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도서관 - CJ·현대차] 영화와 차가 책을 만날 때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영환 관련 서적 1만여권을 보유하고 있다. 좌석 사이가 넓어 방해없 이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 있다. 사진 = 선명규 기자
(CNB저널 = 선명규 기자) 일반 도서관이 ‘다양성’에 기본을 둔다면 기업이 만든 도서관은 ‘회사 특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2010년 이후 본격 등장한 ‘기업 라이브러리’들은 회사의 사업 방향 및 전문성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CNB는 영화, 음식, 자동차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는 독자들의 입맛에 맞춰 해당 기업들의 ‘라이브러리’를 연재한다.
영화를 보고 읽는다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1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한 해 영화 수십 편을 관람하고 백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책 읽고 영화 보는 데 “굳이 누가 필요해?”라고 반문하는 그는 대표적인 ‘혼영·혼책’(혼자서 즐기는)족이다. 한 번 앉으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그가, 다른 홀로족에게 ‘핫 플레이스’로 추천하는 곳. 그는 눌러앉아 책 읽다가 자리 털고 한 걸음 옮겨 영화를 본다.
#2 지난 4월 방송된 tvN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5회에서는 주인공 한세주(유아인)가 ‘유령작가설’을 해명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여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이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상기된 얼굴을 차례로 훑으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던 그 때. 한세주의 고백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흐르고 플래시가 연신 터지기 시작했다. 섬광을 뒤로하고 카메라가 맨 뒤로 빠지자 비로소 공간 전체가 드러났다. 벽면을 장식한 책장과 정면 스크린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앉은 구조에 시청자들은 방송이 끝난 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때 아닌 논쟁을 벌였다. “도서관이다, 영화관이다”를 놓고.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지난 2015년 서울시 중구에 있는 CGV명동역점에서 가장 큰 182개석 규모의 상영관을 도서관으로 리뉴얼해 연 곳이다.
▲실제 촬영에 쓰인 소품과 시나리오. 사진= 선명규 기자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전문가들이 엄선한 장서 1만 여권을 채워 넣어 단숨에 도서관 모양새를 갖췄다. ‘복합상영관에서(multiplex)’에서 지금은 세계적 추세가 된 극장에 라이프스타일을 가미한 ‘문화상영관(Cultureplex)’으로 거듭난 시발점이었다.
이 도서관은 한마디로 담백하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이까지 실제 책을 꽂아 넣었다. 일정 높이 이상이면 장식품이나 인테리어용 책으로 메우는 일부 도서관과는 차별화 된다. 꼼수가 없다. 서가 사이사이에는 고정된 사다리와 간이 사다리가 놓여 있다. 방문객용은 아니고 직원용이다. 필요한 책을 얘기하면 직원이 올라 꺼내준다.
백미는 역시 영화 관련 서적이다. 감독론, 배우론, 영화 이론, 콘티북, 아트북 등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피가 되고 살이 된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영화와 관련 산업을 다루는 잡지와 정기 간행물도 비치하고 있다.
별미는 영화 완성의 초석이 된 원작과 시나리오다. 특정 작품에 영감을 준 미술, 사진, 건축, 디자인, 예술 서적을 소개하는 코너가 따로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과 청불 영화의 새로운 기록을 세운 ‘내부자들’ 등 유수의 시나리오도 직접 볼 수 있다.
감독·배우와 ‘깜짝 대화’ 기회도
영화를 보듯 책을 볼 수 있는 구조는 몰입도를 높여준다. 층층이 마련된 의자는 모두 스크린을 향해 있다. 영화관처럼 다 같은 곳을 향해 앉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 있다. 앞뒤 간격도 넓어 방해 없이 이동 가능하다.
▲이곳은 영화 관련 서적 외에도 그래픽 노블, 콘티북, 잡지 등의 코너를 별도 마련했다. 사진=선명규 기자
책만 읽는 정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영화 특화 도서관답게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주인공과 연출자, 평론가들을 직접 만나 얘기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톡’도 정기 또는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영화 전문기자가 추천하는 배우의 연기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김혜리의 월간배우’, 영화와 책의 다양한 만남을 다루는 월간 프로그램 ‘이상용의 영화독서’도 영화 마니아라면 눈여겨 볼만 하다.
