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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38) 가나자와·돗토리·마쓰에] 일본의 ‘그늘’ 서해안을 지그재그 기차연결로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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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8.21 09:28:02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 (도야마 → 가나자와·신오사카 환승 → 돗토리 → 마쓰에)

조용해서 답답했는데 마침…

바깥 거리가 시끄러워 새벽에 잠을 깬다. 알고 보니 지난밤을 즐긴 젊은이들이 취기에 떠드는 소리다. 일본답지 않은 광경이지만 쥐죽은 듯 절간 같은 것보다 차라리 나아 보인다. 가나자와(金沢) 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가나자와까지는 신칸센으로 불과 22분 거리다. 이미 서일본(西日本) 철도 구역에 들어와 있지만 JR 전국 패스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이시카와 현(石川県)의 현청 소재지로서 에도 쇼군 시대의 흔적을 잘 간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나자와 성, 나가마치(長町) 사무라이 지역의 좁은 옛 골목 등이 알려진 볼거리이다. 

일본의 시애틀 가나자와

정원의 도시 가나자와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潮境) 해역을 옆에 둔 덕에 어류가 풍부하고 맛좋은 해산물 요리도 유명하다. 또한 해류의 영향으로 비가 많고 겨울에는 1m도 넘게 눈이 오기도 하므로 일본의 시애틀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점심 도시락은 잊더라도 우산만큼은 꼭 챙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비가 온다. 이렇듯 유서 깊은 도시이지만 열차 환승 스케줄 때문에 발을 딛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일본의 베니스’라 불리는 물의 도시 마쓰에(松江). 사진 = 김현주

교토 오사카 vs  경주 부산

가나자와에서 특급 열차에 승차하니 30분 후 후쿠이(福井)에 도착한다. 서일본 전력의 원전(原電)이 여러 기 있는 곳이다. 오늘 목적지는 가나자와와 이웃한 일본 서해안 돗토리(鳥取)와 시마네(島根) 등 이른바 주고쿠(中国) 지역이지만 후쿠이와 돗토리를 직접 연결하는 해안 구간 열차가 아예 없어서 간사이(関西) 지방까지 일부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우회 루트를 택하였다. 후쿠이 출발 1시간 20분 후 열차는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호수 비와코(琵琶湖)를 지난다. 호수를 따라 들어선 마을과 도시 모습이 그림 같다. 열차는 곧 교토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인파로 붐비는 도시를 만난다. 역 플랫폼 승객 중 서양인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교토가 세계적인 관광지임을 확인한다. 우리나라 경주나 부산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늘 궁금한 질문이다. 

▲마쓰에 성(松江城). 사진 = 김현주

관광 대국 일본

볼 것도 볼 것이겠지만 무엇이 일본 관광 산업의 경쟁력인지, 뒤집어 말하면 무엇이 한국 관광 산업의 취약 요소인지 생각해 본다. 중국 쇼핑 관광객에 절대 의존하는 구조로는 한국이 관광 대국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관광 관련 휴먼 인프라 아닐까? 터무니없이 비싼 한국의 생활 물가도 한몫 거들 것이다. 비싼 여행자 물가 때문에 한국은 심지어 내국인 관광객들조차도 이웃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빼앗긴다. 비싸더라도 품질과 친절로 보답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비싼 대가를 치른 것에 비해 만족도는 높지 않으니 말이다. 

