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이미지를 처음 접한 독자라면, 이 그림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서양 미술사의 오랜 소재인 여성 누드화가 일본 만화적 형식을 만났다. 일본 만화를 연상시키는 과장되게 귀여운 얼굴의 소녀와 마찬가지로 과장되게 풍만한 몸에는 우리가 다소 편협하게 인식하는 일본 만화의 전형이 들어 있다. 그런가하면 그림 속 모든 개체의 윤곽에 자리한 검은 색 테두리도 만화에서 보던 펜 선을 닮았다. 극단적으로 평면에 가까운 색감 탓에 디지털 이미지 혹은 인쇄 만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작품은 이윤성 작가가 직접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이 야하다고? 그렇다면 당장 미술 교과서나 미술 교양 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전시대의 서양 누드화는 야한 그림일까? 다시 생각해보자. ‘일본 만화 같은’ 이 회화 작품은 과연 야한 그림일까?
서양 고전미술과 동양 서브컬쳐의 결합, 신인류(NU-TYPE)의 도래
이윤성은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서브컬처(하위문화)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순수회화로 재구성한다. 80년대 태생의 작가는 여느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만화나 게임을 접하며 자랐지만, 정규 미술 교육을 받으면서 이 둘 사이의 괴리를 경험했다. 이를테면 입시 미술과 고전 회화의 소위 ‘회화적’인 색감과 그가 보고 자란 선명하고 발랄한 색감처럼, 작가가 경험한 이 둘의 차이는 극명했다.
그의 초기 전시 'NU-TYPE(뉴타입)'은 새로운 인류, 새로운 유형이란 의미로 일본 만화에서 빌려온 제목이었다. 우선 소재적인 접근을 보자. 누드화는 서양 미술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돼 온 주제다. 각 시대마다 다른 표현 방식과 모습으로 누드화가 그려졌지만, 공통적으로 여성의 누드화는 당대 남성들의 욕망에 의해 가공된 신화적 신체를 표현한다. 현대 서브컬처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이미지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윤성은 이에 대해 “그런 욕망이 어떤 도구들을 만났을 때 다듬어지고 표현되는 과정과 결과물에 관심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은 만화적 표현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 표현하는 인물은 재빠르고 명확하게 그려져야 하기 때문에 과감한 면 분할과 선으로 대상을 그린다. 이러한 특징들 속에서 나타나는 표현법들이 작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였고 질감을 가진 캔버스 위에 그려진다면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궁금해서 작업을 시작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름 없는 '토르소'에서 감정 표현하는 ‘다나에’로의 진화
머리와 사지가 없는 형태의 조각 작품을 토르소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의 ‘토르소’ 연작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해온 토르소와는 사뭇 다르다. 꽃분홍색 선혈을 흘리며 사지의 파열을 암시하는가 하면, 과장된 자세로 몸을 비틀지만, 얼굴엔 여전히 상큼한 미소가 남아 있기에 귀엽지만 기묘하다.
작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에서 토르소 연작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여 주인공(쿠사나기)가 마지막 전투에서 전차의 해치를 뜯는 장면인데, 그림과 마찬가지로 쿠사나기의 사지가 파열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신체적 고통과 절멸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이어나가는 모습으로도 인상에 남는다. 그에 대해 작가는 “파괴되는 신체의 이미지를 다른 각도로 보는 시선"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미대에서 그리스 시대의 토르소 조각상을 배웠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보존 과정에서 부서지고 훼손된 모습을 접했다. 그렇게 보존되고 기록된 매체 및 표현방식에 대해, 실제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작가에겐 인상적이었다. "토르소 연작의 표현들 또한, 애니메이션의 폭력적인 표현들에서 조형적인 미를 찾아보는 시선을 갖도록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초기작 ‘토르소’가 다음 작업 ‘다나에(Danae)’로 진화하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이름 없는 토르소의 이미지가 다양한 감정을 갖고 표현하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다나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에 의해 아들 페르세우스를 낳은 여성이다. 수태고지를 의미한 신화적 아이콘으로서, 예술의 원천이 됐던 중요한 도상들 중 하나다.
프레임의 등장, 매체의 형식적 특성 활용
이윤성은 다나에를 통해 토르소 연작과 마찬가지로 서양미술사에서 시작된 아이콘을 일본 만화식 표현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항상 수동적이고 순종적으로 묘사됐던 도상 속 다나에의 감정에 주목하고, 다양한 표정을 불어넣었다. 황금비가 다나에에 닿는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표정에 집중한 것이다. 베시시 웃거나, 조바심을 내고 화를 내는 등 다양한 표정을 만화적 방식으로 삽입했다. 그런데 우리가 다나에에서 주목할 점이 또 하나 숨어 있다. 바로 캔버스에 만화책의 컷과 같은 프레임이 도입된 것이다.
다나에는 ‘뉴타입’의 다음 전시인 ‘NU-FRAME(뉴프레임)’이란 제목으로 전시된 작품이다. 이 전시는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프레임 양식(틀)을 탐구하는 데 집중한 전시다. 직접 만든 직사각형이 아닌 캔버스들 위에 다나에의 표정에 집중한 '다나에 컷-인 컬러' 연작이나, 대형 '다나에' 작업 내에 자리한 분할선들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다나에 컷-인 컬러는 전시장 벽을 화면 삼아, 만화책의 화면 편집 방식인 컷 분할된 캔버스를 재조합한 작품이다. 만화의 도상적 특징을 참조한 '뉴타입'에서 만화의 내용을 담는 형식으로 범위를 확장시킨 '뉴프레임'까지 그는 현재진행형으로 레퍼런스(참조)를 발견해간다.
고고한 현대미술? 서브컬쳐의 유쾌한 유입!
그의 개성 넘치는 작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해석과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두산 뉴욕 레지던시에 체류 중인 이 작가과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서브컬처의 몇몇 표현들의 유해함에 대해서 부정할 순 없는 것 같다. 다만 이런 표현들 가운데 또 다시 두드러지게 새로운 양식을 찾을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꿔 전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서브컬처가 부여하는 확장 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드래곤볼 초무투전 게임을 예로 들었다. 이 게임은 두 명의 만화 캐릭터가 서로 생존을 놓고 싸우는 폭력적인 게임이지만, 작가는 “게임의 컷 연출과 거대한 공간을 제한된 화면에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이 등장하는 표현에 더 집중했다”고 말했다. 뉴프레임 전시에 등장하는 선도 바로 이런 레퍼런스로부터 파생됐다.
미술의 영역을 고전적 상위예술의 범주로 제한하지 않고, 실제 자신이 향유하는 하위문화를 통해 새 시각을 제시하는 것은 이전부터 지속돼온 발전적 시도다. 상·하위의 다양한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향유하고, 영향 받길 주저하지 않는 일군의 한국 젊은 작가들의 등장은 특히 2000년대부터 발현된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만화나 게임 등 대중적인 오락·소비 문화로만 치부되던 서브컬처를 현대미술의 소재로 등장시킨 이들 중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윤성의 작업을 통해 이 현상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