신적 차량으로 소개됐다. 아름답고 역동적인 선은 물론 고성능과 친환경적 요소도 갖춘 차였다.

차량 앞면에는 인피니티 고유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강한 라인의 헤드램프가 인상적이다. 보닛과 펜더를 중심으로 한 억양도 통상적인 자동차에서는 보기 힘든 면이다. 측면으로 가면 일본 전통 의상의 일부인 머리핀 형태도 보인다.

▲도심형 SUV 캐시카이(Qashqai). 사진 = 닛산 코리아

나카무라 부사장은 에센스를 나무, 파도 같은 자연으로부터 구체적 디자인 콘셉트를 얻어 발전시켰다고 전했다. 그는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완벽한 창조물은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과 유사한 완벽함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신체나 파도의 형상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에센스 디자인은 다른 차량에서도 인피니티의 정체성을 구현하며 유사하게 적용됐다. 나카무라 부사장은 이를 ‘다이내믹 아데야카(Dynamic Adeyaka)’라고 말로 표현했다.

“천년 전 일본 옷의 아데야카를 추구”

그는 “아데야카는 일본어로 1000년 전 일본 전통 복식의 화려함을 표현하는 단어다. 이 단어는 자연의 힘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기계적인 것이 아닌 인간미, 자연미가 반영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의 감성과 역동성, 비전을 함축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인피니티 디자인은 일본의 전통적 요소만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미를 살리는 동시에 보편적인 자연과 인간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직선보다 곡선미와 인간미가 살아 있는 따뜻함을 감성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의 디자인 철학과는 달리 보다 대중적인 닛산 자동차 디자인은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산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별화를 꾀한 결과다.

그래서 새 모델 출시 때마다 닛산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들의 시선을 받곤 했다. 전 세계 판매량 1위 전기차 리프(Leaf)도 그랬다. 닛산 리프는 양산형 전기차답게 ‘세련된 유동성’을 구현한 차체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차량 바닥에 배치하는 독창적인 설계로 주목받았다.

전면 스타일은 날렵한 수직의 V형이다. 충전포트를 숨기고 대형 LED 헤드램프를 배치해 흔치 않은 스타일을 구현했다. 전기차 전용 첨단 IT 시스템과 가벼운 조작감을 자랑하는 전동 셀렉터 등 혁신 기술도 대거 채용했다.

▲닛산 SUV의 미래를 제시했다고 평가받은 레저넌스 콘셉트(Resonance Concept). 사진 = 닛산 코리아

최근에는 특히 닛산의 SUV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도심형 SUV 캐시카이(Qashqai), 스포티 CUV 쥬크(Juke), 7인승 프리미엄 패밀리 SUV 패스파인더(Pathfinder)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닛산 SUV 모델에서 닛산만의 차세대 디자인 언어가 다양하면서도 일관적으로 표출된다.

먼저 ‘바람을 가르는 듯한 느낌’의 디자인으로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차량 전면의 V-모션 그릴은 닛산의 모든 SUV에 적용됐다. 보다 날렵한 느낌을 주는 LED 시그니처 라이트와 리어 램프는 쥬크와 캐시카이에 적용됐다. 닛산의 스포츠카 370Z에서 계승된 부메랑 형태로, 외관 디자인에 다이내믹함을 더해주는 차별 요소라 할 수 있다.

7인승 프리미엄 패밀리 SUV 패스파인더는 닛산 전통의 ‘파워 스트럿’ 그릴 디자인을 재해석한 크롬 그릴이 중심을 이룬다. 전면은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헤드라이트와 큼직한 안개등, 하단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프론트 스포일러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닛산 측은 “디자인은 기능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디자인팀과 엔지니어링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차량을 완성한다. 특히 작년 11월 출시한 캐시카이는 공기역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루프 스포일러와 독특하고 평평한 하부 디자인을 적용해 0.32Cd의 공기저항 계수를 달성했다. 덕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는 물론, 연료 효율성과 고속에서의 차체 안정성까지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닛산의 개성적이면서도 기능적인 디자인 DNA는 유럽, 일본, 미국, 중국 등 전 세계 4개 지역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탄생한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닛산의 SUV 모델들은 이러한 디자인 요소들이 강점으로 꼽힌다.

캐시카이와 쥬크의 디자인은 ‘중후한 멋의 도시’ 런던의 중심가에 위치한 닛산 디자인 유럽(Nissan Design Europe)에서 탄생했다. 이 두 모델은 유럽 감성과 함께 닛산 특유의 개성을 결합시킴으로써 SUV 디자인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닛산 디자인 아메리카(Nissan Design America)는 ‘2013 북미 국제 오토쇼’를 통해 닛산 SUV의 미래를 제시했다고 평가받은 레저넌스 콘셉트(Resonance Concept)를 탄생시켰다.

“전기차에서 더욱 닛산다운 디자인 내놓을 것”

이 차량에는 닛산 SUV 모델들의 공통된 형태인 V-모션 그릴, 부메랑 형태의 LED 헤드램프, 공기역학적 차량 설계 등이 모두 적용됐다. 레저넌스 콘셉트가 제시한 디자인은 지난 ‘2015 서울 모터쇼’를 통해 국내에 선보인 신형 무라노(Murano)에도 고스란해 계승됐다.

닛산 관계자는 “닛산의 디자인 목표는 일상 속 즐거움을 위한 매력적인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기대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한 단계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닛산에서 디자인은 단지 자동차를 설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광고, 카탈로그, 전시장, 모터쇼 부스 등 디자인 요소가 포함된 모든 분야에서 일관된 메시지로 닛산의 정체성과 비전을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디자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닛산에선 현재 800명 이상이 디자인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디자이너들은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닛산의 디자인 철학 완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향후 닛산이 주목하는 부문은 전기 자동차다. “현재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 위주에서 전기 모터로 전환되는 시기를 거치고 있다. 전기차는 우선 친환경성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내연기관 차와는 동력을 만들어내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디자인 형태가 가능하다. 닛산은 자동차 디자인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전기차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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