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졸업전시회 - 리뷰 ③ 나 < 관계] 내가 본 사회, 사회가 본 나
▲홍익대 이윤지, ‘최고의 도피’. 오브제, 1500 x 1000 x 2000cm.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연수 기자) 미술의 역사에서 근, 현대 미술로 구분 지을 수 있게 하는 기준 중 하나는 작품에 작가의 자의식이 개입돼 있는지 여부다. 현대 미술에 가까워질수록 작품의 제작 과정은 자아 성찰의 과정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특히 학생들에겐 그런 과정이 필수가 된 듯하다.
그들이 학부 과정 동안 그 어떤 주제보다 치열하게 탐구했을 ‘나’라는 주제의 연구 결과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하나는 개인의 사적인 모습과 감정 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특정한 포즈나 표정을 취하고 있는 인체 표현이나, 분위기 전달을 위한 의도적인 색상 선택 같은 것이 예다. 다른 하나는 작가 주변의 환경을 소재로 삼는다.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물건을 소재로 하거나, 선호하는 표현 양식으로 작품 세계를 펼친다. 작가 주체가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관객은 작품을 통해 그 주체를 강하게 인지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표현 양상은 자아 탐구 과정에 있어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양극의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머릿속의 어떤 모습을 객관화함으로써 자아를 정의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고, 마치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 듯 사소한 이야기로 깊은 공감대를 만든다는 것에 이차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상황, 즉 사회라는 전제다. 그런 전제를 바탕으로 했을 때, 자의식의 객관적인 묘사는 곧 주변 모습의 반영이며, 주변 환경의 묘사는 곧 자아를 반영하는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 모든 표현 방식은 개인과 사회가 이루는 관계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귀결되곤 한다.
2015년 대학졸업전 리뷰 시리즈의 마지막 회에서는, 위의 두 양상의 작품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본다. 덧붙여 현직 미대 지도교수를 인터뷰해, 젊은 작가들의 작업 경향과 그들의 작업을 어떻게 봐야 할지 도움말을 들어본다.
몸을 표현하다
굳이 미술의 역사를 더듬지 않아도, 인체 형상의 표현은 인간이 태어나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자연스러운 순서다. 매일 보는 가족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그리는 것은 개인의 감정과 이야기를 표현할 때, 가장 직접적으로 편리하게 전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서영, ‘스틸컷 04’. 캔버스에 유화, 116.8 x 91cm.
작품1. ‘스틸컷 04’는 작품의 제목과 같이 영상의 스틸 컷처럼 재현된 평면 회화 작업이다. 같은 제목 아래 만들어진 시리즈 작업 중 하나이며, 각각의 시리즈에는 인물이 두 명씩 배치돼 있다.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색감이다. 마치 카메라에 청회색 필터를 한 꺼풀 덧씌운 듯한 색감 표현은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또 다른 특징은 인물들의 배치와 표정이다. 영화 속 인물의 배치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표정한 얼굴에 눈동자 위치만으로 시선 처리를 해 서로의 사이에 특별한 사연이 있음을 암시한다. 연출 기법에서 동기부여를 받은 듯한 이 작품은 작품의 주제를 제목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 간의 관계와 심정을 추론하게 한다. 더 나아가 화면에 담은 시간의 앞 뒤 이야기에까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유진아, ‘엄마와 아들’. 캔버스에 유화, 224.2 x 145.5cm.
