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자이언 & 그랜드 캐니언] 한국인 안 찾는 노스림에서 무아경 빠지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3일차 (앵커리지 → 시애틀 환승 →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로 귀환
항공기는 이른 새벽에 앵커리지를 떠난다. 시애틀까지 3시간, 시애틀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2시간이다. 엿새 전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늘은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자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항공기는 만석이다. 더러는 성조기 문양의 복장을 하거나 아예 소형 성조기를 들고 다니며 애국심을 과시하는 이들도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한다. 7월 4일, 미국의 큰 명절, 라스베이거스 거리는 인파로 붐비고 호텔방에 켜놓은 TV에는 각종 특집 방송이 분위기를 더한다. 나로서는 내일부터 시작할 미국 서부 국립공원 탐방 자동차 여행 출발을 앞둔 밤이다.
14일차 (라스베이거스 → 자이언 캐니언 → 그랜드 캐니언 노스림 → 캐나브)
사막 여행을 앞두고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빌린 렌터카로 네바다 주를 벗어난다. 애리조나 주 경계 부근 도시 월마트에 들러 앞으로 일주일, 미국 서부 오지 여행에 대비하여 먹을 것, 마실 것, 컵라면, 과일 등을 잔뜩 샀다. 자동차에 옮겨 실으니 트렁크 하나 가득인데 식료품 가격은 30달러 남짓이다. 미국에서는 그로서리 식료품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오늘 네바다 주 남부 날씨는 화씨 105도(섭씨 41도)이지만 건조한 사막 기후라서 견딜 만하다. 다만 이번에도 역시 경비 절약을 위하여 소형차를 빌리고 말았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곧 다가올 사막 여행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말이다.
▲그랜드 캐니언 노스림 가는 길. 미국에서도 가장 오지 중 하나다. 사진 = 김현주
미국 국립공원 연간 패스
주 경계를 건너기 직전 네바다의 마지막 카지노가 여행자를 유혹한다. 애리조나 주를 잠깐 스치듯 지난 후 유타 주 세인트조지(St George)를 지난다. 유학생 시절, 싸구려 모텔을 찾아 다녔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싸구려 모텔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를 지금도 못 잊는다. 곧 자이언(Zion) 국립공원 서문이다. 미국 서부 국립공원을 두루 다닐 예정이므로 80달러를 주고 ‘America The Beautiful’ 연간 패스를 구입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자이언 국립공원은 역시 멋있다. 파란 하늘과 노란 또는 하얀 바위산들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어디에서 어떤 각도로 담아도 멋진 사진이 나오는 이곳은 그야말로 포토제닉 공원이다.
포토제닉 자이언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은 거대한 기암괴석과 각종 모양과 색깔의 절벽으로 이루어졌다. Great White Throne(왕관), East Temple, Checkerboard(바둑판) Mesa, Great Arch 등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오는 거대한 바위산들이 즐비하다. 캐니언을 관통하는 도로가 협곡 낮은 곳을 지나므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본다는 점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미국 대부분의 캐니언과 다르다. 때로는 600∼700미터 수직 암벽들을 올려다보기도 하니 장관이다. 1863년 몰몬교 개척자들이 정착을 시작하여 안전과 평화를 갈구하며 평화의 안식처라는 뜻으로 ‘자이언’이라고 이름 붙였다. 관통도로 중간에 있는 1.1마일(1.76km) 길이의 Zion-Mt Carmel 터널 또한 이곳의 명소이다.
한국인 인기 방문지
공원 내 작은 간이 주차장에서는 차를 세워놓고 캐니언 트레일을 따라 하이킹에 나서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자이언은 한국인 방문자들의 미국 서부 관광 필수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한 만큼 한국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도 자주 만난다. 모두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이기 때문에 금세 알 수 있다. 문득 젊었을 적, 너무도 미국 서부가 보고 싶어서 에어컨도 없는 낡은 차를 몰고 조마조마하며 사막을 건너던 생각이 난다. 차는 낡았고 돈은 없었지만 패기와 희망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이 소스라치게 그립다.
