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미술품 가격지수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시도됐었다. 그러나 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특성-재료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진 화가별 가격지수는 많은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제학자가 미술품의 특성까지 고려하며 개별 작품의 가격을 분석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김영석 이사장이 2005∼2014년 사이 주요 14개 경매회사가 진행한 한국 근현대 회화 작품의 낙찰 가격을 분석해 화가별 작품 특성을 고려한 가격지수를 내놔 눈길을 끈다. 김 이사장은 ‘한국 근현대 회화의 경매가격 분석에 의한 가격지수 연구’라는 논문을 내놨다.
김 이사장은 “회화를 전공한 화가로서 다양한 작품 특성과 가격의 상관관계를 면밀히 분석해 발표한 논문입니다. 작품의 주제, 제작 시기, 채색 재료에 따라 작품별 가격이 매우 다르게 형성된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입증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발표한 미술품 가격지수는 화가·컬렉터, 경매·화랑·화방·미술 전공 교수, 미술 관련 기자, 평론가 등 다섯 분야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전국 규모의 설문 조사를 통해 만들어졌다. 호수 기준표(號數基準表)에 따라 실거래 작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이다.
722억으로 낙찰 총액 1위 오른 이우환 화백
이러한 통계와 분석을 바탕으로 △최고 호당 가격을 기준으로 산출한 ‘미술품 가격지수’ △입찰 작품 숫자 대비 낙찰 작품 숫자를 비율로 환산한 ‘낙찰률지수’ △’미술품 가격지수’와 ‘낙찰률 지수’를 종합해 미술시장에서의 작품 선호도과 화가의 경쟁력을 비율로 나타내는 ‘화가 경쟁력지수’가 각각 산출됐다.
이 지수에 논문 발표자인 김영석 이사장의 이니셜을 붙여 ‘KYS 미술품 가격지수’로 명명됐다. 이 지수는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산출해 매년 발표할 예정이다.
2005~2014년 사이 14개 경매회사의 낙찰 결과를 조사한 결과 총 7691개의 작품이 입찰에 붙여져 이 중 5594개 작품이 낙찰됐다. 상위 화가 20명의 10년간 낙찰 총액은 약 3668억 원에 달했다.
낙찰 총액 기준 상위 20명 화가 중 1위는 이우환으로 787점의 입찰 작품 중 567점이 낙찰돼 총액 712억 원이었다. 작품의 평균 가격은 1억 2500만 원에 달했다.
이어 김환기, 박수근, 이대원, 김종학, 천경자, 오치균, 김창열, 이중섭, 장욱진, 도상봉, 이상범, 박서보, 유영국, 김흥수, 정상화, 전광영, 오지호, 김기창, 김형근 순이었다.
호당 가격 1위부터 5위는 박수근 2억 8000만, 이중섭 1억 600만, 장욱진 3000만, 김환기 1900만, 천경자 1700만 원 순으로 집계됐다.
미술 시장 거래 작품의 실질적 작품의 평균 가격 산출
‘KYS 미술품 가격지수’가 주목 받는 이유는 △바탕 재료 △주제 △제작 시기 △채색 재료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 가격을 분석했다는 데 있다.
▲K옥션 9월 경매에 출품된 김환기 작품에 응찰하는 참가자. 사진 = 왕진오 기자
현재 한국 미술 시장에서 서양화로 분류되는 작품의 경우 캔버스에 그린 작품이 종이 같은 다른 재료 위에 그린 작품보다 대부분 비싸게 가격이 형성돼 있다. 김환기 작품의 경우 캔버스 작품이 종이 작품보다 4배 이상 비싸다. 주제에 따라서도 이우환의 ‘선’ 시리즈가 ‘조응’ 시리즈보다 6배, ‘점’ 시리즈는 ‘바람’ 시리즈보다 4배 정도 비싸게 가격이 형성돼 있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작품의 채색 재료가 석채인가 수묵담채인가에 따라 확연하게 가격 차이를 보인다. 석채로 그린 인물화는 수묵담채보다 2.2배, 석채로 그린 풍경화는 수묵담채 풍경화보다 4.5배, 석채 동식물화는 수묵담채 동식물화보다 8배 이상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KYS 미술품 가격지수가 미술 시장의 투명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부각된다.
미술 시장에서 작품 가격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으로 통하는 것이 캔버스 규격을 지칭하는 ‘호(號)’이다. 호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제정돼 국제적 관례로 자리 잡은 그림의 ‘도량형’이다.
그림 크기가 커짐에 따라 재료비와 노동력이 많이 소요된다는 사실에 근거해 그림 크기가 커지면 가격도 비례해 상승하는 ‘호당가격제’가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미술 관련자들은 호당가격제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작품의 특성에 따라 절대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거래 작품 가격 결정 시스템, ‘호당가격제’의 합리적 도출 필요
하지만 ‘호당가격제’를 대체할 만한 가격 결정 시스템이 아직 없는 상황에서 같은 화가가 동일한 바탕 재료와 주제로 그렸을 경우, 크기가 커지면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는 ‘호당가격제’는 절대적은 아니더라도 가격 산정에 잣대가 된다는 의견을 물리칠 수는 없다.
김영석 이사장은 “호당 가격이 미술 시장에서 절대기준으로 적용돼서는 안 되겠지만, 작품 크기의 변화에 따른 작품 가격의 상승폭을 이해시키는 데 어느 정도 객관적인 근거로서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이 발표한 ‘KYS 미술품 가격지수’의 화가 경쟁력지수는 한국 근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미술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는지 ‘미술품 가격 지수’와 ‘낙찰률 지수’를 종합해 도출한 지수이다.
낙찰률 1위에 오르며 단색화 열풍의 중심에 있는 정상화의 경우, 183점의 입찰 작품 중 150점이 낙찰돼 81.97%의 낙찰률을 기록했다. 이어 이대원 76.16%, 오치균 76.06% 순이었다. 호당 가격이 가장 높았던 박수근은 75.11%로 낙찰률 4위였다.
화가의 낙찰률은 그 시대에 선호되는 화가의 지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는 ‘아트 테크’ 컬렉터에게는 주요한 관심 대상이다. 낙찰률의 상승은 시간이 지난 후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높은 낙찰률은 주로 현재 작품이 저평가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작가, 또는 작품이 희귀한 작고 화가의 작품에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