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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인터뷰 -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뉴욕진출, 실패라지만 배운게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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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7호(창간기념호) 김금영 기자⁄ 2015.11.19 08:54:19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공연계에서 얼굴을 보기 편했다. 오디컴퍼니는 공연을 올릴 때마다 프레스콜 또한 활발하게 진행하는데, 신 대표는 빠지지 않고 거의 모든 자리에 참석해 단순히 ‘자리를 빛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작품에 대한 설명과 응원을 직접 전하는 열의의 CEO였다. 특히 2012년 뮤지컬 ‘닥터 지바고’ 초연 발표회 당시 직접 자료 화면을 펼치며 설명을 도맡은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 ‘드림걸즈’ 프레스콜 이외엔 도통 그를 보기 힘들었다. ‘드림걸즈’ 이후 ‘맨 오브 라만차’를 올리고, ‘드라큘라’ ‘뉴시즈’ ‘스위니 토드’의 오디션 등 꾸준한 행보를 이어갔지만 공연계 현장에는 두문불출이었다. 인터뷰 당일 꽉 찬 그의 스케줄을 뚫고 들어가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봤다. 신 대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보기 힘들었던 이유는 바쁜 해외 활동 때문이었다. 신 대표는 2014년 6월 ‘할러 이프 야 히어 미’ 책임 프로듀서를 맡으며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한국인이 책임 프로듀서로 나선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진출은 처음이었다. 총 82억 원이라는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됐다. 올 4월엔 ‘닥터 지바고’를 브로드웨이에 올렸다. 이밖에 해외에서 프로듀싱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책임 프로듀서로서 두 작품을 올린 건 굉장한 사건이에요.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브로드웨이는 그렇게 만만치 않아요. 실력은 물론 신뢰가 있어야 극장을 내주죠. 그래서 전 2009년 ‘드림걸즈’의 협력 연출로 참여하면서 꾸준히 브로드웨이 문을 두드렸고 그 결과 2014년, 2015년에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거죠.”

흥행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대표도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실패로만 보는 의견엔 반대했다.

“흥행 결과로만 보면 실패했다고 볼 수 있어요. 외화 낭비라는 소리도 들었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룬 성과가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과거와 비교해 확실히 커졌습니다. 극소수만 누리는 문화에서 이제 대중적인 측면이 강해졌죠. 하지만 시간이 더 흘러 미래에 시장포화 상태에 이르면 정체될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선례를 만들었다는 뿌듯함과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듀서로서의 자부심을 갖췄습니다.”

▲2012년 뮤지컬 ‘닥터 지바고’ 초연 제작 발표회 당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직접 자료 화면을 펼치며 작품 설명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사진 = CNB포토뱅크

그래서인지 브로드웨이 첫 진출작도 안정성보다 도전을 감행했다. 뮤지컬에 흔하지 않은 힙합 소재를 차용했다. 브로드웨이 팰리스 극장에 올린 ‘할러 이프 야 히어 미’는 미국 힙합의 전설 투팍 샤커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었다. 신 대표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의 자부심

물론 선례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국내 뮤지컬계 3대 공연 제작사 중 하나의 대표라는 명성은 해외에선 포기해야 했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20대 때는 패혈증으로 의식을 잃기도 했고, ‘지킬 앤 하이드’ 작업 당시엔 몸무게가 55kg만 나간 적도 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악바리 정신으로 모두 견뎠다. 신 대표는 “원래 몸이 좋지 않았는데 브로드웨이에서 특히 고생한 경험을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도포기 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비 오는 날 호텔 앞에서 비를 피하는데 도어맨이 ‘저리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한국에서 자리 잡은 공연 제작사 대표로서 대우 받고 편하게 살 수도 있는데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공연을 브로드웨이에 올렸죠. 그 힘든 일에 또 도전할 거냐고요? 당연하죠. 이제 시작인 걸요.”

해외 활동이 바빴지만 그렇다고 국내 활동을 쉰 것도 아니었다. 특히 신 대표는 2015년을 뜻 깊은 한 해로 꼽았다.