▲자이언 캐니언 국립공원 웨스트 게이트. 사진 = 김현주
▲사막용 비상 식음료. 트렁크에 채우는 데 30달러 남짓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미국 그로서리 가격은 저렴하다. 사진 = 김현주
몰몬 선교사 출신 주유소 모텔 사장 매튜
그랜드 캐니언 노스림(North Rim) 관문인 애리조나 주 제이콥 레이크(Jacob Lake)를 지나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매튜(Matthew)가 아직 여기 있냐고 물으니 지금은 사장이 되었단다. 주유소, 모텔, 식당 등 거대 복합시설의 사장이다. 아주 오래전 노스림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누었던 매튜는 당시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일명 몰몬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시흥, 구미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점이었다. 더욱 큰 성취를 빌며 그와 헤어져 가던 길을 재촉한다.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
드디어 그랜드 캐니언이다. 이름도 장엄한 케이프 로열(Cape Royal)을 먼저 찾는다. 세이지브러시(sagebrush) 숲길이 끝나는 지점, 수천 길 벼랑 위에 전망대가 있다. 이런 풍경은 아마도 지구상에 여기에만 있을 듯싶다.
미국 테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도 “경외감에 빠진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곳은 다시 없다” 했다고 하니 정확하게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20억 년 동안 비바람과 콜로라도 강의 침식과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며 형성된 대자연 앞에 인간이 감히 무슨 허튼 말을 더 보탤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려 할 때 대자연에서 호연지기를 배워볼 일이다.
벼랑 끝에 서니 마침 강풍이 불어와 나를 캐니언 위 창공으로 띄울 듯 한 기세다. 새처럼 거대한 협곡을 나는 상상을 해본다. 조물주께 바치는 영광찬미의 노래가 절로 나온다. 무아지경에 빠져 한참을 더 머물렀다.
▲그랜드 캐니언 노스림 임페리얼 포인트(Imperial Point). 사진 = 김현주
▲그랜드 캐니언 노스림 케이프 로열(Cape Royal). 사진 = 김현주
기왕이면 노스림
임페리얼 포인트(Imperial Point)는 해발 8803피트, 대략 우리나라 백두산 높이다. 사막 한 가운데에 있지만 해발 높이 덕분에 날씨는 선선하다 못해 춥다. 먼 아래에 콜로라도 강이 보인다. 캐니언 깊이 1마일(1.6km)를 실감하게 하는 까마득히 먼 곳이다. 북서쪽 방향에서 비추는 저녁 해가 협곡 건너 사우스림(South Rim)을 비추니 절벽 바위산이 거대한 황금 덩어리처럼 빛난다.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찾는 사우스림은 그러나 노스림보다 366m 더 낮고, 협곡 전망은 노스림이 더 낫다고 한다. 문제는 남북 캐니언은 직선거리로 10마일(16km)에 불과하지만 도로와 교량이 없으므로 사우스림(South Rim)에서 215마일(345km), 5시간 가까운 거리를 돌아와야 노스림에 닿는다는 점이다. 노스림은 이처럼 오지에 있는 만큼 찾아오는 이가 적으니 쾌적하게 탐방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다. 누구든 그랜드 캐니언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은 조금 멀더라도 사우스림보다는 노스림을 권한다.
각박한 여정을 탓하며
노스림 방문자 센터 캐니언 롯지(Canyon Lodge) 부근 주차장은 자동차로 꽉 찼다. 여기서 며칠씩 머물며 캐니언 트레일을 하이킹하거나 좀 더 용기 있는 사람들은 노새나 짚을 타고 캐니언 아래 바닥 콜로라도 강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럴 수 없는 내 일정을 아쉬워하며 차를 돌린다. 숙소를 예약해 놓은 유타 주 캐나브(Kanab)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다.
(정리 = 김광현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