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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최종운] 다르게 말하는 알레고리의 충동과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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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9호 신혜영 미술비평⁄ 2015.09.24 08:48:23

▲최종운, ‘Island’ 설치 모습.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글·신혜영 미술비평) ‘다른 것을 말하기’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알레고리(allegory)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말하는 문학이나 회화의 오래된 수사법이다. 

알레고리는 작품 내적인 순수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미술에 이르러 사라진 듯 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일련의 현대 미술의 등장과 함께 더 넓은 자리를 꿰차고 당당히 귀환했다. 

비평가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는 ‘알레고리적 충동: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을 향하여’에서 알레고리를 시대를 넘어선 하나의 예술 기법이자 태도로 보고 현대 문화의 다양한 측면에서 명백하게 알레고리적인 충동이 재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최종운, ‘You are not alone’.

그는 알레고리를 문자나 이미지 모두에서 “하나의 텍스트가 또 다른 텍스트에 의해 중첩되는 경우에나 발생하는 그런 것”으로 확대 규정하고 있다. 오웬스에 따르면 차용, 장소 특정성, 일시성, 논증적 성격, 잡종교배 등 현대 미술의 두드러진 특징들 대부분이 알레고리와 관련된다.

최종운은 이러한 알레고리와 연관된 포스트모던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현대 미술 작가다. 조각을 전공했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가와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설치, 영상, 회화, 사진 그 어느 한 장르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하기도 적절치 않다. 오히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일관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알레고리적 태도’일지 모른다. 

▲최종운, ‘Vertical sea beige’. 설치 모습.

작가의 대표작이자 개인 홈페이지 주소이기도 한 ‘이것은 뜨겁다(THIS IS HOT)’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동파이프를 자르고 연결해 만든 ‘THIS IS HOT’이라는 이 문자 조각은 2006년 런던 슬레이드(Slade) 대학원 졸업 전시에서 처음 선보였던 작품이다. 그것은 여러 면에서 알레고리적인 성격을 지닌다. 먼저 ‘THIS IS HOT’이라는 기표와 ‘이것은 뜨겁다’라는 기의 사이에 적용되는 자연적 연결 원리를 위반하듯 실제 파이프는 뜨겁지 않았다. (중략)

‘뜨겁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지만 ‘뜨겁지 않은’ 파이프와 같은 아이러니는 최종운의 작업 전반에서 드러난다. ‘고요한 긴장(Calm Tension)’(2005)이나 ‘수직의 바다(Vertical Sea)’(2010)와 같은 제목이 상징적으로 말해주듯 작가는 줄곧 아이러니한 두 가지 요소를 양립시킴으로써 그것들이 상충(相衝)하는 가운데 빚어지는 모호한 의미를 추구해왔다. 

뜨겁다는 제목이 붙었지만 뜨겁지 않고, 바다가 수직이 되고…

소비 사회의 대표적 대량 생산품이자 환경오염의 주된 요인인 콜라, 엔진 오일, 액체 세제, 섬유 유연제, 식용유 등의 액체 공산품을 재료로 사용한 작가의 ‘액체 회화’ 연작 제목의 대부분은 바다, 폭풍, 태양, 수평선, 바람 등의 자연을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 대부분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이미지의 색면 회화 형태를 띤다. 예컨대 자연물을 상징하는 진흙과 인공물을 상징하는 섬유 유연제의 이중층으로 이루어진 ‘액체 회화’의 제목은 사막의 모래바람을 연상케 하는 ‘달콤한 바람(Sweet Wind)’(2008)이다. 

▲최종운 ‘It’s so sad’, 설치 모습.

오웬스는 “어떤 단어들이 그들과 뜻이 반대되는 단어들을 의미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미 그 자체로서 근본적으로 알레고리적이다”라고 말하며 아이러니가 알레고리의 하나의 변형된 형태임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슬픈 풍경(Sad Landscape)’(2008)이라는 서정적 영상 작업이 사실은 단지 결대로 찢어낸 검은 종이테이프를 찍은 것으로 당시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담고 있다거나, 마찬가지로 감상적인 제목의 ‘내 마음 속 기억(The Memory of My Mind)’(2010)이 자작나무 합판을 구릉지처럼 조각도로 파내어 이제는 기성품이 된 자작나무 원목이 자랐던 산악 지대의 풍경을 떠올리도록 한 것처럼, 작품의 제목과 재료, 형식과 의미 사이의 알레고리는 그의 작업 전반에 산재(散在)해 있다.(중략) 

▲THIS IS HOT

최종운 역시 설치와 사진의 방식을 함께 취한다.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대표적 장소 특정적 설치-사진 작업 ‘버블(Bubble)’(2011)에서 작가는 이전에는 화려했으나 지금은 그 명성이 사라진 장소들을 찾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면도 거품(shaving foam)을 이용한 비정형의 대형 조각을 매달았다.

‘버블’이 처음으로 실현된 장소는 현재 영업을 하지 않고 방치된 지하철 3호선 남서울터미널역의 지하상가 앞이다. 2주의 설치 기간 동안 거품은 점차 잦아들어 결국 약간의 흔적만을 남긴 채 풍선으로 된 골조를 드러냈고, 최종 결과물로는 설치 장면의 사진이 남았다. 이 작업은 10개의 다른 장소에 설치되고 총 10장의 사진 작업으로 완성될 연작으로서,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대량 생산품을 재료 혹은 소재로 삼는 ‘슈퍼마켓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 중이다.(중략)

▲최종운, ‘The title match’ 설치 모습.

사실상 알레고리적 방식의 핵심적인 의의는 이러한 이질성과 관점의 차이에 대한 긍정일 것이다.

“단어를 반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로서의 알레고리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와 중첩될 때” 발생하는 알레고리는 작품이 하나의 정해진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우연적이고 모호한 의미를 무수히 생성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차용, 장소 특정성적 설치와 사진 등 현대 미술의 알레고리적 방식을 다양하게 구사하며 소재, 매체, 형식,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최종운의 작업은 결국 이러한 ‘차이에 대한 긍정’으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어떠한 사람도, 어떠한 대상도, 어떠한 관계도 전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알레고리에 관한 발터 벤야민의 언급은 그의 작업 전반에 큰 울림을 준다. 앞으로 이와 같은 작가의 다양한 알레고리적 충동과 유희가 어떻게 변주되어 나갈지 관심과 기대로 지켜볼 일이다.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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