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 자식을 자식 아니게 만드는 ‘친생부인의 소’와 DNA 검사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아이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사실 명백합니다. 출산 후 아이가 뒤바뀌지 않는 한,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출산한 사람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마도’ 남편일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와 다르게 100%의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법 규정은 “처가 혼인 중에 포태한 자는 부(夫)의 자로 추정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민법 제844조 제1항).
그리고 “혼인성립의 날로부터 2백일 후 또는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백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추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44조 제2항). 즉 결혼 전에 임신을 한 경우나 이혼 후에 출산을 한 경우에도, 남편을 아이의 아버지로 추정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추정(推定)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보면, “미루어 생각하여 판정함”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추정이라는 단어를 법학에서는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그 반대 증거가 제시될 때까지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여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일”이라고 정의 합니다. 즉 아버지로 추정한다는 말은 “아버지가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버지로 인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호적에서 파낸다”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이제는 호적부가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뀌었으니, “가족관계 등록부에서 삭제한다”고 하는 게 맞겠지요. 그럼 ‘아버지가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면 아이를 호적에서 파낼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아니라는 증거’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게 DNA 검사입니다. 그럼 DNA 검사를 해서 아이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판명되기만 하면, 아이를 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삭제할 수 있을까요?
소송 제기 늦으면 가족 관계 꼬이는 법
우리나라의 가족관계는 민법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민법에는 가족의 해체를 막기 위해 엄격한 절차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남의 아이로 추정되는 아이와의 친자관계를 부정하려면, ‘친생부인(親生否認)의 소’라는 것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친생부인의 소는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 즉 남편이 아이가 내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제기해야 합니다(민법 제847조). 2년 내에 소송을 제기 못하면 내 핏줄이 아니어도 내 아이로 인정되고, 그 아이가 내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서 이혼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아이는 전 남편의 아이로 추정을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전남편의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하고, 전남편이 친생추정을 원하지도 않으며,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하려는 경우에도, 그 자녀는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되어 가족관계등록부에 전남편의 친생자로 등록되고, 결국 소송을 통해서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조항 때문에 이혼한 여자와 전남편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데 큰 부담이 되고, 아이의 진짜 아버지도 아이를 함부로 자신의 아이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없습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3)의 한 장면.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왼쪽 아빠)는 6살 된 아들이 친자식이 아니라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이제껏 친자를 키워온 유다이(릴리 프랭키, 오른쪽 아빠)의 가족과 만나 아이들을 원래 부모에게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두 집은 양육 철학과 환경이 너무나 달랐기에 아이들도 부모도 서로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갈등이 깊어간다. 부모와 자식을 맺어주는 것이 핏줄인가 함께한 시간인가? 가족이 된다는 근본적인 사실에 대해 사려 깊은 질문을 던지는 따뜻한 걸작이다. 사진 = (주)티캐스트콘텐츠허브
이 조항은 1958년 민법 제정 당시 들어온 조항입니다. 그때만 해도 DNA 검사 같은 것은 없었고, 친자관계를 의학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이의 아버지를 추정하는 조항을 규정하고, 이를 부정하려면 엄격한 소송을 통해서 하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DNA 검사라는 수단은 보편화 되었습니다. 머리카락만으로도 친자인지 여부를 빠르고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이 오히려 아이의 권리와 부모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헌법재판소는 “어머니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습니다(2013헌마623).
시대에 맞게 법 규정도 바뀌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민법 및 가사소송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개정안에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거치지 않고서도 아이와의 친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특히 DNA 등 검사결과 등에 비추어 볼 때 전 남편의 자녀가 아님이 명백한 경우에는 친생부인 소송을 거치지 않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 친생추정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즉 간편한 절차로 아이를 전남편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우리 가족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법 규정들은 대부분 1958년 민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진 규정입니다. 거의 60년 전에 만들어진 규정인데, 이 규정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합리적인 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에서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답답한 규정들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여러 가지 민법 조항에 대해 위헌 혹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습니다. 그 신호탄이 1997년도에 헌법재판소가 ‘동성동본 결혼금지 조항’에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입니다. 이후 호주제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는 등, 지금까지 많은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직 문제 있는 조항들이 남아 있고, 일부 조항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적절한 결정을 내릴 것을 기대해 봅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