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해외전시-김아영 개인전] 냉소하며 숨어 있는 재난의 징후 찾기
▲김아영 작가(맨 오른쪽)와 보이스 퍼포머, 파리국립발레단 소속 무용가들과 안무가. 사진=크리스토프 펠레(Christophe Pelé)
지난 6월 18일 저녁(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국립오페라극장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에서는 약 한 시간 반에 걸친 퍼포먼스가 작가 6명에 의해 펼쳐졌다. 화려함을 넘어 호화롭기로 소문난 건축 양식의 이 극장에서 이브닝 프로그램으로 펼쳐진 이 퍼포먼스는 본 무대를 제외한 공간의 곳곳에서 각각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벨에포크 시대의 부유한 관객들을 위해 건축된 팔레 가르니에는 로비, 휴게실, 층계 복도 등이 극장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현재 파리 국립오페라단과 발레단의 주 무대이기도하다.
▲퍼포먼스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의 한 장면.(사진=김아영 제공)
역사에서 발견된 공통의 재난사고
팔레드도쿄 미술관 산하 파비옹 리서치 랩의 소속 작가 6명과 파리국립 오페라단 소속 젊은 안무가 6명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날 프로그램의 제목은 ‘난파의 소문(La Rumeur du Naufrage)’이다. 그리고 이 제목은 참여 작가 중의 한 명인 김아영의 작업 모티브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김아영은 “이 극장과 배의 이미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소재가 되기도 한 인공호수 위에 건물이 지어진 역사, 오페라 무대의 배경을 바꾸기 위해 지하에 설치된 장치들을 작동시키는 이들이 선원들이었다는 이야기까지 극장은 완벽하게 가상의 배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상상에 현대 사회의 불안을 연결한다. 그는 불안의 원인 즉,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의 원형이 무엇인지 연구하며,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 같은 대홍수 서사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길가메시 서사시’ 및 코란, 인도 신화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에 역청을 바르라’는 신의 명령처럼 오페라 극장의 지하 호수 역시 역청으로 마무리 됐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날 김아영이 선보인 15분 가량의 퍼포먼스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In This Vessel We Shall Be Kept)”는 이런 연구를 통해 만든 리브레토(음악극의 대본)에 작곡가 조현화와 6명의 보이스 퍼포머, 파리 국립발레단 소속 안무가 세바스티앙 베르토(Sebastien Bertaud)와 무용가 6명이 협업해 이뤄졌다.
관객을 크루즈 여행객처럼 승선시키며 시작하는 이 공연은 대홍수 서사의 내용과 비오는 소리 등을 목소리로 재연하는 등 무용가들의 움직임과 함께 난파된 배의 모습을 그린다. 고대 그리스의 점토판에서 일부 차용되기도 한 배가 살아남길 바라는 기원과 염원은 결국 재난을 맞이하며,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는 난민(보트피플) 문제부터, 현대 사회의 표류하는 개인의 의식과 사회적 현안들까지에 대한 총체적 은유이기도 하다.
▲퍼포먼스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의 한 장면.(사진=김아영 제공)
우리를 지켜줄 배?
한편, 이날의 퍼포먼스는 파비옹 리서치 랩에서의 연구를 마무리하며 가지는 개인전으로 연결된다. 동명 제목의 작품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퍼포먼스에 선보인 보이스 퍼포머 6명의 음성과 오페라극장과 배, 그리고 대홍수 서사시에 관한 연구 과정을 벽에 시각화한 작가 특유의 깔끔한 벤다이어그램 형식으로 포함한다.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업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의 벤다이어그램 이미지.(사진=김아영 제공)
이와 함께 선보이는 벽화 ‘깊은 애도(Grand Deuil)’는 대홍수 서사의 모티브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중세시대의 그림, 인도 무굴 제국 시대의 그림 그리고 오페라 극장의 내‧외부 이미지가 혼란스럽게 콜라쥬된 작품이다. 작가에 따르면 프랑스어로 ‘깊은 애도(Grand Deuil)’는 대리석의 이름이기도 하며, 여인이 남편을 잃었을 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입는 프랑스의 상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깊은 애도(Grand Deuil)'의 부분 이미지. (사진=김아영 제공)
이 밖에도 프랑스 국립 시청각 자료원(INA)의 지원으로 발견할 수 있던 오페라극장의 지하 영상의 모습과 여성들의 목소리 연기로 만든 영상 작업 ‘출구 없음(Montée Sans Issue)’등이 선보인다. 이 영상은 정말 선원들이 일하는 배의 구조처럼 생긴 무대 장치들을 보여주며, 귓가에서 강하게 꾀는 듯한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는 지하에서 자주 눈에 띄던 ‘출구 없음’의 팻말에서 제목의 동기를 얻었다고 밝힌다.
전시는 파리의 팔레드도쿄(Palais de Tokyo) 미술관에서 8월 29일까지.
▲영상작업 ‘출구없음’이 설치된 이미지. (사진=김아영 제공)
김연수 breezeme@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