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이미지 폭주 시대다. 1초가 지루하다며 새로운 사진들이 쏟아져나온다. 보도사진 경쟁도 치열하다. 더 많은 눈길을 끌어, 조회 수 하나라도 더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사진들이 쏟아진다. 개수 경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으로 쏟아지는 양 때문에 이미지가 식상해지기도 한다. 너무 크게 밥상을 차리면 밥맛이 떨어지듯. 그래서 사진 한 장 한 장의 의미가 가벼워지는 세상이다.
이 가운데 세계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로이터통신사의 주요 사진 작품을 소개하는 ‘로이터 사진전 -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가 열린다. 주최 측은 “해외 출처의 사진전은 기왕에 완성된 기획 전체를 갖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우리가 직접 기획 및 검토에 참여했다. 로이터가 이번 전시를 위해 아카이브 전체를 공개했다. 협조가 원만하게 이뤄졌고, 그 결과가 전시장에 모였다”고 밝혔다.
그동안 퓰리처상(미국의 언론 상) 수상 사진들에는 드라마가 있었다. 올해엔 뉴욕타임스와 로이터가 퓰리처 상을 받았다. 이들의 사진은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과거 수상작에 비한다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정처 없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르비아 국경에서 헝가리로 넘어가는 난민들이다. 고무보트를 타고 에게헤를 건너는 시리아 난민도 있다. 그저 앞을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지쳐 보이지만 눈동자엔 생존을 향한 의지가 또렷하게 읽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슴을 관통하는 사진들이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사진이 담은 드라마에 주목한다. 보도사진으로 범주를 잡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그 안의 드라마를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시를 기획한 호정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보도사진이지만 보도사진스럽지 않은 사진을 추구했다. 보도사진만 들이댈 게 아니라, 사진들을 통해 세상의 드라마를 전달하려 했다. 치열한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 사진들에는 인간애와 감성이 담겼다. 로이터 사진 기자들이 추구하는 점이기도 하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로이터가 1851년부터 현재까지 보유한 1300만 장 이상의 아카이브 자료 중 엄선한 450여 점을 선보인다. 선정 기준에 대해 호 큐레이터는 “로이터 사진 기자들의 특성 중 하나는 현장에서 사실 기반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신의 감성의 결, 즉 세계관을 투영시킨다는 점이다. 이런 감성을 더한, 대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을 대부분 선정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클래식’ ‘이모션’ 등 6가지 테마와 에필로그로 구성
로이터(Reuters)의 앞 글자를 따 ‘로이터 클래식(Reuters classic)’, ‘이모션(emotion)’, ‘유니크(unique)’, ‘트래블 온 얼스(travel on earth)’, ‘리얼리티(reality)’, ‘스포트라이트(spotlight)’,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총 6개 섹션에 추가 섹션 하나로 꾸려진다.
가장 첫 번째 섹션인 로이터 클래식엔 지금의 로이터를 만든 기념비적인 사진 29점이 전시된다. 20세기의 굵직한 사건들을 함께한 로이터의 기록들과, 그들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현재의 대표 사진들로 구성됐다. 한 예로 핀바 오라일리가 니제르 서북부 타우아에서 2005년 찍은 사진은 깊은 여운을 전한다. 영양실조 상태인 한살배기 아이의 손가락이 엄마의 입술을 누르는 모습이 담겼는데,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단면을 포착했다. 다비트 브라우흘리가 1989년 찍은 사진엔 한 시위자가 베를린 장벽을 때려 부수는 모습이 담겼다. 역사적 현장의 생생한 사람 기록이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세계 1차 대전 사진도 이번에 공개된다.
