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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사의 공공사사(公共私事)] 公이 私 침범하더니(민간인사찰), 더 무섭게 私(최순실)가 公(청와대) 유린

‘혼이 비정상인’ 한국의 종교와 정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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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8호 문래당 김집사⁄ 2016.11.15 09:59:35






(CNB저널 = 김집사 인문예술공유지 문래당文來堂 운영자, 생존인문 팟캐스트 〈너도 고(古)양이로소이다〉 진행자)



최순실 게이트로 현직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사용한 ‘우주의 기운’이니 ‘혼(魂)이 비정상’이니 등의 전근대적 용어들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아니, 조롱받고 있다. 아울러 취임식 행사에서 사용된 오방낭(五方囊) 및 국정원과 미르 재단의 엠블럼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비슷한 형상의 용(龍, 미르) 이미지 등의 전근대적 상징들이 다시금 조명 받고 있다. 아니, 조롱 받고 있다. 대통령의 언어와 행동에 깊이 각인된 사고체계의 전근대성은 무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영세교(永世敎) 교주 최태민 일가와의 관련 속에서 분명 조명되어야 하고, 아니 조롱되어도 마땅할 사안이다.


신성의 대리자인가, 공민의 대리자인가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는 성(聖)과 속(俗), 신(神)과 정(政)의 분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중세 정치 권력의 정당성이 위로부터 천제(天帝)에게 부여받은 천명(天命)에 의해 승인된다면, 근대 정치 권력의 정당성은 아래로부터 국민(國民)에게 위임받은 민의(民意)에 의해 승인된다. 군주는 천(天)이라는 초월적ㆍ추상적 신성(神性: Deity, Divinité, Göttlichkeit)의 대리자이나, 대통령은 민(民)이라는 현실적ㆍ실체적 공민(公民: Public, Citoyen, Staatsbürger)의 대리자이다.


선출된 공직자로서의 권한은 공민으로부터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설령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적 민간인에게는 이양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개인적 친분 관계로서의 사적 영역이 행정부의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의 공적 영역을 잠식하는 것은, 민간인 사찰과 같이 국가라는 공적 영역이 개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것 이상으로 소름 돋는 충격적 사건이다.


▲해킹: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과 해킹 프로그램 사용을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오래된 것과 낡은 것, 복고와 반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조롱이 기(氣)와 혼(魂), 오방낭 등의 중세 동아시아의 전통적 개념어와 상징물에 대한 조롱으로까지 쉽게 전이되는 데에는, 그 정당한 분노와 냉소의 근저에 서구적 근대화를 거치며 고착된 특유의 통념이 자리하고 있다. 곧 중세적인 것은 근대적인 것에 미달한 ‘전근대적인 것’이며 오래된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낡은 것’으로 간주하는 망딸리떼(mentalité: 한 사회를 특징짓는 관습적 사고 양식의 총체)가 그것이다. 여기서 근대는 합리이며 중세는 비합리이다. 새로운 것은 긍정되나 오래된 것은 부정된다.


그러나 ‘오래된 것’과 ‘낡은 것’은 다르다. 옛 것을 회복한다는 복고(復古)의 고(古)는, 옛 것을 고수한다는 수구(守舊)의 구(舊)와 다르다. 둘 다 옛 것이지만 고(古)는 가치적으로 숙성되어 오래된 것이고 구(舊)는 시간적으로 그저 낡은 것이다. 따라서 복고(復古)는 현재적 맥락에서 문명의 뿌리가 되는 시원(naissance)을 다시(re) 되살리는 것(Re-naissance)이지만, 수구(守舊)는 현재적 맥락에서 변화의 작용(action)에 반발하고 역행하는(re) 반동적인 것(Re-actionary)이다.


