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3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대표 회동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유경석 기자)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진영이 내민 손을 잡는가. 더불어민주당이 규제프리존특별법(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만지작거리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장미 대선’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이 대기업 시제품의 생체실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박 정권이 추진하던 규제프리존특별법에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이제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물론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과 이 법에 대해 ‘논의’에 들어가려는 자세다. 정의당만 반대하고 있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제정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더민주, 규제프리존특별법 만지작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6월 15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제안한 규제프리존특별법 등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안을 갖고 논의의 장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 내 논의를 거쳐 상임위원회에서 신중한 심의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역시 6월 13일 규제프리존특별법과 관련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통해 “그동안 제가 속한 당의 입장은 부정적이었지만 새 정부의 최대 국정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 전략 산업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필요성을 인정했다.
▲6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은 6월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협치의 구체적인 내용 중 하나로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를 제시했다. 추경안 국회 통과와 인사청문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자유한국당의 협력이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게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이용한 전략이다.
정우택 권한대행은 “(국회 시정연설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협치 의사 표시가 있을 줄 기대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진정으로 자유한국당에 협력을 구하려면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경제 활성화 법안을 먼저 통과시켜야한다”고 제안했다. 이 당은 이튿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 10대 민생입법 과제를 더불어민주당에 공식 전달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원대대변인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도 “당내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실의 한 관계자 역시 “자유한국당과 머리를 맞대고 만나서 논의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규제프리존특별법 제정에 동참할 경우 후폭풍을 예상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절대 반대’에서 ‘당내 논의’로 급반전 왜?
규제프리존특별법에 대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태도 변화는 그간의 과정을 비춰볼 때 가히 충격적이다. 대선 기간인 지난 4월 22일 더불어민주당은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 입장을 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 대해 “일명 ‘최순실 법’으로 불리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어떻게 할 셈인가”라고 물으며 “대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이 법을 통과시켜 누구를 위한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비난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적극 반대 입장에서 정책을 차별화했다. 이 법을 “의료민영화로 나아가는 주춧돌이 되는 법안”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개별 법안들을 통해 개발을 막았던 절대농지, 그린벨트, 자연환경지구, 계획관리 지역, 녹지, 보전산지 등에 공장 입지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전형적인 반(反)환경 법안이라는 입장 역시 고수했다.
자유한국당과의 정책 차별화에도 적극 이용했다. 2월 7일엔 “거대여당 시절에도 통과시키지 못했던 규제프리존특별법 등을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고수하는 모습은 새누리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원색 비난했다. 지난해 6월 3일엔 “박근혜 정부는 관광진흥법 개정안과 규제프리존특별법 그리고 의료영리화 우려를 낳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개정에만 힘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결사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더불어민주당에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 것은 이낙연 국무총리 취임과 추경 예산안 처리, 잇따른 인사청문회 등과 관련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야당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설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찬성했다는 점을 들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압박했다. 실제로 이낙연 당시 전남도지사 등 14개 시도지사는 공동성명을 통해 규제프리존특별법의 통과를 촉구하고 국회를 방문해 입법을 부탁한 바 있다.
‘박근혜 청탁입법’을 문재인정부가 수용하는 꼴?
규제프리존특별법과 관련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박근혜’ ‘전경련’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이다. ‘최순실’ ‘차은택’ ‘안종범’도 이에 못지않게 자주 등장한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의 탄생 과정을 보면 ‘박근혜-최순실-전경련’ 간 긴밀한 공조를 확인할 수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구현할 기능을 맡았다. 창조경제혁신센터-박근혜-규제프리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현재 한국기업연합회) 소속 17개 대기업에서 돈을 모아 펀드를 만들고 이를 지역별로 나눠 맡는 방식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했다.
