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나비는 작가 최성록의 미디어 파사드 전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지난 9월 1일부터 열었다. 최성록은 최근 현대차 그룹의 미디어 아티스트 지원 프로젝트인 제2회 VH AWARD에 최종 선정되고 2016 부산비엔날레 참여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가다. 디지털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작업을 통해 기술에 의해 발생되는 동시대 풍경과 서사를 탐색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인간이 발전시킨 탐사 기술이 현실에 적용될 때의 여러 현상을 집중 조명한다. 지난 11일 아트센터 나비에서 만난 최성록 작가에게 그의 작업 전반에 관해 들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떤 곳인가?
마치 자동차 주행 게임의 한 장면처럼, 화면 안에는 자동차가 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 작품이 전시 중인 서울 을지로2가의 SKT-타워 건물 1층에는 내·외부에는 건물 형태를 따라 긴 스크린이 둘러져 있다. 이렇게 건물 외벽의 기다란 도로 같은 스크린 위로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건물 외면을 활용해 미디어 작품을 전시하는 미디어 파사드 전시를 십분 활용한 최성록의 작업이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최성록의 최근작 시리즈가 2편 설치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최첨단 탐사 기기인 드론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 주행 게임을 연상시키던 작업 ‘스크롤 다운 저니(Scroll down journey)'를 살펴보자. 작가는 위성사진과 드론으로 촬영된 수직 시점의 이미지를 편집·발췌해서 편집하고 포토샵으로 직접 그린(디지털 페인팅) 가상의 도시 지도를 만들었다. 총 8개의 2000 x 15000픽셀로 된 디지털 페인팅 지도 위로 흰색 차가 달리고 있다. 사실 차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고정된 차 아래로 작가의 가상 지도가 내려가는(스크롤 다운) 방식이다.
차는 사막을 시작으로 숲, 그리고 산의 터널을 빠져나와 비닐하우스와 국립묘지, 화력발전소, 태양열 발전기를 차례로 지나간다. 이후 서울의 구도심 주택가 그리고 재개발 현장을 지나 한강의 다리를 건너는데, 사고 전의 세월호와 세빛둥둥섬의 모습도 보인다. 이후 올림픽공원과 공항을 지나 아파트, 복합 주거단지형 대형 아파트를 거쳐 서울시의 주요 빌딩들(정부나 대사관, 기업의 건물 등)이 나온다. 빌딩들의 꼭대기에는 대부분 헬기장이 있다. 그가 만들어낸 경로는 황무지에서부터 논밭과 골목을 거쳐 재개발과 대형 아파트와 고층 건물 순의 도시화를 함축하고 있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를 평면적으로 부감하는 방식은 항공촬영기법과 지도 측량의 역사성을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향한 욕망은 생존과 승리의 본능에 가깝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시점으로, 요새를 만들거나, (초기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측량된) 지도를 만들 때 특히 중요했다.
그는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공중뷰(aerial view)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용됐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 이런 공중뷰가 잘 활용되는 곳이 바로 게임으로, 땅따먹기와 같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특히 필수적이다. 공중뷰에 대한 그의 작업은 이렇게 ‘상황을 제어하고 정복 중이라는 상황과 감정 상태’를 되돌아보게 한다.
초기에 군사 용도로 개발된 드론이 비교적 최근에서야 제한된 용도로 민간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전쟁을 위해 최첨단 로봇공학이 개발되는 양상을 담은 피터 W. 싱어의 저서 'Wired for War'(국내에는 ‘하이테크 전쟁’이란 제목으로 출간)를 통해 드론에 대한 그의 관심이 더해졌다. 가장 기본적인 무인비행체인 드론을 활용해 그에 둘러싼 사회적·윤리적 현상과 상황을 작업하게 된다.
드론을 활용한 셀카 혹은 셀프 과녁
“드론을 이용해 일종의 셀카(셀프카메라)를 찍었죠”라고 작가는 유쾌하게 말했다. 실제로 ‘어 맨 위드 어 플라잉 카메라(A Man with a Flying Camera)’와 ‘아이 윌 드론 유(I Will Drone You)'는 작가가 드론 아래에서 걷거나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평면적인 황무지와 공원 등에서 작가는 화면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거나, 정중앙에 누워 팔다리를 회전한다. 실제로 상당한 높이에서 촬영한 그의 모습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멀리서 수직 시점으로 찍힌 그의 모습을 처음엔 만화나 게임 속 주인공처럼 여기다가 어느 순간 싸늘함을 느꼈다. 이 영상이 위에서 아래를 주시하고 있는 고정된 시선임을 느끼고, 그의 위치와 상태가 전면 노출됐음을 깨달은 다음이다.
특히 작업 'I Will Drone You'에서 이런 감상이 심화된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이 말한 "I will drone you(널 드론할거야)"란 문장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I will kill you(널 죽일 거야)’처럼 들리는 이 말은 살상 도구로서의 드론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경우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드론을 ‘이런 식으로도 쓰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원래 전쟁을 위해 개발됐다지만 직접적으로 느끼진 못했는데 말이죠. 드론이 가진 기능 중 하나가 포인트 오브 인터레스트(Point of Interst, 관심 지점)이에요. 까마귀가 먹이 위를 도는 것처럼 끊임없이 표적을 쫓아 움직이는 기능이죠. 이런 움직임이 흥미로웠어요.” 그렇게 그는 파주 운정동의 조용한 수목원과 한여름 빈 공원 등지에서 드론을 띄우고 혼자 찍은 일종의 셀프 카메라를 만들었다.
또 다른 작업 ‘A Man with a Flying Camera’는 러시아 영화감독의 실험영화 제목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라는 기계가 바라보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조주의-형식주의적으로 실험한 작품이다. 그의 현재 관심사는 비행 카메라가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절대적인 시점은 신화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이슈를 내포했다. 셀프카메라라고 표현한 그의 작품들이 어쩐지 무섭게 느껴진 이유는 어느 누구도 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록은 현재 VH AWARD를 위한 작품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당분간 계속해서 드론을 활용한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