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근로자의 경쟁사 전직, 무조건 영업 비밀 침해 아니다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전직금지 약정, 구체적·합리적 범위만 인정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최근에 S전자에서 다른 반도체 회사로 이직한 임원을 상대로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가 ‘기각’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S전자의 상무급 연구임원이 2014년 말 퇴직했다가 2016년 초 경쟁사인 H 반도체 회사로 이적했는데, 이 임원은 “회사 영업 비밀을 제 3자에게 누설하지 않으며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 유사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 취업하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전자는 이 연구원이 2016년 12월 이전에 반도체 제조업체나 그 계열사에 취업하는 것은 서약서의 약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특히 S 전자는 이 연구원이 H 반도체에 취업할 경우, 반도체 칩과 관련한 특정 기술들이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연구원이 H 반도체에 취업하는 행위가 S전자의 영업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면 전직금지 약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이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기술은 퇴직 전부터 업계에 알려진 것이라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어, 이 연구원이 H 반도체에 입사하더라도 S전자의 영업 비밀이 침해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직금지 약정 또는 경업금지 약정이란 근로자가 퇴직한 후에 일정 기간 동안 사용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에 취업하지 않기로 하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약정을 말합니다. 근로자가 직접 경쟁업체를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회사와 근로자 간의 전직금지 약정은 영업비밀의 보호와 맞물려, 회사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직,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도 제한 가능
그렇다고 이를 무제한 허용할 경우, 근로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간 동안 상당한 돈을 투자하여 지식을 개발하게 하고 훈련시키면서 장차 근로자가 습득한 지식이나 연구 성과물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즘에는 핵심인재의 유출과 영업 비밀 보호를 위해 사용자가 근로자와 전직금지 약정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우리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사원과의 합의를 통한 단기간의 전직금지 약정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규정에 위반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대법원 1997.06.13. 97다8229 등). 구체적으로는 “경업금지 의무는 우선 영업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범위 내로 한정되어야 하며, 피용자가 사용자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졌었는지, 그가 행한 직무는 어떠한 내용의 것이었는지, 경업금지 기간은 얼마나 장기간의 것인지, 경업금지 지역은 얼마나 넓은지, 경업금지 대상 직종은 어떠한지 및 경업금지의무에 대한 대상조치(代償措置)가 있는지에 따라서 그 효력의 유·무효가 결정된다.”고 보고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1998.10.29. 선고 98나35947 판결, 서울고등법원 1995.9.13 선고 94나36386 판결).
즉 대법원은 전직금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무효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밀로 보호해야 할 사용자의 이익(영업 비밀)이 있는지,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가 영업 비밀을 다루는 것이었는지,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이 너무 길거나 광범위한 것은 아닌지, 근로자에게 경업금지에 대한 대가는 제공하였는지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전직금지 약정은 영업 비밀 보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앞의 S전자와 관련된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기록과 심문 내용을 볼 때 두 기술은 해당 임원이 S전자를 퇴직하기 전부터 업계에 알려진 것으로 보이고, H 반도체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영업 비밀이 회사의 비밀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영업 비밀, 지켜야 할 것만 정하면 돼
전직금지 약정서에는 영업 비밀의 내용과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합니다. 특히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근로자와 비밀로 하기로 약정한 경우에는 그것이 영업 비밀 이외의 사항이라도 보호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비밀로 할 필요가 있는 대상을 약정서에 명확하게 적어야 나중에 분쟁이 발생할 때 유리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영업 비밀 보호보다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는 ‘코드 16600(Code Section 16600)’ 때문에 전직금지 약정, 경쟁방지법 등에 관한 소송에서 기업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2015년 애플과 구글 등이 직원 전직을 막으려는 협정을 맺은 혐의로 4억 달러 이상의 합의금을 물어주는 소송을 겪었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본사. 사진 = 위키피디아
일반적으로 “영업 비밀”로 인정되려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정보로서,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고, 정보 보유자가 비밀로 관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비밀로 관리한다는 것은 영업 비밀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거나(보안 시스템, 비밀번호 설정), 담당자에게 비밀 유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경우 등을 말합니다. 이 부분은 회사에서 매뉴얼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전직금지 기간을 영업 비밀의 내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있는데,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그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단, 법원은 전직금지 약정 기간이 지나치게 길더라도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기간의 효력만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즉 전직금지 약정이 5년인데, 법원이 판단하기에 1년이 적정한 기간이라면 1년 동안은 전직금지 약정이 유효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정보의 비밀 가치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를 고려하되, 되도록 장기로 약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호되어야 할 정보에 따라 기간을 달리 정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전직금지 약정은 영업 비밀과 회사 보호를 위한 상당히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그 범위와 효력 영업비밀의 대상 등을 제대로 정해 놓지 않으면 회사는 낭패를 볼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