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8호 김연수⁄ 2016.06.16 19:23:01
삼성 리움미술관은 지난 6월 13일 제2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의 수상자로 박경근을 선정했다. 박경근(1978년생) 작가는 2000년 미국 UCLA에서 디자인과 미디어아트를 전공했으며, 2005년 CalArts에서 영화‧비디오 석사과정을 마쳤다.
다큐멘터리 영화 ‘청계천 메들리(2010)’, ‘철의 꿈(2014)’으로 미술계와 영화계에서 동시에 주목을 받았으며. 한국에서 개인전과 세계 각지에서 단체전 9회, 영화제 8회에 참여했다. 2015년 제2회 들꽃영화상 촬영상, 2014년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넷팩상, 2014년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작가시선상, 2014년 로마아시아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이번 ‘아트스펙트럼’전에서 선보인 ‘군대: 60만의 초상’은 한국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을 영상에 담았다. 신체의 부분과 군집의 모습 등 강한 대비가 돋보이는 카메라 워크로 집단과 개인의 관계 등을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라본다.
서사나 의식변화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없지만, 관객들은 작가가 의도한 프레임에 맞춰 시선을 따라가며, 촬영하는 작가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 혹은 이해를 시도하게 된다. 현재 촬영 중인 장편 영화에서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먼저 편집되어 선보이는 작업으로서, 장편 영화와는 다른 독립적인 연출 기법을 사용했다.
이번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의 심사위원으로는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백지숙 미디어시티서울2016 예술감독, 이준부 삼성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참여했다.
심사위원단은 “이번 ‘아트스펙트럼 2016’의 참여 작가 10팀은 범상치 않은 아이디어와 진지한 열정을 보여줬으며, 그 중에서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작가로 성장이 기대되는 박경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군대: 60만의 초상’은 정묘한 연출 감각과 새로운 편집으로 독특한 영상미를 구현한 작가의 실험 정신이 돋보인 작품”이라며,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작업방식이 아트스펙트럼이 추구하는 전시 성격에도 부합한다”고 전했다.
2001부터 시작해 올해 8회를 맞은 ‘아트 스펙트럼’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이는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성장할 경쟁력 있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왔다. 2014년부터는 미술관의 내부 큐레이터와 외부 평론가가 추천한 10명의 작가(팀) 중 별도 심사를 통해 선정한 1명에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과 부상 3000만 원을 수여하고 있다.
박경근은 “아직 왜 예술이라는 쓸모없는 일을 계속 하면서 내가 사는지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저의 쓸모없는 시간 낭비에 이런 좋은 후원을 받게 돼 행운이라 느끼고, 드디어 부모님께 뭘 하면서 사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라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한편, CNB저널은 아트스펙트럼 전과 관련해 박경근 작가를 소개한 바 있다.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18849). 작가상 선정 소식이 들려온 직후,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수상 소감에 대한 추가 질문과 함께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 축하드립니다. 우선 소감은?
“아, 오늘 리움 쪽에 소감문을 전달했는데, 보도 자료엔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 예술이 왜 쓸모없는 일이라고 하셨나요?
“원래 예술이 쓸모없는 일이잖아요. 쓸모 있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에게 생각이나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도 예술의 기능 혹은 역할 아닌가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쓸모가 없는데, 예술의 사회적인 기능은 쓸모없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일에 집중하잖아요.”
- 이번 아트스펙트럼에 참여한 작가(팀)들 중에서도 현재 사회 현상을 직시하는 작업들도 많았는데요?
“물론 그런 작업들의 역할도 있겠지만, 저에게 예술은 기능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도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셀 뒤샹도 스스로를 'An engineer of lost time'(잊혀진/놓쳐버린 시간의 기술자)라고 칭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거죠.
- 그런 작업 태도는 작업에서 표현방식과도 연관이 있겠죠? 감정이 우선시되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어떤 특별한 메시지나 생각이 바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아닌 시각을 통해 감정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꽤 많은 상금을 어디다 쓸 건지 식상한 질문을 던져 봤다. 박경근은 “놀아야죠. 스파같은 데 놀러가려고… 스페인에 여행을 가서 한 번에 써버릴까”라며 옆에 있던 음악감독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담 같기도, 농담 같기도 한 대답이었다.
'다른 작가들은 항상 작업 비용이 필요하니 작업에 투자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빚 갚겠다는 사람도 있는데'라고 물으니 그는 “난 빛도 없고, 저축도 없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 아, 싸이 노래 가사 중에 ‘내일 걱정은 내일 모레…’ 뭐 그런 가사도 있더라”고 대답했다.
그의 “예술은 쓸모없다”는 말이 자극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짧은 인터뷰 후에 기자가 느낀 그의 말은 예술을 한다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숭고한 게 예술이 아니라는.
생활인에게 예술은 정말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가치 변화를 위해선 정말 쓸모없는 생각과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며 한번씩은 하는 자연스런 질문이기도 하다.
현재 찍고 있는 군대 배경 영화는 내년 4월까지 촬영할 예정이다. 작품의 주인공이 4월에 제대하기 때문. 개봉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군에서 되게 협조를 잘 해줘서 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와 육군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고, 현재 촬영 중인 주인공이 군생활을 무사히 잘 마치기를 기원한다”며 이 말을 꼭 빼놓지 말고 넣어달라고 했다. 촬영을 무사히 잘 끝마치고 싶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