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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41) 라왁·바나우에] 찬란한 농경 금자탑 ‘200m 계단식 논’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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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9.11 09:32:36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 (비간 - 일로코스 노르테 라왁, 파오아이 교회 - 바기오 행)

퓨전 콜로니얼 거리

해뜨기를 기다려 크리슬로고 거리(Calle Crislogo)로 나간다. 비간(Vigan)의 다른 거리와는 달리 화강암이 깔린 거리는 얼마 걷지 않아도 왜 비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금세 깨닫게 해준다. 콜로니얼 양식과 중국풍이 혼합된 건축물이 많고 또한 보존 또는 복원이 잘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독특하기 때문이다. 현지인들과 중국인, 스페인인들이 섞여 번창했을 콜로니얼 시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야릇한 분위기에 젖어 한참을 배회한다. 가게와 카페, 호스텔만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400~500년 전 콜로니얼 시대 그 모습이다. 화강암 보도 위를 지나가는 칼레사(Kalesa) 마차의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다.

아름다운 파오아이 교회

오전 11시 비간을 떠난다. 버스는 북쪽 방향으로 두 시간 반을 달려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 주의 수도 라왁(Laoag)에 도착했다. 여기서 지프니로 남쪽 방향 50분을 이동하니 파오아이 시내 중심부에 교회가 나타난다. 파오아이 교회(정식 명칭은 Saint Augustine Church) 역시 길이 110m, 폭 40m의 거대한 건축물로서 스페인이 루손 섬 북부에 도착한 17세기 후반(1686) 최초 건립되었다. 지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14개의 묵직한 지지대로 교회를 받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여 ‘지진 바로크’(Earthquake Baroque)의 대표 건축물로 꼽힌다. 필리핀과 중국 장인들이 유럽 바로크를 재해석하여 지은 건축물이다. 종탑은 교회 본체와 떨어져서 훗날(19세기 중반) 건립되었다. 

▲비간(Vigan)에 있는 크리슬로고 거리(Calle Crislogo). 사진 = 김현주

▲일로코스 노르테주 수도 라왁. 여기서 지프니를 타고 남쪽으로 50분만 가면 파오아이 교회가 나온다. 사진 = 김현주

내부는 색유리를 넣었고 모자이크 유리도 추가하여 제법 멋을 냈다. 교회 정원과 주변이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예쁘게 잘 가꾸어졌다는 것도 이 교회의 특징이다. 성당 내부에 앉아 한낮의 더위를 식힌다. 감사와 희원의 기도를 올린다. 4대 바로크 교회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파오아이 교회를 끝으로 필리핀 유네스코 교회 탐방이 끝났다. 

아주 큰맘을 먹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힘든 길이었다. 의욕과 호기심만으로 계획했던 여행이지만 실행하는 일은 솔직히 계획보다 몇 배, 몇 십 배 힘들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득하다. 곧장 마닐라로 돌아가 집으로 가면 좋겠으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여정을 꺾어서 중부 산악 지대 바나우에(Banaue)에 들를 일이 남아있다. 파리냐스(Farinas) 버스를 타고 밤 9시 라왁을 벗어난다.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은 머나먼 곳이어서 떠나는 마음이 아련하다.

▲파오아이 교회(정식 명칭은 Saint Augustine Church)는 길이 110m, 폭 40m의 거대한 건축물로서 스페인이 루손 섬 북부에 도착한 17세기 후반(1686) 최초 건립되었다. 사진은 파오아이 교회 측면. 사진 = 김현주

▲파오아이 교회. 4대 바로크 교회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파오아이 교회를 끝으로 필리핀 유네스코 교회 탐방이 끝났다. 사진 = 김현주



4일차 (바기오 경유 - 바나우에 도착)

바나우에 가는 길

버스는 밤새 6시간 반을 달려 새벽 3시 30분 바기오(Baguio)에 도착했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바나우에(Banaue) 가는 가장 쉬운 길은 마닐라에서 하루 두 차례 밤에 떠나는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루손 섬 북부 여행과 연계하려다 보니 바기오로 우회하는 루트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오든 바나우에는 먼 곳이다. 바기오에서 바나우에로 이동은 시내 북쪽 알론조 거리(T. Alonzo St) 빅토리아 아파트 부근에서 출발하는 미니밴이 가장 낫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모두 6~7차례 왕복 운행하고 편도로는 6시간이 걸린다. 험한 산맥을 여러 개 넘는 산악 도로를 달려 바나우에에 도착하니 날이 무척 쌀쌀하다.