작품2. ‘엄마와 아들’은 반으로 나뉜 화면에 각각 아들과 엄마의 모습을 표현했다. 두 인물의 묘사는 물론 배경색에서도 원색을 찾아 볼 수 없다. 색이 아주 조금 섞여 전반적으로 흰색에 가깝게 보이는 가운데서도 엄마의 구역은 따듯한 색감으로, 아들의 구역은 차가운 색감으로 표현됐다. 더불어 작가의 붓터치는 작품에 표현된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힌트로 작용한다. 아들의 인물 묘사는 어지럽고 혼란함을 엿보이는 붓터치로, 엄마의 모습은 잘 정돈된 듯 보이는 붓터치로 표현됐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인 ‘붓터치에 의한 인체 표현’은 흰색에 가까운 색감과 함께 병적이고 공포스러운 느낌까지 자아낸다. 특히 아들의 모습은 백골을 연상시킨다. 작가 특유의 이런 기법은 선사시대의 암각화에서 발견되는, 인체의 피부 속까지 묘사하는 엑스레이 기법(투시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작가가 인물간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듯, 외부의 시선과 기준에 맞춰 살아가다보면 진짜 나는 누구인지 혼란을 겪는 순간을 맞는다. 자아를 객관화시키고 담론을 만드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미술대 학생들 역시 무엇을 표현할지 몰라 갈등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원초적인 해결 방법 중 하나는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나의 관심이 향하는 그 무엇에 내 취향과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국민대 안성준, ‘어?! 2’. 자작나무, UV프린트 네온, 30 x 30cm, 79 x 19cm.
작품3. ‘어?! 2’는 길거리 문화의 일종인 스케이트보드를 꾸미는 작업이다. 보드 위에 그려진 캐릭터나 인물들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작가는 특정한 소규모 집단이 영위하던 길거리 문화가 점차 많은 사람이 즐기는 문화로 바뀜으로서 획일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길거리 문화가 원래는 자유로운 정신과 개성을 표방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서의 역할 밖에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해, 어느 세대보다 개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대중매체가 생산하는 이미지의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작업은 예쁘고 발랄해 보인다. 그러나 다름을 외치지만 ‘같아지고 있는’ 자신의 세대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또한 반영한다.
▲국민대 박다원, ‘Catoonical Abstract Page’. 캔버스에 유화, 365.8 x 260cm.
작품4. ‘Catoonical Abstract Page’의 작가는 만화를 좋아한다. 그는 시간과 노동, 열정을 쏟아 만들었음에도 팬 아트라는 꼬리표가 붙어 예술로 대우 받을 수 없는 그림들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취미와 예술작업의 접점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회화 작업과 만화를 절충하기 위해 만화의 특징인 말 주머니 안의 문자를 제거하고, 캔버스 틀을 만화의 분할된 칸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고 나면, 거기에는 이미지의 나열과 효과선, 그리고 빈 말 주머니만이 남는다. 그는 그런 과정이 ‘만화적 추상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번 시도는 보람 없는 열정의 경험에서 출발한 새로운 추상회화의 형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리뷰를 마무리하며
졸업전시 리뷰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는, 한국 미술계에서 판매가 잘되는 몇몇 장르로의 획일화 경향을 보면서, 장르의 다양성 유지를 위해선 아직 순수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생들에게 그 답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4년 동안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찾으려 노력했을 것이며, 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전시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고민의 과정들이 가감 없이 완성도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완성도라 함은 기술의 숙련도뿐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논리의 합리성도 포함한다.
이제야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 관심, 그 중에서도 미술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관심일 것이다. 사회로 발돋움 하려는 예비 작가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2015 미술대학 졸업전시회 리뷰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세련됨 말고 잠재력에 주목해야”
국민대 입체미술과 김태곤 교수
- 이번 졸업 전시를 살펴보면 예전보다 영상 및 설치 작업의 수가 늘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건가요?
“아시다시피, 현대 미술에서 장르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답습적인 작업을 기피하는 현대 미술의 특성이 덧붙여져 상상력의 확장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시-공간의 확장으로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국민대 예술대학 입체미술과 김태곤 교수. 사진 = 김연수 기자
- 몇몇 학생들의 작품은 설명 글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왜 미술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지나요?
“답습적인 것을 거부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현대 미술에서 ‘낯설게 하기’ 기법(일상화되어 참신하지 않은 관념을 특수하게 만들어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것)은 어느 장르에서든 통용되고 있습니다. 눈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만들기 위해선 철학적, 사회적으로 설명할 이유가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 현재 기성 작가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구나 기성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어설프게도 보입니다.
“학생들의 작품은 당연히 세련될 수 없습니다. 창의력이나 스킬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기성 작가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한 재정적 뒷받침이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작업을 아직 완성도로 평가하기엔 이르며,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들이 가진 잠재력입니다.”
김연수 기자 hohma0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