현재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각 재벌 대기업과 매칭돼 운영 중이다. 재벌 대기업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규제 프리존 지역추진단에 참여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규제프리존 운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설치·운영 지원을 담당하는 창조경제추진단의 공동단장 자리에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과 차은택이 임명됐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대기업들이 각자 수익 사업으로 발표한 계획은 대부분 규제프리존 계획에 포함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실상 규제프리존 추진기구인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행보에서 규제프리존특별법의 의미는 도드라진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입금을 완료한 바로 다음 날 박 전 대통령은 규제프리존법 등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국회에 주문했다. 전경련도 미르재단에 이어 K스포츠재단에까지 돈을 추가로 내는 상황이 되자 성명을 내면서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촉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전경련이 주도하는 경제활성화법 입법 촉구 서명에 직접 참여까지 하면서 힘을 실었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20대 국회 첫날 새누리당 122명과 국민의당 3명이 함께 발의한 법안이었다. 원래 이 법안은 19대 국회 막판에 새누리당 강석훈 전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안종범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최측근이었던 강석훈 전 의원이 급작스럽게 19대 국회 막판에 이 법안을 발의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기획재정부의 청부입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6년 1월 3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월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를 당론으로 확정할 경우 ‘박근혜 청부입법-문재인 제정 완료’ 구도로 풀이될 수도 있다.
“원칙적 허용과 예외적 금지 방식”과 “사후 보완”
이 법안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규제프리존을 지정하고, 규제완화 특례를 부여하고 사업계획을 승인하는 등 모든 권한의 최정점에 위치한다. 방대한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규제완화가 이뤄지고 기업의 권한과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의 설계다. 규제프리존법은 견제보다 특혜를 ‘특례로’ 규정한 법이다. 사전예방이 아니라 사후정비의 원칙으로 규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까닭에 일단 법이 시행되면 누구도 지역전략산업 복합체의 정점에 선 대기업을 막기 어려워진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 규제프리존 설정이라는 이유로, 일부 지역에만 규제완화가 특화되는 것처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을 선별해 특정 분야의 사업만 허가한다 하더라도 의료, 제약, 정보통신 등 곧바로 전국적인 파급 효과를 나타내는 분야가 많아 공간적 제한은 의미가 없다. 또 특정 지역에서 특정 분야의 사업이 규제완화에 힘입어 성공할 경우 이는 곧 역차별 문제를 낳아 규제프리존의 전국화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지역 전략산업이란 말은 허울일 뿐으로, 전국적 규제완화를 위한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이 법안이 모델로 삼은 일본 국가특구전략에서도 나타났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원칙적 허용과 예외적 금지 방식’, 일명 네거티브 규제완화 시스템을 기본으로 한다. 기존 규제라도 특별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모두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사전예방 원칙을 포기하고 모든 규제를 풀어 규제프리존 내 전략산업에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 보완한다는 것이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의 핵심은 역시 특례 조항이다. 대기업에게는 더없이 좋은 내용이지만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규제프리존에선 해외 투자기업들의 진출도 명목상 막을 수 없다. 규제프리존을 국내 주요 대기업과 지역 풀뿌리 중소기업을 매칭하는 방식으로 설계한다지만, 이익을 좆는 영리기업의 생리상 좋은 조건의 파트너를 마다할 리 없다. 따라서 해외 투자 기업의 규제프리존 진입을 막을 길은 사실상 없다.
이는 지역 경제생태계가 지역의 자생적 중소기업 위주가 아니라 대기업과 대기업의 하위 파트너인 지역 중소기업, 해외 투자기업과 해외 투자기업이나 자본과 관련된 기업, 그 삼자의 복합체로 단순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는 근거다. 결국 지역 토착 상권은 말 그대로 공중분해될 우려가 크다.
대기업 고삐 풀어주면 골목상권 공중분해 우려
규제프리존은 대부분 신산업 분야로 채워졌다. 신산업에는 철저하게 ‘승자 독식의 법칙’이 작용한다. 따라서 선제적인 대응과 시장 선점이 매우 중요하다. 드론, 자율주행차, 바이오의약 등 첨단 신산업에는 기존의 규제 틀을 적용하면 싹이 돋아날 수 없다는 게 규제프리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다.
