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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커버작가 공모 ③ 최세윤] "식물에 몰입해 자연만큼 커지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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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7호 김연수⁄ 2016.10.28 16:51:16

▲최세윤. '자화상'. 혼합 매체, 20 x 20cm. 2016.



산을 누군가와 함께 오르다 보면, 그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에 따라 성격이 대번에 보일 때가 있다. 등성이를 따라 가파르게 솟아오른 땅과 꼭대기만 보고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옆에 무심하게 뒹구는 덤불들을 일일이 토닥이고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들의 생김생김을 일일이 참견하며 걷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후자의 사람들을 답답해하며 ‘빨리 좀 가자’며 재촉할지 모르지만,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속도를 다르게 느낄 뿐 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방황의 시작과 함께 만난 자연

작가 최세윤은 빠른 길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머물고 있다기보다는 천천히 그의 삶을 다시 관찰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교미술을 전공하며 언젠가는 문화재가 될지도 모를 결과물을 위해 작품의 내구성을 연구하고 능숙한 기술을 연마하던 그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추상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그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더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였을 것이다.

속된 말로 ‘관종(관심종자의 준말)’이라 부른다.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무리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최세윤은 모든 사람들이 관종이라고 생각한다. 각자마다 타인의 이목을 집중하기 위한 자신만의 표현 방법이 있고, 그는 자신의 표현 방법으로 미술 작업을 선택했다. 

그는 학교 근처의 갈대 숲, 강가, 숲 속을 거닐었다. 자신이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느끼며 걸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강가의 바람이 먼저 다가오고 갈대가 손끝을 스치면서 눈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을 일치시켜봤다. 

자연의 모습들 중에서도 최세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식물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잡초가 보였다. 잡초를 베어다가 이런저런 장난을 쳐보기도 했다. 자개 가구를 만드는 코팅재를 묻혀 내구성을 실험해 보기도 하고, 바위에서 이끼를 떼어 내다가 이리저리 배치하기도 했다. 자연 속에 있던 그것들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커다란 정원도 됐다가 재단되고 잘리기도 했다가 추상적인 마음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2015년 작업 '숨바꼭질'의 부분 이미지. (사진=최세윤)



변화를 가져오는 '발견하는 행위'

최세윤이 식물을 재료로 한 작업을 시작한 것은 2년도 채 안됐지만, 작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그가 작업 초기에 재료로 쓴 식물들과, 근작에서 쓴 식물들의 특성의 차이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초기에 그가 사용했던 식물들이 잡초, 이끼, 갈대처럼 약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식물들이었다면, 최근 그가 사용하는 식물들은 솔방울, 솔잎, 목련꽃봉우리, 송화 등 단단하거나 특징 있는 외관으로 개성을 뽐내는 것, 혹은 강렬한 빨간색을 뽐내는 남천나무 열매로 달라졌다. 그 생명들이 가진 독특한 개성의 질감들은 그가 설정한 네모, 동그라미 등의 화면 안에서 함께 모여들어 빛을 발한다. 

작가는 “재료를 채취하며 살피다보면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고 전한다.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고. “내가 어떤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나는 ‘나무의 형상’을 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느끼거나 눈치 채지 못했던 순간의 나 역시 나일 것”이라고 전했다. 자신이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은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타인이 보는 자신의 외관에 의해 존재가 증명된다는 의미인 듯 하다. 

▲최세윤, '자화상 2'. 솔방울, 90 x 45cm. 2016.

▲최세윤, '눈을 감고'. 혼합 매체, 38 x 22cm. 2016 .


자연, 세계, 자화상

최세윤은 그렇게 자신의 작업을 “나를 찾아가는 고민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자화상’이라 이름 붙은 그의 작업들엔 사람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연이 만들어 낸 뾰족뾰족하거나 울퉁불퉁하거나, 부들부들한 질감과 그것들의 모임이 만들어 낸 부정형의 도형이 보일 뿐이다. 어떤 것은 네모나고 어떤 것은 구불구불한 네모, 어떤 것은 동그랗고 어떤 것은 물방울처럼 한 구석이 비쭉 튀어나온 동그라미다. 

처음 이것이 왜 자화상인지 이해되지 않던 작품들은 작가가 자연에 몰입됐던 것처럼 자연 재료가 가진 그것들만의 질감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는 어쩌면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부정형의 도형으로 최소한으로 표현한 그의 세상 안에 자연 안에서 발견한 또 다른 그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최세윤은 “인간은 자연에 속해 있고, 자연이 디자인한 식물과 인간은 알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은 물론 외관까지도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조금씩 화두를 넓히는 중이다. 여태까지 자신의 세계를 특정 형태의 도형으로 설정하고 그 안에서 자연 재료의 특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 열중했다면, 이제는 표현 공간을 조금 더 넓힐 예정이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을 찾아 더 커다란 자신과 자연을 펼칠 생각이다. 

마치 ‘중2병’ 같은 자기도취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가라는 역할로서 보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 중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고 본다. 존재가 확실해졌을 때 가능한 표현의 영역도 확장되기 마련이다. 자신 있는 미술 언어로 표현 가능한 예술가로서의 성체가 되기까지 그의 존재 증명의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타 개체의 개성 수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만의 미적인 시각 역시 발전될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최세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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