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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산업화된 색깔의 비명, 박미나의 ‘스크림(Scream)'전

시청각에서 5월 17일~6월 30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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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6호 윤하나⁄ 2016.06.03 17:26:01

▲박미나, '레인보우 스크림(Rainbow Scream)'. 2016. (사진 = 김상태)

정사각형 캔버스에 정방형 동그라미가 규칙적으로 퍼져나간다. 각 동그라미의 다양한 색감이 파장을 만들어내고, 정가운데 귀여운 하트가 보일 때쯤, ‘어라? 뭔가 보인다!' 윗 돌기가 코로, 양옆의 돌기가 귀로 보인다면 이제 가운데 하트는 목젓이 된다.

 

우리에겐 스누피로 더 유명한 피너츠의 찰리 브라운이 연상되는 동글동글하게 귀여운 아이는 하트 목젓을 내놓고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색의 파장은 소리를 따라 메아리치고 공간은 어느새 소리 없는 비명으로 가득하다. 끔찍한 비명은 아닌데, 어딘가 마음에 요동쳐온다.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옆길에 위치한 시청각에서 박미나 작가의 전시 스크림(Scream)’517일부터 열렸다.전시 제목 그대로 비명을 지르는 아이 그리고 박미나를 시청각에서 만났다


   

▲박미나 작가. (사진 = 윤하나 기자)

 

▲박미나, '스크림(Scream)'의 전시장. (사진 = 김상태)


한옥을 개조한 신생공간 시청각에는 독특한 정취를 간직한 각 방마다 비명을 지르는 아이 그림이 한 점 이상 놓였다. 100cm부터 180cm까지 5가지 크기의 정사각형 캔버스는 벽에 기댄 채 반대편을 향해 파동을 전한다. 어떤 방은 마주본 채 메아리를 이루고, 또 어떤 방은 나란히 서서 화음을 만들 듯 단란하다. 끝없이 소리치는 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까?


"개인 이야기가 아니라 색의 산업화를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대개 자기의 생각을 연구하고, 자기표현의 한계를 실험하거나 자신의 시각이 반영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런 성향을 예술가의 전형이라 부른다면, 박미나는 단연코 전형적이지 않은작가다.

 

박미나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마치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일처럼 여겨져 불편하다고 고백한다. 그에겐 스스로를 남에게 내보이는 일보다 자기 밖의 세계가 훨씬 궁금하고 즐겁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보다, 오로지 세상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여러 가지 객관화된 방식으로 시각화시키는 데 집중해왔다.

 

그 가운데 작가가 가장 관심을 가진 주제는 단연 색깔이다. 그는 색깔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온갖 색들을 채집하게 됐다고 한다. 색깔의 채집과 분류는 그의 작품 근간을 이루는 큰 재산이자 작가의 취미다. 각 색깔별로 수백 개의 물감과 펜을 채집해온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대표 시리즈 딩벳(Dingbet)회화색칠공부를 작업해왔다.

     

작가의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바로 작가가 사용하는 색깔의 종류다. 그는 색깔을 섞거나 만들어 쓰지 않고 물감으로 생산된 색깔만을 그대로 고집해 사용한다. 이는 작가가 색깔을 수집·분류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사업화 과정에서 이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하는지까지 추적해나간다.


특히 딩벳 작업은 늘 가장 최신의 물감을 활용한다. 각 제조회사의 색 팔레트를 계속 확인하며 발전과 변화를 추적한다. 이를테면 2000년대 중반 반짝이가 들어간 물감의 제조가 정점에 달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의 작품에는 야광, 형광, 반짝이 물감이 주로 쓰였다. 아크릴 물감의 발전이 더디자 신상품 유화 및 펜도 작품에 활용됐다. 


시청각의 이번 스크림 전시에도 이런 최신 색의 반영이 이뤄졌다. 이탈리아의 어느 물감회사가 제조한 파스텔 색과 형광 오렌지색의 대비, 노란 펄이 들어간 흰색과 검은 색의 대비 등 당시의 색 경향을 적극 반영한다.