다만 이곳은 극장 내 일부 공간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이용에 약간의 조건이 있다. CGV명동역·명동에서 관람 전후 15일 이내 티켓을 제시하면 입장할 수 있고, CGV VIP 회원은 한 달에 네 번 이용 가능하다. 이 밖에 CJ ONE 포인트 차감(1000원)으로도 입장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12시부터 21시까지.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전문서적부터 튜닝까지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
▲서울 강남구 도산사거리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 2층에는 자동차 관련 서적 3500여권을 보유한 ‘오토 라이브러리’가 있다. 사진 = 선명규 기자
수입차 전시장이 늘어선 서울 강남의 도산사거리.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이 통유리창 안에서 옆구리를 드러낸 채 날렵한 라인을 뽐내는 광경이 이채롭다. 이 사이로 공중에 매달려 뒤집어질듯 지붕을 노출한 차들로 가득 찬 한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지난 2014년 문을 연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의 첫인상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차 정수리가 먼저 반긴다. 흔치 않은 각도로 곧추세워져 모형인가 싶지만 실제 차량이다. 3층에서 5층까지 3개층 창가에는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 등 차량 9대가 일반적인 눈높이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차를 회전 가능한 장치에 매달아 여러 각도에서 관람이 가능케 한 ‘카 로테이터(Car Rotator)’ 전시다.
▲‘카 로테이터’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자동차를 전시하는 모습. 사진 = 선명규 기자
이곳은 현대차의 실제 차량과 자동차 전문 도서관, 예술작품 등이 어우러진 신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1층에는 국내와 해외 작가의 작품을 번갈아 선보이고, 3~5층에는 신차가 나올 때마다 내부부터 밑바닥까지 고객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전시한다. 때때로 공연이나 파티, 명사 강연도 진행한다. 이름을 회사 정체성에서 따온 ‘모터(Motor)’와 창조·실험의 공간을 뜻하는 ‘스튜디오(Studio)’를 합쳐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1층 로비에 전시 중인 다니엘 아샴의 작품 ‘침묵 속의 아침’을 지나 2층에 올라가면 차와 책이 만나는 공간이 있다. 이곳의 이름은 ‘오토 라이브러리(Auto Library)’. 밖에서 본 묵직한 쇳덩이의 질감이 텍스트와 만나 한결 부드러워진 공기를 내뿜는다. 차량에 기본을 둔 도서 3500여권은 역사부터 정비기술과 디자인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품고 있다.
벽면을 따라 배치된 서가에는 차를 주제로 한 각종 전문 서적이 세분화 돼 꽂혀있다. 수단(자전거, 모터사이클, 비행기 특수운송 등), 기술(유지보수 및 정비, 엔진, 소재), 철학과 디자인(인물, 역사, 콘셉트카, 칼럼), 취미(자동차를 모티프로 한 영화, 음식, 캠핑) 등으로 방대하고 깊다. 여느 서점이나 도서관처럼 도서검색대도 갖추고 있다. 목재 테이블과 의자, 푹신한 소파는 편안한 독서를 돕는다.
▲자동차 관련 서적이 주제별로 세분화 돼 꽂혀있다. 사진 = 선명규 기자
소장 도서는 도서관 직원이 수시로 신간이나 외서 등을 꼼꼼히 검토해 선정한다. 관람객들이 새로운 도서를 추천하면 의견을 반영해 들여 놓기도 한다. 제안하는 이들은 주로 관련 지식이 깊은 마니아들로, 도서관의 전문성을 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간 가운데에는 독립된 서가 두 개를 따로 마련해 ‘미니 기획전’을 연다. 현재는 ‘Convertible’과 ‘Car&Art’를 주제로 한 도서와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테마는 매달 바뀐다.
▲3~5층에는 현대자동차의 차량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 선명규 기자
차를 글로 배웠다면 3, 4, 5층에서 실전(?)을 치를 수 있다. 이론을 충분히 익혔다면 시승은 기본. 응용은 차를 내 마음대로 디자인해 보는 각종 체험존에서 맘껏 해 볼 수 있다. 가령 시트 샘플 조직과 차량색을 대조해 원하는 인테리어를 미리 꾸며보거나 전문 튜닝업체가 완성한 차를 보며 외관 이상의 성능 업그레이드로 시야를 넓혀 볼 수 있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각층에 배치된 자동차 전문가인 ‘구루(일명 큐레이터)’에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는 평일 하루 평균 300여명이 다녀간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인근 직장인이나 단체 견학이 대부분. 주말에는 자동차 마니아부터 가족단위까지 평일에 두 배가 넘는 600명 이상이 찾는다. 개관 3년만인 현재 약 45만명이 방문해 자동차의 모든 것을 체험했다.
박중현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 부매니저는 CNB에 “판매 보다는 자동차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자동차 전문 도서관은 이런 취지에서 조성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선명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