맹자의 호연지기와 예기의 혼백


맹자(孟子)는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중략…) 기(氣)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 것인데, 곧게 길러 해로움이 없으면 곧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다. 그 기란 의(義)와 도(道)와 함께 하는 것이며, 이것이 없으면 허탈하다. (…중략…)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비추어 합당하지 않으면 곧 허탈해지는 것이다”라 하였다. 여기에서 기는 하늘과 땅 사이 곧 우주 삼라만상에 가득한 기운이지만 동시에 그 기는 주체의 윤리적 의로움(義)과 보편적 진리성(道) 위에서 스스로의 양심과 신념에 어긋나지 않아야만 흔들리지 않는 크고 넓은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주의 기운’이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혼(魂)은 백(魄)과 함께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신령(기운)으로, 음양(陰陽) 이기(二氣) 중 양기의 영을 ‘혼’이라 하고 음기의 영을 ‘백’이라 한다. 혼은 정신을 주재하여 사후에 인간의 몸을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가 신(神)이 되며, 백은 육신을 주재하여 사후에도 인간의 몸 안에 남아 흙으로 돌아가거나 억울하게 죽은 경우엔 귀(鬼)로 지상을 떠돌게 된다. ‘혼=백’으로 결합되어야만 생명은 온전하며 ‘혼↔백’으로 분리되는 순간 생명은 죽는다. 그래서 혼을 넋이나 얼이라 부르면서 사람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를 ‘넋 빠진 사람’ 또는 ‘얼빠진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스스로 사고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 꼭두각시(marionette)의 상태, 주체가 텅 비어있는 무(無)로서의 제로기호 상태이다. 이것을 ‘혼이 비정상’이라 한다.


윤리적 주체와 내면적 양심이 결여된 곳에 우주의 기운은 부재하며 백과 분리되어 정신의 주체성이 결여된 곳에서 혼은 비정상이다. 간절히 원해도 우주는 도와주지 않으며 초혼제(招魂祭)를 지내도 떠난 넋은 돌아오지 않는다. 주체 없는 권력을 위한 나라는 없다. 최소한 근대 국민국가는 아니다.


▲맹자: ‘시대의 의리남’ 맹자 역시 이미 2300년 전에 ‘호연지기’를 말하면서 “넋빠진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는데, 어째 한반도 남쪽에선 ‘혼이 이상한 사람들’이 권력의 최정상을 차지하게 됐는지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주희와 마르크스, 종교와 정치


혼백은 체내에서 선악을 감시하기에 불교에선 악인은 (현세가 아니라) 내세에서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윤회를 주장한다. 그러나 주희는 ‘주자어류’에서 이를 반박하며 “만약 악을 행한 자들을 죽은 뒤에서야 다스린다면 인간 세상에 군주를 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고, 혹자가 “내세를 위해서 닦는다”고 말하자 “지금 세상도 닦지 못하면서 내세를 위해 닦는다니 무슨 소린가?”라고 비판하였다.


우리는 종종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끌어와 종교를 냉소한다. 그러나 정작 마르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이 말을 한 맥락은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기에 “이것은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그 부득이함에 대한 긍정이었다. 나아가 현실에 대한 환각(종교)을 버리라는 요구는, 환각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하라는 것이었다.


주희에게 윤리는 현실적인 한에서 긍정되고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윤리적인 한에서 긍정된다. 그러나 주희와 마르크스는 공히 현실의 고통은 어디까지나 현실 내에서 풀어내야 함을 주장하였다. 정치는 종교를 필요로 하는 인민의 고통까지 품어야 하지만 종교의 의장으로 정치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종교는 일신의 내세를 위해 닦는 사적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난제를 해소하는 공적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한 계기이다. 공민과 더불어 윤리적 정의(義)와 공공적 가치(道) 위에서 넋과 얼로서의 주체를 지켜야만 그제야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고 혼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마르크스: “민중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종교라는 아편에 의지하겠냐”라면서 전근대적 종교의 극복을 촉구한 마르크스의 선언이 벌써 170년 전에 이뤄졌는데, 한국은 21세기가 16년이나 접어든 현재에 권력 최상부를 점령한 악령과 싸우고 있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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