놀라운 복합 환승 공간 신오사카 역

가나자와 출발 2시간 33분, 264km를 달려 신오사카 역(新大阪駅)에 도착했다. 신오사카 역사는 열차 선로위에 건립한 구조물로서 전철, 급행, 특급, 신칸센에 버스까지 한 곳에서 처리되는 거대한 복합 환승 공간이다. 빈틈없이 열차가 처리되고 환승이 이루어지는 일본 철도의 놀라운 시스템에 다시 한 번 압도된다. 게다가 지난 잃어버린 20년, 일본은 교통과 도시 기반 시설에 많은 투자를 했다. 예를 들어 그동안 나가노(長野)까지만 연결되었던 신칸센이 험준한 일본 알프스를 뚫고 최근 도야마와 가나자와까지 연장 개통한 것도 그렇다. 이제 불황의 늪을 벗어나고 있는 일본은 그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쓰에의 한 지역 양조장을 보곤 왠지 사케가 마시고 싶어졌다. 사진 = 김현주

▲마쓰에(松江) 도심 풍경. 사진 = 김현주

돗토리 행 산악 구간

신오사카에서 돗토리(鳥取) 행 특급 열차로 갈아탄다. 2시간 40분, 215km의 거리이다. 열차는 고베(神戸), 히메지(姫路)를 지나더니 아름다운 산악 구간에 접어들어 무수히 많은 터널을 지난다. 터널을 나오자 또 터널, 우리나라 영동선 분천에서 승부 구간 같은 풍경이 한 시간 이상 지속된다고 보면 된다. 드디어 돗토리에 닿았다. 

돗토리에서 선친을 그리워하다

오늘 돗토리에 들르는 것은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어서다. 벌써 30여 년 전 작고하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다. 서울시내 모 사립 중학교 교장이었던 선친이 학교 배구팀을 이끌고 친선 경기차 방문했던 곳이 바로 돗토리였던 것이다.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국 그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자 유일한 해외여행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짠해진다.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고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셨던 분이다. ‘좀 더 오래 세상에 계셔서 멋진 지구촌을 나와 함께 누비고 다녔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고학으로 도쿄 유학을 했을 만큼 진취적이었던 분이다. 당시 돗토리 방문 시 한자를 모르는 선수 학생들의 입국 서류 수십 장을 대신 써주느라 처음 타는 비행기 창밖도 한번 내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귀국 선물로 사 오신 손톱깎이 수십 개는 지금도 한두 개쯤은 남아 우리 집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다. 바로 이 돗토리 역두(驛頭)에서 일본 학교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았겠구나 생각하며 깊은 감회에 젖는다. 참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곳이다. 내 머릿속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 다음으로 돗토리가 새겨져 있으니 이곳에 온 감회가 매우 특별하다. 

▲가나자와(金沢) 부근 동해. 사진 = 김현주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더 많이 찾는 곳

돗토리에서 시간을 보낸 후 산인센(山陰線) 열차를 타고 마쓰에(松江)로 향한다. 122km, 두 시간 걸린다. 돗토리와 함께 시마네 현(島根県) 마쓰에(松江)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울과 돗토리 현 요나고(米子)를 연결하는 직항 편이 있고, 강원도 동해와 돗토리 현 사카이미나토(境港),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삼각형으로 연결하는 유람선이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 일본 서해안 오지는 도쿄나 오사카에서 아득히 멀고 열차 요금이 무척 비싸서 일본인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한국인 관광객들은 이 도시 지역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시마네 현이 독도 영유권을 들고 나온 이후 한국 관광객들이 급감하여 지역 경제에 타격이 있다고 한다. 

시마네 현의 착각

위도 상으로는 우리나라 부산쯤 해당하는 지역이 어쩌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는지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 과연 시마네 사람들은 미련하게 독도 얘기를 꺼내어 한국인들을 자극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규슈(九州)처럼 아예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한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오게 하여 실속을 챙기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닌지 묻고 싶다. 거리에서 가끔 눈에 띠는 ‘다케시마(竹島)를 회복하자’는 입간판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매우 흡사한 야마구치 현(山口県)의 들녘. 사진 = 김현주