하지만 4차 산업 분야에서 대기업에 제한을 풀어 배타적 특혜(진입 장벽의 해제)를 준다면, 역으로 중소기업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제품원가에 반영되는 임대료는 물론 기업의 토지자산증식 특혜 등 재벌경제 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신속회신제도, 기업실증특례, 신기술기반사업제도를 포함하는 이른바 ‘3대 규제혁신 제도’는, 가습기살균제 사고에서 드러났듯 옥시 같은 기업이 거짓으로 안전성을 입증한 경우라도 겨우 3000만 원의 벌금을, 신기술기반산업의 피해 예방을 위한 보험과 공제조합에 가입을 하지 않은 경우도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 내도록 해준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심각한 의료 민영화·영리화의 물꼬를 터준다는 우려도 있다. 규제프리존으로 지정된 모든 지역에서 (제한적이라는 단서가 있긴 했지만) 식약처 허가 전 의료기기 제조와 시판이 허용된다.
기업들만을 위한 규제 완화에 국민 혈세가 들어간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대표적으로 임상시험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즉, 제약회사가 임상시험을 할 때 현재는 제약회사가 위험을 무릅쓴 참여자나 환자에게 돈을 지불하지만, 규제프리존법이 현안대로 시행되면 앞으로는 오히려 국민건강보험이 제약회사에 비용을 지급하면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원내정당 중 정의당 유일 반대…“원천 폐기뿐 협상 없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최규진 기획국장은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내용 면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독소 조항들을 담고 있어 특정 조항을 조정하거나 지역 및 산업분야를 선별한다 하더라도 규제프리존법의 통과는 그 자체로 전국적이고 초법적인 규제완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 가져올 폐해는 심각하다. 지역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 위험천만한 규제프리존법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최재혁 간사는 “재벌 대기업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매개로 규제프리존법의 실제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등 규제프리존법의 실제 내용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규제프리존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재벌 대기업에게 규제완화와 이를 통한 특혜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활동가(왼쪽에서 다섯 번째)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바른정당 당사 앞에서 규제프리존법 협상 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팀 맹지연 국장은 “말 그대로 지역 전체를 규제프리존에 들어간 대기업의 손에 맡기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우선 해당 대기업에 매칭된 지역 자생의 중소기업들, 그들과 연관된 지역의 경제조직들이 대기업의 지배력 아래로 들어갈 것이고,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지역 전체가 그 네트워크의 정점에 있는 대기업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활동가는 “개인정보 처리는 그 효과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규제프리존에서 수집된 국민 개인정보가 전국과 전 세계에서 이용, 제공 및 심지어 매매될 수 있다”며 “규제 당국의 책무는 기업에 대한 비식별화 면책으로 소비자와 이용자 모르게 빅데이터를 처리하도록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이용자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처리를 알고, 선택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마련에 있다”고 꼬집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대기업의 이해를 대신해 박 전 대통령이 임기 내내 통과를 위해 엄청난 압력을 행사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 특별법 두 법안을 폐기하느냐 계속 추진하느냐에 따라 차기 정부의 방향이 설정될 것”이라며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모금과 더불어 추진된 이들 법안은 그 자체가 뇌물을 통한 거래 대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재벌과 정치권력이 결탁해 사적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법제도를 동원한 구태 정치의 전형”이라며 원천 폐기를 주장했다.
대기업 맞춤형 규제프리존특별법?
규제프리존은 말 그대로 규제가 없는(free) 지역(zone)을 만들자는 계획이다. 일본의 국가전략특구가 모델이다. 의료 분야 국가전략특구에 한해 외국인 의사의 진료, 일본 국내에서 승인되지 않은 약품의 사용을 허용했다. 현재 아베 정권은 전략특구의 규제완화를 발판으로 전국적인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국가전략특구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규제프리존은 시·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지역전략산업을 선택하고, 중앙정부는 그 전략산업육성 및 투자 촉진을 위해 필요한 핵심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주는 사업이다. 지역전략산업은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신산업으로, 국가 차원에서 산업 혁신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려는 정책이다. 전국 14개 시도지사가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를 촉구하고 나선 배경이다.