“올해는 개인적으로도 뜻 깊은 한 해였어요. 작년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은 데 이어 올해엔 ‘맨 오브 라만차’도 10주년을 맞았죠. 한 작품이 오래 사랑받는다는 건 뿌듯한 일이에요. 두 작품 모두 오디컴퍼니와 함께 한국 뮤지컬 시장의 발전 시기를 거쳐 왔습니다.”

오디컴퍼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작품을 장기간 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지킬 앤 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의 초연 때 많은 사람들이 “저게 되겠어?” 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신 대표는 미래를 길게 내다봤다. ‘지킬 앤 하이드’는 2004년 대박을 터뜨리며 오디컴퍼니를 널리 알렸고, ‘맨 오브 라만차’ 또한 어느덧 10주년을 맞아 오디컴퍼니의 대표 작품으로 성장했다. 라만차의 사나이, 즉 돈키호테는 신 대표의 별명이기도 하다. 거침없이 꿈을 향해 말을 달리는 질주 본능이 닮았다.

“모든 작품을 한 번에 승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특히 제가 뮤지컬계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뮤지컬이 대중적이지 않았고, SNS도 없어 오로지 입소문으로만 공연을 알릴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흔한 기립박수 문화 또한 없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가벼운 소재가 아닌 ‘지킬 앤 하이드’의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킬 앤 하이드’ 초연 커튼콜 때 관객이 하나둘씩 일어나더니 모두 일어나 열광했어요. 매체도 집중했고요. 그때의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정말 행복했어요.”

‘논-레플리카와 신인 발굴’이 강점

‘지킬 앤 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가 특히 주목 받은 이유는 작품의 힘도 있지만, 오디컴퍼니의 강점인 논-레플리카(non-replica:복제 안 함) 방식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 일반적으로 라이선스 작품을 들여올 때 대사 하나까지 함부로 손댈 수 없는데, 신 대표는 공연의 기본 구조는 가져오되 세부 사항을 한국 관객에 맞춰 변용시킬 권리를 고집했다. 이를 위해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긴 협의 과정을 거치는 불편을 감수했다. 2016년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일 ‘뉴시즈’ 또한 오리지널 프로덕션인 디즈니와 협의해 논-레플리카로 올릴 예정이다.

“레플리카 방식이 일반적일 때 ‘난 논-레플리카로 1등 해야지’라고 말하곤 했죠. 아주 어렸을 때에요(웃음). 오디컴퍼니 초창기부터 논-레플리카 작업으로 여러 결과물을 보이면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작업 방식도 중요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죠. 오디컴퍼니에는 스태프와 배우에 대한 존중이 있어요. 이들의 열정이 없으면 작품은 탄생할 수 없거든요. 저는 특히 스타보다 재능 있는 새 배우를 발굴해 식구 개념으로 함께 작업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조승우, 류정한, 정성화, 조정석, 홍광호 등 신인 시절 때 모두 오디컴퍼니의 작품을 거쳤죠. 내년에 선보일 ‘드라큘라’와 ‘뉴시즈’에서도 새 얼굴, 또는 이미 알려진 배우라도 잘 몰랐던 새로운 재능의 발견을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식구 개념으로 함께 하는 배우”라는 말에 과거 ‘닥터 지바고’ 기자간담회 때가 떠올랐다. 원래 출연 예정이었던 주지훈이 성대 결절로 도중하차 하면서 공연이 위기를 맞았다. 그때 신 대표의 전화에 조승우는 공연 중간에 전격 합류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조승우는 기자간담회에서 신 대표를 형처럼 편하게 대하며 전적인 신뢰를 보였다. 신 대표 또한 “정말 고맙고 늘 믿음이 가는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는 올리는 작품 관련 행사마다 얼굴을 비추고 공연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 당일 열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음악회에도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사진 = 오디컴퍼니

신 대표가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도 식구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2010년 초연부터 꾸준히 이 작품에 얼굴을 비친 이석준이 다시 무대에 오르고, 고영빈(2011), 조강현(2012)도 돌아온다. 여기에 강필석, 김종구, 홍우진이 새 얼굴로 합류한다. 12월 1일 백암아트홀에서 개막한다.

