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흥창의 예술 공간 탈영역 우정국은 9월 3~24일 장기 조사-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작품들과 함께 예술 연구(artistic research)가 갖는 함의와 가능성을 살펴보는 ‘리서치, 리:리서치(research, re:researched)’전을 개최한다.
독립 기획자이자 시각문화 연구자인 조주리가 제안한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조사-연구 과정이 작품의 창작과 그 결과물이 문화적으로 축적되는 데 있어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또한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결과물로서 생산-소비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조주리는 “정리하자면, ‘리서치’라는 용어가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생겨난 개념적인 혼란과 오용에 대한 반성적인 시도”라고 밝힌다.
이 전시는 소위 ‘예술가의 조사-연구(리서치)’라는 것이 성립되기 위해서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하는지 △작가마다 다르게 구사하는 리서치의 방식과 전개 과정을 어떤 관점에서 파악할 것인지 △일반 리서치와 구분되는 예술적 리서치에 대해 어떤 가치 부여와 입체적 독해를 할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한다.
‘리서치, 리:리서치’전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5~10년 이상의 중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작가로는 도시재개발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에 매진해온 사진작가 강홍구를 필두로, 역사적 아카이브의 수집과 작가적 해석에 바탕을 둔 설치작가 나현, 최근 세계 주요 도시들을 이동하며 다양한 사운드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던 김준이 참여해 전시의 밀도를 높인다.
또한, 미대 재학 당시 범상치 않은 리서치 과정을 통해 정액비누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10년이 지난 현재 다시 선보이는 신제현, 가상적 기업 협의체 구성을 통해 도시와 일상의 문제에 대해서 발언해온 이티씨(ETC)가 참여한다.
한편, 핀란드와 한국에서 ‘시크릿’ 시리즈를 진행해온 디자인 그룹 컴파니(아무송&요한 울린)가 ‘비밀공부’라는 타이틀로 지난 10년간의 쉬지 않고 이어온 프로젝트를 작은 회고전 형식으로 선보인다.
대만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인주 첸은 환각물질에 대한 개인적 연구 주제를 광범위한 학술연구와 인터뷰, 아카이브를 특유의 방식으로 응집시킨다. 마지막으로 치밀한 역사연구와 독특한 오디오비주얼 감각이 결합된 에세이 필름으로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국의 오톨리스 그룹이 초대된다.
기획자 조주리는 “리서치의 의미와 방법론을 화두로 삼은 ‘리서치, 리:리서치’전은 완결된 작품으로서의 조형적 특징과 사후적 의미 구성을 밝히는 것보다, 작업이 구상되고 실행되는 전 과정에서 적용되는 고유한 리서치 방법론과 연구자적인 태도, 작품 읽기에 도움이 되는 입체적 해제를 제공하는 것에 무게를 둔다”며, “리서치를 전시의 문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별 작가마다 가장 적합한 방식의 시각화 전략을 도출하여 전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전시와 더불어, 전시의 내용을 보완하고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전시 기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각각의 프로그램에는 전시 기획자 외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신진 연구자, 협업자들이 초대되어 격의 없는 발표와 논의가 오가는 시간들을 보장한다.
5일엔 대만 작가 인주 첸의 작업에 대한 소개가, 10일엔 강홍구 작가와 후배 작가인 ETC의 크로스 토크가 열린다. 도시화와 인간 소외의 문제에 대한 각기 다른 감각과 방법론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다.
18일엔 신제현 작가가 ‘LSP 프로젝트의 10년과 다가올 연구과제들’이라는 제목으로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작가 리서치의 연속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시 마지막 주에는 오톨리스 그룹의 작업으로부터 새로운 과제를 찾아낸 젊은 연구자들의 라운드 토크가 있을 예정이다. 주인공이 없는 자리에, 새롭게 촉발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시의 마지막 날인 24일엔 전시의 개념과 콘텐츠를 자신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배치한 물질과 비물질 팀의 프레젠테이션이 ‘디자인 리서치와 프로덕션, 물질과 비물질 사이’라는 제목으로 있을 예정이고, 전시가 종료되기 두 시간 전엔 전시의 폐막 행사가 준비돼 있다. 리서치북의 론칭 기념과 함께 ‘D.C, 끝날 때 되돌아가는 리서치’라는 제목으로 참여 작가들과 관람객들이 모여 전시의 다음 단계를 기약하고, 더 발전된 리서치를 기원한다.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두 차례의 워크숍 또한 준비돼 있다. 지역의 사운드 채집과 변형을 주제로 한 김준 작가의 ‘광흥창 사운드 노트는 17일, 직접 비누 제조 공정에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신제현 작가의 ’사랑의 비누 제조실‘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