▲규제프리존의 전국 현황. 자료 = 기획재정부
규제프리존은 2015년 10월 지역경제 발전방안으로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처음 보고된 후, 관계 부처 차관급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중앙·지방정부 간 협의와 수차례의 지역·권역별 설명회 등을 거쳐 골격이 완성됐다. 정부는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각 2개(세종시 1개)의 대표 미래성장동력 산업을 키우기 위해 재정·금융 등 모든 규제를 맞춤형으로 풀어주는 지역발전 전략 지역을 선정했다.
규제프리존법안은 규제프리존 지정, 원칙적 허용과 예외적 규제 방식(네거티브 시스템), 규제특례, 추진체계를 6장 95개 조문에 담고 있다. 법의 핵심인 78건의 규제특례는 일반특례, 입지특례, 산업별 특례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일반특례와 입지특례는 26가지나 되고 전국 모든 규제프리존에 적용된다. 산업별 특례는 각 지역 지역특화산업과 연결돼 있어 해당 시도의 규제프리존에서만 적용된다.
일반특례는 프리존의 대기업이 낸 특허를 다른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직무발명보상 우수기업들보다도 먼저 심사해주는 ‘특허 우선 심사’를 규정하고 있다. 또 국유림이나 보호지역 등 국공유 재산인 토지나 물품의 임대와 매매 등에 관한 특혜를 보장한다. 프리존 내 사업자인 대기업 등에 재정 및 세제를 지원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입지특례 역시 대단하다. 프리존 내 사업자가 시행하는 개발사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시켜주고, 환경영향평가도 평가기간과 횟수를 줄여준다. 개발이 불가능했던 각종 보호지역에서 산업단지를 세울 수 있도록 지정제한요건을 해제하는 내용도 담았다.
산업특례와 관련해선 각 지역 전략산업에 대해 심사기간 단축, 등록기준과 지정요건 완화, 허가절차 간소화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특례들을 통해 프리존 내의 사업자에 대한 배타적 특혜가 보장된다.
대기업 위해 “특혜에 특례를 더한다”고?
78개 특례 가운데 신속회신제도, 기업실증특례, 신기술기반사업제도, 즉 이른바 ‘3대 규제혁신제도’가 압권이다. 신속회신제도는 중앙행정기관장은 기업의 질의 후 30일 이내에 문서로 회신하도록 한 것이다. 기한 내 회신이 없으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기업실증특례는 제품의 유해성과 안전성을 기업이 자체 실증하게 하는 제도다. 정부의 관리감독과 통제 기능이 배제된다. 신기술기반사업 제도는 기업실증특례를 받은 제품의 실질적인 기술 검증과 시장 반응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해당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만약 기업이 안전하다고 자체 실증한 내용에 대해 정부가 30일 이내에 검증하지 못한다면 신속회신제도로 인해 기업이 자체 실증한 내용에 따라 시중 판매가 가능하다. 사전허용 한 탓에 문제가 생기면 보완만 하면 된다. 전 국민과 자연이 기업의 신기술과 시제품의 생체실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부동산 특혜는 엄청나다. 관광, 농업, 산악관광 등 산업에 대한 입지특례도 보호지역 해제나 입지규제 완화를 허락하고 있다. 규제프리존에 조성되는 관광단지에 단독이나 공동주택 건립을 허용하고, 농업진흥지구를 해제해 농기계 산업체 등이 들어설 수 있다. 백두대간까지 산악관광지구로 묶어 산정에 관광호텔을 세우고 케이블카를 놓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다가 규제프리존의 해양관광산업 특례로서 국가지정문화재(부산 태종대)에 대해서도 건축물 개축과 재건축을 시도지사가 허가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산과 초지, 평지, 갯벌간척지 등 그 어떤 보호지역조차 가리지 않고 규제프리존 내에서는 전략산업체로 지정된 기업이 개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기업이 택한 입지가 보호구역 등지의 국유재산일 때 기업에게 수의계약으로 싸게 사용-임대-대부-매각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규제프리존에서 기업은 입지에 관한 무소불위의 선택권과 이익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이다.
