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로봇만 변신하나요? 광장도 변신해요”
문화역서울 미친 광장(美親狂場)
▲문화역서울 284 광장에 마련된 천경우 작가의 ‘달리기 2015’에 참여한 시민들. 사진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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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왕진오 기자) 서울 중심 한복판 광장에서 예술과 함께 미치도록 놀 수 있는 장이 펼쳐진다. 예술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계적인 예술가의 공연 같지 않은 공연이다.
전시장이 된 공연장과 공연장이 된 광장. 공연 같은 전시 또는 전시 같은 공연이 10월 7일부터 서울역 광장을 메인 무대로 한 ‘페스티벌284 - 미친 광장(美親狂場)’을 통해 펼쳐진다.
이번 행사는 문화역서울 284가 출범한 지 5년째를 맞아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접점을 만들기 위해 열린다. 누구나 다닐 수 있는 통로 역할로서의 광장을 대중과 소통하는 가교 무대로 탈바꿈시키려는 융복합 전시이다.
문화역서울 284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이자 교통과 교류의 관문이었던 구 서울역(사적 284호)을 원형 복원한 뒤 다양한 문화예술이 창작되고 교류가 이뤄지는 곳으로 2011년 공식 출범했다.
광장이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정의된 도시계획시설 중 공간시설의 하나다. 사람들이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자유롭게 이용하며 다양한 모임과 행사 등을 즐길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다.
▲문화역서울 284 광장에 마련된 천경우 작가의 ‘달리기 2015’에 참여한 시민들. 사진 = 왕진오 기자
문화역서울 284는 그동안 광장에 위치한 사적지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가운데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전시를 실내 중심에서 진행했다. 이로 인해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문화공간이라는 존재감은 흐려지고 있었다.
옛 서울역사가 문화역 284라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했듯, 서울역 광장이 본래 지니고 있는 ‘소통을 통한 관계 맺기’에 나선 것이다. 미술 작품과 퍼포먼스, 공연, 파빌리온 프로젝트 등이 조합 방식을 달리하며 다양한 체험과 참여 유도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광장 자체가 참여형 예술무대로 변신
누구에게나 열린 광장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문화역서울 284 앞마당과 RTO 공연장에는 마틴 크리드(Martin Creed)의 ‘Words’를 시작으로 30여 팀이 국악, 마임, 록, 펑크, 힙합,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친다.
▲정승, ‘소원을 말해봐’. 자동차, 경광등 케이스, 양초, 플라스틱 체인, 200(L) x 160(W) x 250(H)cm, 2015.
일반인과의 대화를 통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마틴 크리드는 미술과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펼치는 개념설치 미술가이자 뮤지션이다. 영국 최고 권위 상인 ‘터너상(Turner Prize)’를 수상한 바 있는 그는 “나는 결코 예술가가 아니다”고 주장하며 “세상을 아주 작은 축소판으로 만들어 비주얼 아트와 퍼포밍 아트의 융합이 전개되는 것을 공연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염상훈+이유정 작가가 만들어 놓은 독특한 모양의 ‘댄싱 포레스트’ 파빌리온들은 지나가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예술 체험공간이 된다. 이 파빌리온은 비대칭 형상으로 끊임없이 회전한다. 때문에 어느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정지하지 않고 매 순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문화역서울 284에 설치된 ‘댄싱 포레스트’ 파빌리온. 사진 = 왕진오 기자
‘댄싱 포레스트’는 재미난 공간 경험을 가능케 하는 전시장이자 외부 풍경과 소통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오래도록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켜온 구 서울역사와 대조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다.
광장 한가운데에선 천경우 작가의 ‘달리기 2015’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서울시 도로원표 기준으로 서울-평양 간 193km 거리를 일반 시민과 함께 완성시키는 참여 퍼포먼스다. 이 퍼포먼스는 서울역 광장을 지나가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광장에 마련된 트랙 위를 원하는 거리만큼 자신의 호흡과 속도에 맞추어 처음 보는 다른 참가자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달리게 된다. 달리기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신체적 행위를 통해 타인을 관찰하고 공공장소를 새롭게 느끼며 자신이 주인공이 돼 예술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안정주, ‘모래성’. 2채널 비디오 설치, 스테레오 사운드, HD, 컬러, 3분 24초, 2012.
‘너에게 미치고 싶다’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행사는 내 생각이 너에게 미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너와 나의 관계 맺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페스티벌이다. 제이미 우드, 나오 요시가이, 마우라 모랄레스, 강산에, 이수진 등 8개국 55팀 174명 작가가 참여하는 행사는 10월 28일까지 계속된다. 상세한 행사 일정은 www.festival284.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수진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
“실내 전시 벗어나 광장 달려요”
문화역서울 284가 열린 공간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신수진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은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기존 시각예술과 공연을 분리해 실내 전시 위주의 행사를 벗어나 우리가 먼저 시민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 결과물이 ‘페스티벌 284 미친 광장’이 됐습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구 서울역 공간은 사적지로 지정돼 못 하나도 마음대로 박지 못하는 문화재이지만, 이곳이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하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음을 재발견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작정이다.
▲신수진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 사진 = 왕진오 기자
이번 페스티벌의 기획 과정에서 광장에 작품을 설치하고 공연을 한다는 계획에 일부에선 “미친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한번 미쳐보자는 생각에 실내가 아니라 앞마당인 광장을 주요 무대로, 그리고 단순히 와서 보는 시각 예술 위주가 아니라 참여하는 무대로 꾸몄다. 광장을 지나가다가 잠시 멈춰 듣고 즐길 수 있는 공연예술을 함께 버무린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수많은 인파가 그냥 스쳐지나가는 공간을, “저 공간이 저런 걸 할 수 있구나” 하는 존재 의미를 시민들에게 전달해주겠다는 기획이다.
신수진 문화역서울 284 예술 감독은 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와 일우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 심리학자다. 현재 한국사진학회 부회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사진, 빛의 세기를 열다’, ‘거울 신화’ 등을 집필했다. 국내외에서 60여 차례의 전시를 기획했다. 문화역서울 284 예술 감독 부임 뒤 ‘은밀하게 황홀하게: 빛에 대한 31가지 체험’에 이어 이번 ‘미친 광장’이 두 번째 기획 전시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