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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플라토 미술관, 리우 웨이의 ‘파노라마’로 고별전 개막

엉덩이 산수화, 버려진 책을 깎아 만든 바위, 건축 폐기물로 지은 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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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3호 윤하나⁄ 2016.05.04 15:43:04

▲리우 웨이, '풍경처럼'. 6 패널 각각 200 x 120cm,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2004. (사진 = 플라토 미술관)

엉덩이가 산 대신 삐죽 솟은 산수화, 색만 남은 도심의 마천루 평경화, 녹색 폐자재로 지은 성당과 첨탑, 책 더미를 깎아 만든 바위 덩어리들...


플라토 미술관에서 4월 28일 시작한 중국 현대미술의 차세대 작가 리우 웨이의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의 이전 세대인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냉소적인 사실주의 인물화에 치중한 나머지 정치적 상업주의에 물든 것에 반발해 리우 웨이는 풍경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활용했다. 실제 풍경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짜이거나,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뜻하는 '유사 풍경'이 바로 그가 작업에서 풍경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풍경처럼'(2004)은 얼핏 봐선 중국식 산수화로 보이지만 실제론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위로 보인 사람들의 신체다. 체모와 속옷 자국은 물론 각 둔부마다 파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리우 웨이가 2004년 베이징 비엔날레에 참여할 당시 비엔날레에 초대받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을 거는 전시를 기획했다. 하지만 막판에 주최 측의 반대로 기획이 무산됐고, 작가는 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이 엉덩이 산수화를 출품했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 주최 측의 환대를 받으며 전시가 승인됐지만, 이 작품의 속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엉덩이를 보이는 몸짓은 상대를 조롱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데다 그 엉덩이에는 파리까지 앉았다. 주최 측과 전시 내용을 타협하는 대신 정면으로 저항하는 태도를 표현한 이 작품은 이후 작가의 작업에 큰 영향을 줬다. 그리고 비엔날레 전시를 계기로 리우 웨이가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리우 웨이의 '파노라마' 전시 전경. (사진 = 플라토 미술관)


▲리우 웨이, '룩! 북'. 가변 크기, 책, 나무, 금속. 2014. (사진 = 김상태)


'룩! 북(Look! Book)'(2014)은 다량의 버려진 책을 단단히 압축해 돌처럼 만든 후 거대 바위처럼 깍아 만든 조각들이다. 이 작품 또한 언뜻 봐선 흰 흙을 빚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 자체로 역사 속 잊혀진 유령 도시를 연상시킨다.


책은 리우 웨이가 가장 오랜 기간 탐구해 온 조각 재료다. 인류 지식과 문명의 상징인 활자문화는 오랫동안 강력한 권력의 도구였다. 하지만 시각문화가 도래하면서 이전까지 유지되던 활자문화의 역사적 권위와 무게가 마모되며 돌덩어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책은 이전까지 '읽는 것'이었지만, '보는 것'의 시대에서 그 의미가 과연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책은 읽는(read) 것이지만 작가는 제목을 통해 보는(look) 것으로서의 책을 생각하게 만든다.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마모된 대리석 기둥처럼 활자 문명의 명맥이 어렵게 유지되고 있는 오늘날 모습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깎아 만든 이 조각이 가진 무게가 여전히 무겁고 견고하게 느껴졌다.


▲'룩!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료인 책 페이지의 볼륨과 조각 단면이 인상적으로 보인다. 군데 군데 총알처럼 박힌 철심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 윤하나 기자)


▲리우 웨이, '하찮은 실수 II No.1'. 가변 설치, 문, 문틀, 아크릴 보드, 스테인레스 스틸. 2009-2012. (사진 = 김상태)


'하찮은 실수'는 작가가 2009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조각 작업으로, 그가 거주하는 베이징의 수많은 재개발 현장에서 수집한 건축 폐기물을 재료로 삼는다. 색은 그의 작업에서 또다른 중요한 상징이다. 중국 군대에서 주로 쓰이는 녹색 계열과 학교나 병원에서 쓰이는 미색 계열의 창틀과 문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이렇게 관공서 및 군의 상징 색을 띤 폐자재을 이용해 국정 불명의 첨탑, 성당 등 기념비를 만든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색깔 페인트도 까지고 나무도 상했다. 폐기물을 이용해 과거의 건축양식으로 재구성한 이 작업은 끊임없이 부수고 새로 짓는 도시 속 풍경의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전통회화를 전공한 리우 웨이는 작업 초기 비디오와 설치에 열중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보라색 공기'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분절된 색의 스펙트럼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이 위치한 베이징 근교의 숙련되지 않은 주민들의 일손을 빌려 작품을 제작한다.


▲리우 웨이, '보라색 공기(Purple Air)' No.1. 2016. (사진 = 플라토 미술관)


서구의 시각에 길들여진 중국의 이미지에 반대해 온 리우 웨이는 자기반성적 시각으로 중국 사회를 바라보는 작업을 통해 중국의 급격한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해왔다. 건축 폐기물이나 버려진 책을 노동집약적인 수작업으로 다루며 끊임없는 개발의 현장이 된 중국 또는 아시아 도시들의 디스토피아적 불확실성을 탐구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대면하는 지식인의 콤플렉스와 자부심을 드러낸다. 


"예술의 정치성이 꼭 정치적으로 보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리우 웨이는 작업을 통해 그만의 반(反)정치-반(反)상업주의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또한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모든 현실은 저항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현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래서 작업하는 행위 자체가 핵심"이라고도 말했다. 끊임없이 작업하며 시대를 조망하는 작가의 전시가 명쾌하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한편, 플라토 미술관은 이번 전시가 플라토의 마지막 전시라고 최근 발표했다. 1999년 로댕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곳은 2011년 플라토 미술관으로 이름을 변경한 뒤 현재까지 국내외 현대미술에 주목해 왔다. 그간 열린 50여 개의 굵직한 전시들은 국내 동시대 미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전시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태평로 삼성생명 건물이 부영그룹에 매각되면서 이 건물에 위치한 플라토 미술관도 문을 닫는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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