▲박미나, '스크림(Scream)'의 전시장. (사진 = 김상태)


찰리 브라운의 비명? 이야기보다 형식   


앞서 언급한 대로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의 이야기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 모두 그렇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작품의 형식과 방법에 집중한다. 보다 객관적으로 작업을 설명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작업할 방법을 강구하며 자신의 색감 컬렉션을 채우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스크림 연작은 작품 내 서사가 숨어 있는 (유일한) 예외적인 작업이다. 2001년 스크림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작가가 염두에 둔 것은 찰리 브라운도, 남자 아이도 아닌 성별이 없는 누군가였다. 하지만 작품이 공개되고 많은 이들이 찰리 브라운을 언급해 작가도 뒤늦게 피너츠를 공부했다고 한다.


흔히 회화에서 어떤 대상이 등장하면, 그것은 작가 자신을 은유한다고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스크림의 대상은 작가가 아니라 찰리가 됐고, 작가는 안도했을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스크림의 이야기를 밝힐 생각이 없다는 작가의 얼굴에서 부끄러운 듯 유쾌하게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스크림 연작엔 작은 변화가 포착된다. 찰리 브라운이 한 명인 그림이 있는가 하면, 두 명일 때가 있고, 찰리의 하트가 목젖 밖으로 나와 패턴을 이루고 때론 찰리를 뒤로 숨겨버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시청각의 안인용 기획자와 함께 한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이 연작에는 '소리 지르는 인물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하트를 사용한다' 같은 몇 개의 규칙들이 있다. 이 규칙들 안에서 다시 몇 개의 변주(variation)를 만들고 그 안에 내용을 넣을 수 있는지 시도해보고 싶었다." 이어 "스토리를 짜야 변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제품의 시리즈를 만드는 방식을 차용하기도 하고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을 두고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박미나, '오버랩트 스크림(Overlapped Scream)'. 2016. (사진 = 김상태)

그림과 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외적인 작업인 만큼 스크림은 또 다른 접점을 이어간다. 연작을 시작할 당시 작가는 그림과 상품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작품이 가진 이미지가 서사로 드러나는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을 작가는 상품에서 찾은 것일까? "미술이나 음악이 아니라 베어브릭, 블라이스 같은 인형이나 운동화 같은 상업 제품에서도 이런 식의 변주를 사용한다"는 그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는 고전적 이미지 활용보다 산업화에서 파생된 새로운 이미지 내러티브를 작품에 끌어들인다.


작품 제작에 들이는 시간과 노동력을 작업을 통해 정직하게 드러내는 작가는 자신이 고안하고 실험한 방식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좀 더 똑바로 대형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던 여러 방법들이라던가, 그리드를 뚜렷하게 12등분 하는 방법 등 그간 자신이 실패하며 체득한 방식들을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는 기술력과 산업화, 그리고 인간의 접점을 흥미롭게 바라보는데,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은 이런 흥미와 연관돼 있다.


아무리 산업이 고도화되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 해도, 문제를 해결하고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 믿음으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해결하고 완성한다. 부단히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은 상상하던 이미지를 실재화시키는 작가만의 완벽한 방식을 통해 보상받는다. 작가는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대하는 바가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박미나의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형식과 색의 다채로움뿐만 아니라 과정의 완결성도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지금까지의 설명에 의하면 박미나는 구입한 물감 그대로의 색을 사용하고, 작품 제작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스토리를 불편해하는 '비전형적인' 작가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그는 전통적인 그림 속의 내러티브나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 주변 일상 속 도상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실제적 방식을 작업에 끌어들인다. 그의 작품은 도상과 캔버스의 크기, 색감, 패턴이 주는 관계성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체험적이다.


▲박미나, 스크림(Scream)의 전시장. (사진 =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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