▲바나우에 가는 길. 사진 = 김현주

▲바나우에 풍경. 논들이 등고선처럼 가지런히 쌓여 있고, 논과 논 사이에 흑벽돌 또는 돌담으로 올린 경계석이 서있는 사이로 농가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사진 = 김현주

바나우에 풍경

깊은 산중, 높은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집들과 도로가 매달려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이푸가오(Ifugao) 고산족들인 이곳은 필리핀 다른 지역과는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좁은 도로를 따라 상점과 숙소들이 이어져 있고, 땅 한 뼘이 아쉬운 산중에 집을 짓기 위하여 가는 콘크리트 기둥 위 수십 미터 높이에 공중 부양된 듯 아슬아슬하게 떠있는 집들도 적지 않다. 주로 서양인 방문자들이 많지만 일본인들도 종종 눈에 띤다. 한국인, 중국인들이 들이닥치는 동남아 유명 관광지를 피해 이제는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찾아드는 일본인들의 여행 방식을 엿보게 한다. 

비가 오는 탓에 숙소에서 오후를 보내며 지난 밤 이어진 긴 야간 이동의 피로를 푼다. 숙소 앞 좁은 거리는 오가는 지프니와 오토릭샤의 경음과 매연으로 어지럽다. 바나우에는 사가다(Sagada), 본탁(Bontac) 등 산악 지역으로 미니밴 또는 지프니가 빈번하게 연결되는 필리핀 루손 섬 중북부 지역 교통 요충이다. 산골짝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가도 마을 뒤 깊은 계곡 아래로 소리치며 흘러내리는 거친 계류(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가 이곳이 어디쯤인지 짐작하게 한다.


5일차 (바나우에 - 마닐라 행)

계단식 논 탐방

계단식 논(rice terraces) 탐방 트레킹에 나선다. 필리핀 루손 섬 중북부 바나우에 계단식 논은 험한 산악 지형에 2000년 동안 쌓아올린 인류 농경 문명의 금자탑이다. 바닥부터 200m 높이까지 논들이 조성되어 있다. 계류와 샘물을 이용한 관개 시스템도 놀라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힌다. 이푸가오 계단식 논은 총 면적 400㎢로서 세계 최대, 최고, 가장 잘 지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계단식 논은 기원전 1000년, 청동기 시대에 중국 남부 또는 인도차이나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 이주자들이 건설을 시작했다. 이주자들은 여기뿐 아니라 일본 남부, 인도네시아 자바 섬, 순다 열도까지 계단식 논을 퍼뜨렸다. 훗날 철기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건너와 대륙보다 훨씬 크고 높고 정밀하게 계단식 논 문화의 꽃을 피운 것이다. 

▲바나우에 계단식 논은 험한 산악 지형에 2천년동안 쌓아올린 인류 농경 문명의 금자탑이다. 사진 = 김현주

▲필리핀 20페소 지폐에도 새겨진 바나우에 계단식 논. 사진 = 김현주

▲바나우에 풍경. 사진 = 김현주

시내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여 바나우에 전망대(Banaue View Point)까지 천천히 걷는다. 완만한 오르막길은 걷기에 그만이다. 고도를 더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필리핀 20페소 지폐 뒷면 그림의 모티브가 된 바로 그 풍경이 쉼 없이 이어진다. 한 시간 남짓 후 바나우에 전망대에 도착했다. 논들이 등고선처럼 가지런히 쌓여 있고, 논과 논 사이에 흑벽돌 또는 돌담으로 올린 경계석이 서있는 사이로 농가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트레킹을 시작했던 바나우에 마을이 발아래 아득히 보인다. 하루쯤 시간이 더 있다면 바타드(Batad) 또는 헝두안(Hungduan) 마을로 하루 나들이를 다녀오면 더 좋으련만 아쉽다. 저녁 7시 마닐라행 오하야미(Ohayami) 버스로 마을을 벗어난다. 산골짝 작은 집들마다 등불이 깜빡거린다. 버스는 밤안개 내린 산길을 조심스럽게 달린다. 


6일차 (마닐라 - 서울 도착)

가슴 짠했던 여행

버스는 밤새 9시간을 달려 새벽에 마닐라에 도착했다. 귀국 행 항공기에 오른다. 더는 갈 수 없는 지구 끝까지 다녀온 것 같은 필리핀 오지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우아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스페인 식민지 330년, 미국 식민지 50년, 그리고 이어진 군부 독재 수십 년의 질곡을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국토 대국, 인구 대국의 모습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위험한 나라‘, ’총기의 나라‘, ’소매치기의 나라‘로 알려졌으니 필리핀 사람들은 원통해 할 일이다. 그동안 경험했던, 그리고 이번에 내가 다녔던 필리핀은 그런 표현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가슴이 짠해진다. 

(정리 = 김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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