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3호 김금영 기자⁄ 2016.09.29 17:26:18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하늘에서 바라본 한국은 매우 단조롭다고 한다. 발전 시기 모든 건물을 때려 부수고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가 속속 세워졌다. 위에서 바라본 아파트도 단조롭지만, 위에서 잘라서 바라본 아파트 옆 단면도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텅 빈 공간은 샌드위치 단면 마냥 똑같은 구조와 색을 l띠고 있다. 그런데 이 장소는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에 따라 정체성을 가지며 변화한다.
장소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을 선보이는 권인경 작가가 갤러리밈에서 기획초대전 ‘장소의 기억’을 10월 16일까지 연다. 작가는 앞서 ‘상상된 기억들’ 시리즈를 통해 장소에 주목하는 관점을 보인 바 있다. 그 시리즈의 연장선상인 이번 ‘장소의 기억’전은 더 세밀한 시선으로 장소에 들어간다.
권인경 작가는 “내 작업에 있어 ‘공간’과 ‘장소’는 다른 개념이다. 텅 빈 단조롭고 특색 없는 물리적인 개념이 바로 공간이고, 여기에 개인적인 특정 기억과 경험이 들어가 정체성을 형성한 곳이 장소”라며 “이번엔 여러 장소를 제시하고, 각각의 장소에 과연 어떤 정체성이 존재하는지 반추해나가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간은 노후 과정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해주지는 않는다. 이에 작가는 수많은 정체성을 가진 ‘장소’를 보여주고 상상의 여지를 넓힌다.
그런데 이 장소에 사람들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분, 의자 등의 요소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을 상징한다. 작가는 “의자도 매우 모양이 다양하다. 가지각색 탄생한 의자는 사람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요소들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반추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작가가 첫 시도한 영상 작업을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본래의 회화 작업이 첨단 미디어 기술을 만났다. 한 집이 등장한 뒤 그 집 안의 의자가 보이고, 문이 열리면서 또 다른 물건들이 하나둘 화면 앞으로 튀어나올 듯 등장하며 움직인다. 꼭 장소가 이 물건들을 토해내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저 집 안에는 누구의 정체성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구성이다.
작가는 “이선영 평론가가 작업을 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가 갑자기 집에 방문해 급하게 치우느라 이것저것 장롱 같은 곳에 밀어 넣었다가 한꺼번에 온갖 물건들이 우르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업 속 장소는 한 순간만의 기억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10~20년 오랜 세월 그 장소에 머무르거나 거쳐 간 사람들의 시간이 집적된 결과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다양한 시공간이 겹쳐진다. 그 집적된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 형식으로 영상 작업을 보여주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실상 자신이 살아가거나 마주하는 장소는 너무 익숙해져 돌아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 장소에 숨겨진 기억들을 함께 따라가 보자고 권한다.
한편 권인경 작가는 CNB미디어의 아트 전문 사이트 ‘다아트’(http://aaart.co.kr/) 오픈 기념으로 진행된 제1회 CNB저널 커버 공모 당선 작가다.
작업과 관련된 자세한 인터뷰는 CNB저널 479호(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18277)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