몰의 도시 마쓰에

돗토리를 떠난 열차는 곧 동해 바다를 만난다. 한국에서도 자주 보지 못하는 동해 바다를 오히려 일본에서 며칠째 계속 만나고 있다. 동해 바다… 한국인이라면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이름 아닌가? 마쓰에 도착 후 숙소에 여장을 풀고 시내 탐방에 나선다. 운하가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 일본의 베니스,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시마네 현청까지 걸어가 인근 마쓰에 성(松江城)에 오른다. 2015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곳이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야산 언덕에 석축을 높이 쌓고 그 위에 30m 높이로 우뚝 선 성은 봉건 군주와 무사들의 철옹성이었으리라. 궁전이자 요새이자 망루 역할까지 했던 거대한 구조물은 1611년 완성되었다. 마쓰에 성 뒤로는 무사 저택이 있다. 가끔 오가는 차량만 아니었다면 백수십년 전,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이전 어느 날 같은 분위기이다. 저 앞 골목에서 사무라이 한 사람이 불쑥 다가올 것만 같다. 이곳에 와보니 왜 일본인들이 마쓰에를 사무라이 도시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알고도 남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해가 저물어 분위기를 더한다. 인적마저 끊겨 미국 서부 시골 마을처럼 변하니 고즈넉하다 못해서 견딜 수 없이 적막하다. 생선 굽는 냄새에 이끌려 선술집에 들어가 식사와 함께 사케를 마시며 시마네의 여름 밤 한 때를 즐긴다. 돗토리 현에 이어 일본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적은 시마네 현 아닌가? 


4일차 (마쓰에 → 마스다·나가토·코구시·시모노세키 환승 → 고쿠라) 

산인센으로 시모노세키까지

오늘은 시모노세키까지 일본 서해안의 마지막 서쪽 구간을 주파하는 일정이다. 마쓰에에서 마스다(益田)까지 163km, 마스다에서 나가토(長門)까지 85km, 그곳에서 시모노세키까지 90km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 혼슈 일주 여행 나흘 째, 몸도 지쳐간다. 마스다에서 야마구치(山口)로 나가면 시모노세키에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지만 혼슈 열차 일주라는 당초 목표에 충실하기 위해서 전 구간 산인센(山陰線)으로 오지를 주파해 우회하는 여정을 선택한 것이다.

▲야마구치 현(山口県)의 동해. 사진 = 김현주

일본 서해안 완주

오전 11시, 마스다행 특급 열차로 마쓰에를 출발한다. 163km, 2시간 13분 걸린다. 오른쪽으로 동해를 보며 계속 전진한다. 산, 계곡, 바다가 번갈아 나타난다. 이름을 기억 못할 정도로 작은 시골 마을들을 무수히 지난다. 마스다에서 빠듯하게 환승하여 야마구치 현(山口県) 나가토(長門) 행 단칸 열차에 오른다. 85km 거리를 거의 전 구간 바다에 아주 바짝 붙어서 열차는 달린다. 코구시(小串)에서 한 번 더 환승하여 마지막 구간 27.5km를 더 달려 시모노세키에 도착함으로써 혼슈 열차 일주 일본 서해안 구간 여정을 마친다. 

산요 vs 산인

시모노세키(下関)는 아래쪽 관문이라는 뜻이다. 마침 시모노세키 항에는 부산까지 가는 ‘부관훼리’가 오늘 밤 출항을 기다린다. 혼슈 일주를 시작하여 여기까지 2000km 넘게 달렸다. 일본의 잊힌 바다, 동해를 따라 아름다운 길을 왔다. 일본에서 태평양 연안은 산요(山陽), 동해 연안은 산인(山陰), 즉 ‘산그늘’이라고 부르지만 오지 동해 연안에도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일 태평양을 따라 북상하기 위하여 유리한 환승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북규슈(北九州) 고쿠라(小倉)로 이동한다. 열차는 칸몬(関門) 해협을 삽시간에 건넌다. 고쿠라에 내리니 한국을 닮은 후덥지근한 날씨가 기다린다. 한국에 아주 가까이 와있음을 실감한다. 

(정리 = 김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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