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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 정금형 ‘개인소장품’전] 인형이 나를 만지게 하기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8월 26일~10월 23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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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3호 윤하나⁄ 2016.09.30 17:14:34

▲정금형 개인전 '개인소장품' 전시 전경. (사진 = 에르메스 재단)

 

어딘가 엉뚱하고 괴이한 이 소장품전의 주인공은 바로 사물과의 은밀한 관계를 공연으로 풀어낸 무대예술가 정금형이다. 지난해 에르메스 재단이 주는 미술상을 받은 정금형은 학부에서 연극과 대학원 과정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자신의 몸을 통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물들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작업해왔다. 그동안 그가 교감해온 다양한 인형과 도구들을 박물관처럼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업세계를 살펴본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말끔한 흰색 전시장에 연필과 멜로디언 등의 작은 소품부터 마네킹, 진공청소기, 심폐소생술 인형, 러닝머신과 드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물들이 놓여있다. 체계적으로 배열된 사물들 사이로 천장에서부터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정금형의 퍼포먼스 영상이 재생 중이다. 작가의 공연을 본 적 없는 관람객일지라도 짧은 시간 그의 영상을 본다면 무리 없이 이 사물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금형 개인전 '개인소장품' 전시장. (사진 = 윤하나 기자)

  

휘트니스 가이드’(2011)에서 작가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운동기구들을 관객을 둘러싸듯 늘어놓고, 차례로 기구를 작동시키고 그 움직임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 중 벨트 마사지 운동기구 위에 뇌가 드러난 남자 마네킹의 얼굴이 벨트의 진동에 덜덜덜 떨리고 있다. 허리에 벨트를 두른 작가는 기계의 진동에 맞춰 자신의 몸을 연동시킨다. 기계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남자 마네킹의 뇌와 작가의 진동은 이내 관객으로 하여금 야릇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내 눈앞에 펼쳐지는 타인의 은밀한 장면을 훔쳐보는 관객들은 이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관음의 현장으로 내몰림으로써, 전통적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던 관음자의 시선은 전복되고 만다.

   

작가의 퍼포먼스는 간단한 사물을 활용한 인형극에서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어떻게 하면 간단한 방법으로 몸을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검은 옷을 입고 팔이나 다리 등에 흰 가면을 부착하는 등의 실험을 거쳤다고 한다. 그렇게 데뷔작 피그말리온’(2005)‘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몸을 활용해 움직이지 못하는 사물을 움직이게 만들고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다양한 형태로 작업하고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정금형은 자신이 발견한 사물들과 사랑을 나눈다.

   

▲정금형 개인전 '개인소장품'에 나온 여러 물건들. (사진 = 에르메스 재단)


그의 작업은 인형을 직접 만들어내기보다 레디메이드, 즉 미리 만들어진 사물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일례로 심폐소생술 인형을 구할 때는 상하이의 공장까지 가서 직접 보고 오거나, 딱 마음에 드는 중고 벨트 마사지기를 찾기 위해 중고 운동기구 상점을 모조리 뒤지기도 했다. 그가 사물의 발견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사물은 함께 공연하는 배우이자 자신이 완벽하게 인터페이스를 숙지해야 할 무대 장치이기도 하다. 움직일 수 없는 인형이 자신을 만지듯이 보이게 하려면 그만큼의 훈련이 필요했다. 해당 사물이 가진 고유의 움직임이 곧 배우의 캐릭터가 되기 때문에 작가는 사물의 적합한 활용법을 숙지하는 데 집중한다. 전시장 입구 한편에 마련된 재활치료서 및 운동기구 활용 서적들은 그가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는 배우를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심폐소생술 연습’(2013) 작업을 위해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굴착기와 작업하기 위해 굴착기 면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정금형, '개인소장품'. 2016. (사진 = 에르메스 재단)

 

정금형은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애니메이션이라고 표현한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을 통해 사물이 살아나도록 만들려는 내 작업과 닿아 있다고 말한 그는 영화 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도 했다. 연필에 남자 얼굴 모양의 조각을 끼우고, 여체를 그린 그림 위를 연필심으로 훑는 영상 문방구는 그의 작업이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그림과 영상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금형은 자신의 첫 화이트큐브 전시인 이번 기회를 활용해 전시장을 진짜 미술작가처럼 활용해볼 생각으로 자신의 소중한 소장품들을 전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소장품들은 머리는 머리끼리, 소품은 소품끼리 박물관처럼 분류됐다. 끝말잇기처럼 작가가 결정한 어떤 체계를 통해 기승전결을 이루며 배치됐다고 한다. 동선을 따라 작가의 소장품을 살펴보면 그중에 공연에 쓰인 물건과 쓰이지 않은 물건들이 한데 고르게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선택된 물건이 왜 선택됐는지, 공연된 적 없는 물건을 작가는 왜 소장하게 됐는지를 유추하는 등 정금형의 개인소장품전은 작가의 인형술이 없더라도 관람객의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시킨다. 전시는 10월 23일까지.


▲작품 '재활훈련'의 한 장면. (사진 = 에르메스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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