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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최상철 작가] “그리지 않는다. 오로지 그려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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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3호 김금영 기자⁄ 2016.03.07 11:47:12

▲작품 옆에 선 최상철 작가. 사진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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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마음을 비우는 순간 삶이 행복해진다” 등 경쟁사회에서 욕심을 버리라는, 마음공부를 권하는 글귀들이 많다. 말이야 쉽다. 실천이 어려워 문제지. 그런데 최상철 작가는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작품을 통해서다. 그가 갤러리 그림손에서 3월 8일까지 여는 개인전의 주제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욕심을 버린 상태로’, 즉 무물(無物)을 지향하는 작품 시리즈를 보여준다.

검은 점들, 때로는 선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고요함이 느껴진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평온한 경지에 다다른 듯한 작가의 마음이 언뜻 보이는 듯하다. 작가는 욕심을 버리는 첫 단계로, 자신의 의지를 최대한 배제한다. “어떤 의지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의도치 않게 바로 욕심의 첫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 속 작품은 상품화 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다 보니 그림 속에 진실한 나를 담기보다 남들에게 멋지게, 근사하게 보이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려는 의지가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다”며 “그림에서 욕심이 빠지려면 내 의지가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적용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지게, 잘 보이려는 의지 말이다. 그러다보니 작업에 우연성이 많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최상철, ‘무물(無物) 14-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 x 97cm. 2014. 사진 = 갤러리 그림손

작가의 말처럼 무물(無物) 시리즈는 많은 우연이 모여 만든 결과물이다. 그의 작업엔 돌멩이와 물감이 꼭 필요하다. 일단 캔버스 양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만들어 세운다. 그리고 이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다. 돌멩이엔 고무바퀴를 달고, 이것을 물감을 풀어놓은 통에 담갔다가 뺀다. 그리고는 캔버스 위로 훌쩍 던진다.

위로 높이 도약했던 돌멩이는 캔버스 안에 떨어진다. 때로는 한 자리에 멈추기도 하고, 역동적으로 굴러다니기도 한다. 돌멩이의 흔적은 오롯이 캔버스에 남는다. 울타리에 부딪혀 방향을 바꾸며 선을 그리기도 하고, 물감이 주변에 번지기도 한다. 모두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우연성의 결과물이다. 돌멩이에 뭍은 물감이 캔버스에 모두 스며들어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게 되면 다음 돌멩이를 집어 든다. 한 작품에 평균 1000번 정도 돌멩이 던지기를 반복한다. 

돌멩이가 캔버스 위에 만들어내는 1000번의 우연

크기가 작은 작업보다는 주로 큰 작업 위주로 이뤄진다. 틀이 작으면 돌멩이가 보여주는 우연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반화된 패턴을 보일 수 있기 때문. 따라서 더 자유롭게 돌멩이가 마구 돌아다닐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작업한다. 체력적 한계도 있지만 완성된 작업은 작가에게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준다고.

▲최상철, ‘무물(無物) 13-8’.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 x 97cm. 2013. 사진 = 갤러리 그림손

연필 선이 무수히 그려진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것 또한 우연성을 기본으로 의지를 최대한 배제한 작품이다. 앞뒤로 합판을 붙인 큰 패널을 수직으로 세우고, 의자에 앉아 이 화면 쪽으로 연필을 든 손을 뻗는다. 그리고 조용히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종이에 연필이 닿으면 종이를 조금씩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팔에 느껴지는 중력이나 심호흡 할 때의 가슴 흔들림이 연필에 전달된다. 그리고 조금씩 흔들리는 선이 화면에 그려진다. 한 개의 선을 긋는 데 평균 3분 정도가 걸린다.

작가는 “노자 사상 중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하지 않고 한다’다.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다스리지 않고 다스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내 작업에 ‘그리지 않고 그려지도록 하라’로 적용했다. 그리기는 의지를 넣는 것이지만, 그려지는 것은 모든 흘러가는 섭리와 우연에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몇 십 년 넘게, 남들 못지않게 기술 훈련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필요없는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됐다. 손끝으로 그리고자 하는 의지를 버렸다”며 “작업을 할 때 항상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을 한다. 마음을 비우는 과정 중 하나다. 온전하게 내 작품 속에 내 이야기를 담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도 이 작업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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