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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문화적 혼종] 동양화냐 서양화냐 묻지 마오…“혼종이 우세종”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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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0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07.04 09:27:03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이 작품이 동양화일까? 서양화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많은 경우는 사용된 매체(재료)와 표현 기법의 정체를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 앞에 섰을 때이다. 동양화는 화선지에 먹(墨), 서양화는 캔버스에 유화라는 공식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감상하고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만약 동양화 작가가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거나 서양화 작가가 먹을 사용하는 경우가 생기면 여지없이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에 대한 답변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며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술을 보면 ‘어떠한 이미지와 내용을 담아냈는가?’의 문제에서도 그 문화적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동양적인 것 같은데 서양적이기도 하고 서양적인데 동양적이기도 한 작품들이 자주 눈에 띤다.

순종과 잡종 나누기는 20세기 방식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물리적인 이동 수단의 발달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대중매체의 발달은 – 간접적이지만 - 세계 여러 곳의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휴가철에 외국 여행을 가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TV에서는 해외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고 이국적인 문화를 선보이는 프로그램, 다양한 국적의 출연자들이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는 오락 프로그램들이 인기리에 방영된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미 20년 전에 백남준은 자신의 인공위성 쇼인 ‘바이바이 키플링(Bye Bye Kipling)’(1986)에서 ‘동양과 서양은 만날 수 없다’고 했던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을 반박했다. 그리고 ‘TV 부처’ 시리즈를 통해 서양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물질문명과 동양의 명상, 성찰의 정신을 결합시켰다. 그의 작품들이 선지했듯, 오늘날 한 민족의 정체성은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유지될 수 없다. 상호이질적인 문화 간의 접촉은 필수적이 되었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던 혼종이라는 단어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긍정적인 의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차이와 다원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는 모더니즘 시기까지 이어져온 순수와 잡종의 이분법적 구별을 벗어나게 했다.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들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역동적으로 혼합시키는 혼종성(hybridity)은 오늘날을 대표하는 특징이 되었다. 

따라서 매체나 표현 방법 같은 형식적인 면뿐 아니라 소재와 내용, 주제적인 면 모두에서 혼종적인 문화정체성을 담아내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김수자의 ‘바늘 여인’ 시리즈와 서도호의 ‘집’ 시리즈는 서로 다른 문화가 교차되고 반응하는 우리의 현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과 같다. 그들의 작품이 담아내는 노마디즘(Nomadism, 유목주의)적인 삶, 즉 문화와 문화, 민족과 민족을 가로지르는 삶은 현재 우리의 현실 그 자체이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Venezia Biennale) 특별 전시의 개막 행사로 퍼포먼스를 진행하여 이슈가 되었던 재불화가 남홍 역시 이러한 맥락 안에 위치한다. 남홍의 퍼포먼스는 ‘한국의 미를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사명감’, 어린 시절 목격했던 굿, 서양의 춤과 음악 등이 결합된 융·복합적인 결과물이다.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회화 위에는 세속적인 장소를 정화시키고 소원을 비는 행위인 소지(燒紙)가 끝난 후 남은 한지가 콜라주(collage) 된다. 

▲정현숙 개인전 ‘역사에 빛을 더하다(2016)’의 롯데호텔갤러리 전시 장면, 사진 제공 = 정현숙 작가

1990년대 이후 급속도로 전개된 동아시아의 팝 아트(Pop Art)는 문화적 혼종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미국적이라 여겨지던 팝 아트와 동양의 만남은 이미 그 자체로 잡종적이다. 대표 작가인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는 아크릴로 그려진 자신의 회화에 일본 전통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금박과 은박을 사용했고, 병풍처럼 캔버스를 이어 붙였다. 일본의 가와이(かわいい) 감성과 오타쿠(otaku, 御宅) 문화도 그의 작품의 중요한 주제이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사용한 단어 슈퍼 플랫(Super Flat)은 순수 미술과 대중문화, 고급과 저급, 서구와 일본(동양)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왕광이(Wang Guangyi)의 ‘대비판(Great Criticism)’ 시리즈에는 코카-콜라(Coca-Cola), 샤넬(CHANEL) 같은 서구의 소비 시대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상표들이 문화 혁명(文化革命)의 선전화(宣傳畵) 이미지와 결합된다.  

다문화 시대라서 더 중요해진 개성-특수성

한편, 조금만 눈을 돌리면 전통적인 회화로 보이는 작품들에서도 혼종성을 찾아볼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의 이슈들은 설치와 개념 미술, 미디어 아트(Media Art) 같은 장르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오해를 피하고자 오늘은 정현숙의 작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정현숙의 작품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달항아리를 비롯한 조선 시대의 도자기들이다. 작가는 디지털 프린트(digital print)로 도자기의 형상을 인쇄한 캔버스 위에 평균 0.8x0.2(cm) 크기의 자개를 붙여나가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도자 예술은 많은 학자들이 한국미(韓國美)를 대표한다고 중요하게 다루었던 장르 중 하나이다. 서양화를 대표하는 유화로 밑칠이 된 캔버스, 그 위에 쌓이는 - 나전칠기(螺鈿漆器)를 떠오르게 하는 - 자개로 완성된 도자기는 말 그대로 동서양의 결합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에 빛을 더하여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이뤄낸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련이 작업들이 모든 것을 하나로 뒤섞기를 원하거나 무조건적인 다양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다문화 시대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아내는 것이다. - 모순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 다양성을 포용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나만의 개성과 특수성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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