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1호 김금영 기자⁄ 2016.07.08 18:47:57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국내 미술계가 위작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6월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1차 토론’이 열렸다. 당시 비교 사례로 프랑스와 미국이 언급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소개되지는 않았다.
이어 7월 7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2차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장 미셸 르나드 ‘프랑스 전문감정가협회’ 부회장, 린다 셀빈 ‘미국 감정가협회(AAA)’ 회장, 알렉시스 푸놀 변호사·프랑스 예술법 전문가가 참석했다.
장 미셸 르나드 부회장은 ‘프랑스의 감정 시스템과 감정사 제도’를, 린다 셀빈 회장은 ‘미국의 감정 교육 시스템’을, 알렉시스 푸놀 변호사는 ‘프랑스의 미술품 유통 시스템과 법제 사례’를 각각 발표했다.
장 미셸 르나드 부회장 발표의 핵심은 ‘보증서’였다. 그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미술 시장은 전문 갤러리, 인터넷 사이트, 경매 회사를 통해 운영된다. 다른 국가들과 차이가 있다면,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보증서”라며 “미술품 거래 시 판매자는 작품명 혹은 특성에 관계없이 진위를 보증해야 한다. 판매 조건에 보증이 들어가 있다. 보증서는 작품의 진위와 소장 이력, 제작 연도, 기법 등 작품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보증서는 특정 판매 조건이나 판매 기관에 상관없이 엄격히 법으로 규정돼 있다. 갤러리나 경매 회사가 보증 기간을 (임의로) 정할 수 없으며 제정된 법에 따라 실행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보증 기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후 대응 법규에 대해서도 밝혔다. 장 미셸 르나드 부회장은 “만약 보증서가 위조된 것이라면 3주 이내에 반환, 대금이 이뤄져야 한다. 또 구매자는 5년 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 구매자에게는 재판매권이 20년간 주어진다”며 “판매자에게 감정전문가 동반의 의무는 없지만 당국은 전문가 동반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이것이 점점 보편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장 미셸 르나드 부회장에 따르면 프랑스는 개인의 자유보다 전체 사회의 평등을 중요시한다. 그는 “거래 당사자 즉, 판매자와 구매자 두 사람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판매자는 표준적 정보 제공의 의무가 있고, 이를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잘 따라야 한다”고 짚었다.
감정전문가의 독립성은 특정한 법률 체계에 의해 정의돼 있진 않다. 장 미셸 르나드 부회장은 “국가가 미술 시장에서 쓰일 전문 학위를 제공하진 않는다. 다만 법원, 세관 공무원 등이 임시로 구체적이고 특정 임무를 맡길 수는 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자신을 감정전문가라 칭할 수 있다는 소개였다. 하지만 “그에 준하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어 “명성 있는 감정 전문가들 중 대다수는 여러 전문가 협회로부터 공인 받은 전문가들”이라며 “7~10년 정도의 경력을 갖췄으며 시험을 통과하고 작품의 진위에 대한 전문적인 보증서를 발급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만이 감정전문가 협회 회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알렉시스 푸놀 변호사 또한 “프랑스에서는 유통 시스템에서 감정 보증서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보증서 첨부 내용물 중 작품 설명 도록에 단어 하나라도 잘못 쓰이면 판매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 실제 프랑스 법원의판결 사례도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판매 이후 자료 보존도 중요하다. 그는 “거래 이력 등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긴 자료를 판매 후 5년간 보존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6개월 징역형 등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정확한 보증서 발급 관련 유통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구매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보증서 단어 하나 틀려도 구매 무효”
미국 “진위감정사와 감정평가사 역할을 구분”
프랑스가 위작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보증서’에 집중한다면, 미국은 ‘감정 교육 시스템’을 강조한다. 린다 셀빈 회장은 “한국의 위작 논란을 보고 미국과 다른 점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감정 평가 자체가 진위 여부 판단과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되는데, 미국에서는 어떤 물건에 대해 가치를 평가하는 감정평가사(appraiser)와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진위감정사(authenticator)의 역할이 다르다”고 짚었다. 이어 “감정평가사들은 작품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순수미술과 장식미술 작품 등 개인 재산 감정사에 대해 정부기관이 따로 자격증을 발급하지는 않는다. 자율적으로 감정평가재단(TAF)의 기준과 조건, 또 윤리 강령에 맞춰 자격 부여가 이뤄질 뿐이다. 관(官)이 아니라 민(민간자율) 중심으로 진행되는 미국 시스템의 특징이다. 미국 내에는 3개의 개인 재산 감정평가사 협회(미국감정가협회, 미국감정사회, 국제감정사회)가 있다. 3개 협회 모두 TAF를 후원한다. TAF는 미국과 캐나다의 모든 주요 감정 기관들로 조직돼 있다. 널리 통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마련을 위해 만들어졌다. 합의된 기준들은 통일전문평가실무를 기준(USPAP)으로 만들어졌다.
린다 셀빈 회장은 “윤리 강령에는 제3자의 영향을 배제한 채 독립적인 평가를 하고, 평가에 있어 정확성과 전문성 외의 다른 이해를 배제하며, 대상 재산의 가치와 무관하게 보수를 받는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감정가협회(AAA) 회원이 되려면 대학에서 최소 2년 이상의 감정 분야 전문 교육을 이수하고, 감정사의 법적·윤리적 이해 등 120시간 이상의 평가 교육을 이수한 뒤 종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린다 셀빈 회장은 제대로 된 감정을 위해서는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간의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소개했다. “협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박물관 큐레이터도 있고, 공공 미술에 참여했던 사람도 있으며, 학교 교편을 잡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든 걸 제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감정 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 종사자 사이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소개된 프랑스와 미국의 미술품 유통 관련 법제-시스템과 비교하면 국내의 유통 절차는 법적 구속력이 거의 없는 편이다. 미술 시장의 순리에 거의 맡긴 형편이다. 이와 관련해 정준모 평론가는 1차 토론회에서 “거액의 미술품이 계약서, 보증서조차 없이 거래되는 것이 허다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감정 분야의 열악한 상황도 공개됐다. 송향선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감정위원장은 1차 토론에서 “미술시장이 늘어나고 그림 가격이 높아지니 갑자기 감정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며 “평가원에서 10여 년 간 쌓은 진작/위작 관련 자료는 1만 4000여 점 정도다. 그런데 감정위원은 고작 40~50명에 불과하다. 차세대 감정인을 10명 모아 5년 간 실습을 시켰는데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