대기업의 농업부문 진출도 가능하다. 상호출자가 제한된 대기업이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거나 인수합병하면 그 농업회사의 그룹 계열 편입을 7년간 유예해준다. 농지를 임대차하거나 위탁경영하도록 하고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해 그곳에 들어설 수 있도록 입지제한을 완화해준다. 임대기간도 연장해주는 등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허용한다. 비록 새만금 규제프리존에 국한된 일이라지만 이런 선례가 생긴다면 이를 빌미로 전국적으로 가능해질 수도 있다. 농업기반시설이 갖춰진 농업진흥지역을 지역전략산업을 위해 해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대기업에 의한 투기적 농지 소유 확대와 농지 축소, 식량과 환경기능 축소 가능성이 높아진다.
규제프리존 내에서는 화장품 제조판매업자가 품질 및 안전관리 기준을 자율로 정해 운영이 가능한 조항도 문제다. 비록 규제프리존에서만 그런 특례를 적용해 자율 기준으로 만들어진 화장품일지라도 그 유통은 역시 전국적으로 이뤄지므로 실질적으로 규제프리존을 벗어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FTA에 포함된 ‘투자자 국가 제소권’ 조항은 환경, 공중보건, 토지이용의 공공성, 주거 안정을 침해하는 사항일 때는 보호받을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내국인 대우’ 조항이 있기 때문에 만일 한국 기관, 기업, 개인 등에게 허용되는 권리라면 해외투자자들에게도 허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대기업? 정보 침해 논란도
(CNB저널 = 김광현 기자)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정보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 역시 일고 있다. 일부 조항에 4차 산업 혁명과 관련된 신기술 분야에서 개인 정보를 비식별화해 활용하는 경우 정보보호법, 개인 정보 보호법 등 현행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식별화란 개인 정보에 데이터 값 삭제, 총계처리, 범주화, 마스킹 등을 통해 개인 정보 일부 또는 전부를 삭제해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말한다.
비식별 개념은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행정부 가이드라인에 처음 도입됐다. 가이드라인은 비식별 정보는 개인 정보가 아니므로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해당 정보를 이용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금융·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이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 주장에 힘을 싣기도 했다.
비식별 조치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식별(de-identification)은 ‘익명’과 ‘가명’을 포함한 개념이다. 익명 정보가 개인을 완전히 식별할 수 없는 정보인 반면, 가명 정보는 비식별화된 개인 정보로서 개인 정보의 유출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는 정보다.
문제는 비식별 정보를 서로 다른 데이터와 비교-연계-결합하는 ‘재식별화’를 거치면 쉽게 개인 정보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병원 환자 정보가 B보험회사에 팔려 B보험회사 고객정보와 결합하면, 고혈압에 걸린 여자 환자 C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규제프리존특별법은 개인 정보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처리 거치면 개인정보 쉽게 드러나는데…
실제로 국내에선 비식별화된 의료 정보 47억 건이 미국 빅데이터 회사에 팔리는 사건이 있었다. 한국아이엠에스헬스와 약학정보원 등은 불법적으로 사들인 국민 4400만 명의 의료 정보를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미국 빅데이터 기업에 매매한 혐의로 2015년 검찰에 기소됐다. 피고는 ‘판매된 정보는 암호화됐기 때문에 무죄’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암호화된 개인 정보라도 이를 해제할 수 있는 재식별화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라타냐 스위니 교수 연구팀은 한국인 사망자 2만 3000여 명의 암호화된 주민등록번호를 전부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비식별화의 위험성에 대한 여론은 세계 각국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은 비식별화 기술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비식별 정보의 하나인 가명 정보라 하더라도 개인 정보로 규정해 개인 정보 보호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비식별 정보가 안전하다는 법안이 상정돼 있는 것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활동가는 “규제당국의 책무는 기업에 대한 비식별화 면책으로 소비자와 이용자 모르게 빅데이터를 처리하도록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이용자가 자신의 개인 정보에 대한 처리를 알고, 선택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마련에 힘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경석 기자 kangsan0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