신 대표는 이 공연에서 오랜만에 연출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브로드웨이에서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고, 2010년 국내 초연과 2011년 재연의 연출을 맡았을 정도로 애정을 보인 작품이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순수했던 유년기와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해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이야기다.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가 그의 친구 앨빈의 송덕문을 완성시켜 가면서 잊었던 과거의 행복했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이 작품을 기다리는 많은 관객과의 약속으로 3년 만에 선보이게 됐어요. 그동안 바쁜 활동으로 해외를 오갔는데, 팬이 SNS에 ‘신춘수는 딴짓 말고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올려라’고 글을 올렸더라구요(웃음). 저 또한 이 공연을 다시 하고 싶었어요. 제게도 위로가 되는 공연이거든요. 브로드웨이 협력 프로듀서로 참여했을 때 이건 바로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시절 야망과 목표가 컸을 땐 앞만 보고 달리면서 주변은 하나도 보지 않고 일만 했어요. 그런데 바쁜 일상 속 어느 날 정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저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이 공연이 그런 저를 힐링해줬죠. 그래서 꼭 한국에 선보이겠다고 생각했어요.”

신춘수의 ‘인생 이야기’는?

3년의 공백만큼 기대도 커졌다. 본래의 감동을 원하는 관객도 있고, 이번엔 조금 색다른 면을 보여달라는 관객도 있다. 신 대표는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이번엔 신구(新舊)의 조화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기존 출연 배우와 새 얼굴을 모두 캐스팅했고, 연출 면에서도 혁신적 변화보다는 기존의 형태를 유지 및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했다”고 말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지킬 앤 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에 이어 또 다른 10주년 공연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신 대표는 “잘 발전시켜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며 “지지자는 많지만 아직 대중성은 약하다. 소극장 공연의 특성을 잘 살려 인지도를 꾸준히 높이고, 10년을 끌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신 대표의 진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이야기로 흘러갔다. 과거 그는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단다. 국내 대표 공연 제작사인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 아래에서 일했던 그는 자신만의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정으로 2000년 독립해, 2001년 오디뮤지컬컴퍼니를 설립했다. 30대 초반의 패기였다.

“당시 윤호진, 설도윤, 송승환, 박명성 대표는 뮤지컬 1세대로 훨씬 앞서 있었죠. 그땐 어린 마음에 선배들을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독불장군적인 측면이 좀 있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더 중요한 걸 깨달았죠. 누구를 라이벌로 정해 뛰어넘기보다,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할 때 공연계가 전반적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요. 경쟁사가 정말 좋은 작품을 선보여야 대중이 뮤지컬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질 수도 있는 것처럼요. 뮤지컬에 평생을 바쳐온 1세대 선배들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이젠 제가 차후 세대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고 싶어요.”

이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그는 꾸준히 새로운 것을 보고 도전한다. 최근엔 토니상 5관왕을 휩쓴 뮤지컬 ‘펀 홈(Fun Home)’과 4개 부문 수상작 ‘아메리칸 인 파리(An American in Paris)’를 보고 새 영감을 받았단다. “굉장히 실험적인, 흡인력 있는 드라마가 좋았고, 춤의 언어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며 “단순한 댄스 뮤지컬이 아니라 춤의 언어를 극대화한 작품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했다.

오디컴퍼니의 오디는 오픈 도어(open door)의 약자다. 새로운 공연 예술의 문을 연다는 뜻이다. 당초 오디뮤지컬컴퍼니를 설립했지만, 2015년 오디컴퍼니로 법인을 새로 냈다. 탄탄한 제작 시스템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뮤지컬뿐 아니라 다른 콘텐츠 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포부다.

“일단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고 싶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도 성공하고 싶고요. 그리고 회사 대표로서 뮤지컬뿐 아니라 영화, 음반 등 다른 콘텐츠로까지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콘텐츠에는 무한한 개발 가능성이 있거든요. 인간 신춘수로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자기 일에 열정을 갖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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