호 큐레이터는 “역사적 순간에 초점을 맞춘 20세기 사진들, 그리고 21세기로 와서 디지털화된 사진을 보면 기술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주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섹션 '이모션'에서는 인간의 희로애락 감정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 28점이 기다린다. 또 하나의 드라마라고 불리는 스포츠 사진들과 더불어 인간의 슬픔, 기쁨, 분노, 두려움, 환희 등을 표출한 사진이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다. 호 큐레이터는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며 일기를 쓰듯 메모한 글들이 있다. 이 글도 사진과 함께 전시된다. 사건 기록과 감정 투영이 두드러진 글이 감정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와 라이언 록티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800m 자유 수영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뒤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모습, 우사인 볼트가 2015년 중국의 제15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0m 경기에서 우승한 후 팬과 악수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섹션이 묵직한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 섹션은 역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유니크 섹션은 가장 색감이 다채로운 구간이다. 세상을 만들어가는 존재들의 유쾌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을 211점의 컬러 작품으로 구성했다. 전시장 한 벽면에 211점이 전시되고, 다른 벽면엔 이 211장의 반사 화면이 자리하면서 전시장 전체에 화려한 그러데이션을 주는 구성이다. 호 큐레이터는 “보도사진은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허를 찌르는 섹션이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물속에서 돌고래와 노는 아이, 말을 타고 가는 소녀 등의 모습이 파랗고 노란 다채로운 색감으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드라마를 만드는 세계 곳곳 사람들의 일상
'트래블 온 얼스' 섹션은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다. 자연의 아름다움, 동물의 세계, 문화가 있는 인간의 삶이 주요 테마다. 앞 섹션들과 비교해 정적인 느낌도 강하다. 서울 창경궁부터 네덜란드 쾨켄호프 공원까지 다양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호 큐레이터는 “앞선 보도사진 섹션에서는 감정 소모가 크다. 지구를 여행하며 잠시 쉬어가자는 측면에서 마련한 섹션이다. 작품이 벽 앞 쪽으로 튀어나오는 등 특히 3D 느낌을 줬다. 유적지, 도시 등의 안에서 문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현장감 넘치는 사진으로 구성된 리얼리티 섹션이다. 보도사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110점 사진으로 펼쳐진다. 시리아 난민을 가득 태운 작은 배가 표류한 모습, 2015년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사람들 등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내전, 테러를 비롯해 자연 재앙까지 보여주며 고통 받는 현실을 조명한다. 뉴욕타임스와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한 작품도 이 섹션에 포함됐다.
스포트라이트 섹션은 현시대 우리가 공통적으로 겪는 사회문제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휴머니즘에 대한 기록 28점을 전시한다. 호 큐레이터는 “인권, 환경, 경제, 질병과 바이러스 등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의 문제들을스토리별로 구성했다. 사회 문제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고찰한다. 그리고 세상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것은 휴머니즘을 통한 보통 나날의 기록임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사냥꾼에 포획된 어린 바다사자들, 빙하조각의 가장자리에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 등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화면들이 묵직한 여운을 준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가 전시를 마무리한다. 세상을 바꾸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마련됐다. 호 큐레이터는 “거창하지 않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들이 이곳에 전시된다. 사소한 일상이 감동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관람객들이 한 편의 드라마를 감상하고, 이젠 본인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이어지도록 돕기 위해 꾸렸다”고 말했다.
방대한 양의 자료가 한 전시장에 모이다보니 정신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사진 하나하나에 담긴 드라마는 묵직하고 진중하다. 사진은 말이 없다. 그저 포착한 화면을 보여준다. 이미지 폭주 시대에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볼 만한 전시다.
한편 이번 전시를 위해 배우 진구가 목소리 재능기부를 했다. 주요 사진 작품 20여 점을 설명하는 오디오 가이드로 나선 것. 진구는 “기자들의 생생한 메모와 다이어리 덕분에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막연하고 어렵게 생각한 보도사진과 가까워졌고, 보도사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디오가이드 판매 수익금 일부는 아동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 웃음을 되찾아 주기 위해 ‘홀트아동복지회 학대피해아동후원’에 진구 이름으로 기부될 예정이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6월 25일~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