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칠레 산티아고] 깨볶고 약장수 약파는 이곳은? 산티아고!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일차 (푼타 아레나스 → 산티아고)
안녕 파타고니아
새벽 5시 25분 출발 산티아고행 란 항공기를 놓칠세라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내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탑승수속 중이다. 멀리 마젤란 해협의 검푸른 바다 위로 아침 해가 돋는다.
거대한 대륙 끝에 터전을 잡고 삶을 일궈가는 많은 모습들을 봤고 선량한 사람들을 만났다. 왠지 오래전부터 살았던 것 같은 도시를 뒤로 하고 항공기는 솟아오른다. 파타고니아여 안녕~. 곧 안데스의 빙하와 만년설을 내려다본다. 세 시간 후 오전 8시 50분, 항공기는 산티아고에 닿는다. 이 공항에는 이번 여행길에 벌써 세 번째 들른다.
산티아고 시장 탐방
호텔에 여장을 풀고 산티아고 시내 탐방에 나선다. 우선 베가센트럴 청과시장이다. 청과, 채소, 육류 등 없는 게 없다. 서울 가락시장 같은 도매시장이다. 싱싱한 열대과일을 보면서 칠레가 농업국가임을 새삼 확인한다. 시장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깨 볶는 냄새가 고소해 한국에 돌아온 줄 착각하게 한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약장수를 만났다. 사진 = 김현주
각종 잡화상, 만물상이 들락거리고 크고 작은 트럭들이 분주히 오간다. 베가시장을 나와 마포초강을 건너 중앙시장(Mercado Central)을 찾아간다. 마포초강은 흙탕물이어서 깜짝 놀란다. 사막 기후라서 그렇겠지만 아직 70~80% 수준인 하수처리율도 문제일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하수처리율은 98~99%다. 1~2%는 어쩔 수 없이 새는 부분이니 완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1872년에 지은 건물이 전혀 시장답지 않은 중앙시장은 시장도 시장이지만 각종 싱싱한 해산물 요리 식당으로 더 유명하다. 식당 상인들이 열심히 호객을 한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나도 해산물 요리로 요기한다. 푼타 아레나스만 해도 워낙 변방이고 동양인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라 가끔 주목을 받곤 했는데 여기 오니 완전히 산티아고 시민이다. 대도시가 주는 편안함은 이런 것이다.
중앙시장을 나와 잠시 걸으니 아르마스 광장이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독립기념비와 산티아고 개척자 발디비아(Pedro de Baldivia)의 기마상이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시청사, 중앙우체국(Correos Central), 국립역사박물관,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발디비아 기마상은 독립 150주년을 기념해 1963년 건립했다. 광장에선 약장수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베가센트럴 청과시장을 나와 잠시 걷다 마주한 아르마스 광장. 사진 = 김현주
▲산티아고 시내 탐방을 나섰다. 베가센트럴 청과시장엔 청과, 채소, 육류 등 없는 게 없다. 서울 가락시장 같은 느낌이다. 사진 = 김현주
1566년 최초 건축해 1748년 개축한 대성당은 내부가 웅장하면서도 화려하다. 단순명료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국립역사박물관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칠레의 역사, 정치, 산업, 민속, 예술, 생활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종합박물관이다.
아옌데와 피노체트
국립역사박물관은 특히 칠레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인 아옌데(Savador Allende)의 실각과 자살(1973),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의 쿠데타와 군사독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1566년 최초 건축해 1748년 개축한 대성당은 내부가 웅장하면서도 화려하다. 사진 = 김현주
▲산크리스토발 언덕 마리아 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모인다. 사진 = 김현주
1970년 아옌데는 민주선거에 의한 정부를 수립한다. 좌파인 그는 산업 국유화, 토지개혁 등 급진적인 좌경 정책을 추진하지만 성과가 미약해 벽에 부닥친 사이 피노체트가 1973년 우익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대통령궁 공습, 국립경기장 내 좌파 인사 수천 명 감금 및 수십 명 처형 등 공포정치를 펴가며 1989년 축출될 때까지 장기 집권한다. 아옌데는 처음에는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걸어서 대통령궁(혹은 Moneda 궁전, Palacio de la Moneda)까지 간다. 건물은 길쭉한 2층 건물로 평범하지만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 혁명군을 맞아 끝까지 저항하다 최후를 맞은 곳이라고 하니 참으로 비감하다. 당시 모네다궁은 혁명군의 공습을 받아 훼손되기까지 했었다.
모네다궁은 원래 조폐국으로 건축했다가 훗날 대통령궁으로 용도가 바뀌었기에 Moneda(돈) 궁이라고 부른다. 모네다궁 주변에는 헌법광장, 자유 광장이 인접해 있는데 모두 사각형의 평범한 콘크리트 정부 공공건물들로 둘러싸였다.
▲산타루시아 언덕에서 내려다 본 산티아고 전경이 아름답다. 사진 = 김현주
▲피오니뇨 카페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김현주
칠레대학 구 캠퍼스 부근 서점가를 지나 산타루시아(Santa Lucia) 언덕까지 걸어간다. 높이 70m의 작은 언덕이지만 전망이 좋다. 언덕 위 작은 성과 요새가 앙증맞다. 이곳에는 이 도시 건설자(혹은 정복자) 발디비아의 동상과 함께 그에 항거한 원주민 족장 카우포리칸의 동상이 있어서 이채롭다.
산크리스토발 마리아상
산타루시아를 나와 바케다노 메트로역에서 내려 산크리스토발 언덕을 찾는다. 피오니뇨(Pio Nono) 카페 거리를 지난다. 마침 금요일 저녁을 맞은 젊은이들이 담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피오니뇨 거리가 끝나는 곳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 정상에 오른다. 90년 된 푸니쿨라지만 안전하게 잘 올라간다.
이곳은 산티아고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야경이 일품이라지만 아직은 대낮이다. 긴긴 여름해가 얄밉다. 정상에는 커다란 성모 마리아 상이 하얀 모습을 빛낸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긴 한데 금방 지친다. 오늘 날씨 최고 31도, 최저 16도라고 하니 지칠 만도 하다. 성모 마리아 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과 감사의 뜻을 담아 촛불 세리모니를 한다. 호텔로 돌아오는 지하철은 금요일 저녁 퇴근 인파로 붐빈다. 혼잡에 나도 보태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