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김영란법 1년…입다문 ‘권익위’, 사장된 ‘문화접대비’
공연티켓 허용범위 놓고 아직도 논란 “왜”
▲건전한 접대문화 활성화를 위한 문화접대비 제도가 청탁금지법과 충돌하면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은 가운데, 이 법과 정부의 ‘문화접대비 제도’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청탁금지법에서 ‘문화접대’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확하지 않아 문화예술계와 기업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 사장 위기에 놓인 문화접대비의 실상을 CNB가 들여다봤다.
청탁금지법은 지난해 9월 28일부터 도입돼 시행된 지 1년이 되간다. 식사(음식)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로 허용 한도를 정한 이 법은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기업들의 접대 문화에 직접적인 메스를 가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중 111개사를 대상으로 2016년 4분기 접대비를 분석한 결과, 총 212억8600만원으로 청탁금지법 시행 전인 전년(2015년) 동기 대비 28.1%(83억3900만원) 줄었다.
그룹별로 보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5.4%(2억1400만원) 축소했고 ▲롯데(-59.9%, 10억300만원) ▲GS(-55.0%, 5억7300만원) ▲미래에셋(-50.3%, 9억800만원) ▲삼성(-49.8%, 7억8700만원) ▲OCI(-49.8%, 3억2400만원) ▲대우건설(-46.3%, 6억2500만원) ▲포스코(-45.0%, 2억5600만원) ▲영풍(-41.8%, 2억9700만원) 등으로 집계됐다.
기업별로도 111개사 중 82%인 91개사의 접대비가 쪼그라들었는데 같은 기간 한국복합물류는 아예 접대비가 없어졌고(100% 삭감), 포천파워(-88.6%), 롯데쇼핑(-85.8%), 코리아써키트(-76.3%), NS쇼핑(-75.9%), KT파워텔(-68.8%), 삼광글라스(-68.2%), CJ헬로비전(-67.4%), 롯데케미칼(-66.1%), 금호산업(-65.4%), 포스코에너지(-65.0%), GS홈쇼핑(-64.3%), KTcs(-61.5%) 등은 대폭 줄었다.
리베이트 관행으로 도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제약업계도 접대비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올 상반기 매출 1000억원 이상인 15개사가 금융당국에 최근 제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접대비 항목이 있는 10개사 중 8개사가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 전인 지난 2016년 7월 27일 서울 강남구 서울세관본부에 ‘청렴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유한양행이 올해 상반기 접대비로 1억8000만원을 지출해 전년 동기 대비 69.92% 줄였고 대웅제약 -65.25%, 동아에스티 -62.64%, JW중외제약 -46.78%, 동국제약 -42.85%, 삼진제약 -39.45%, 대원제약 31.95%, 일양약품 -28.75% 순이었다.
혹시나 불똥 튈라…몸 사리는 기업
사정이 이런 가운데 공연예술계는 뜻하지 않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이른바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문화접대’까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중인 ‘문화접대비 제도’는 문화예술 산업 활성화 및 기업의 건전한 접대문화를 조성키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에 따라 지난 2007년부터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추가 손금산입(損金算入)이 허용됐고 지난해 1월부터는 20%로 확대됐다.
즉 기업의 접대비 지출금액 중에서 거래처를 위해 스포츠 관람이나 공연, 전시회 초청 등 문화비로 지출한 접대비에 대해서는 추가로 접대비 한도액의 20%까지 조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해 준다는 얘기다.
하지만 활용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심재철 의원(자유한국당)·국세청에 따르면 2011년~2015년까지 5년 간 법인 접대비는 총 45조4300억원인데 반해 법인이 사용한 문화접대비는 약 270억원으로 비중이 0.06%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지난해 1월 문화접대비 적용 한도를 10%에서 20%로 증대시켜 활성화를 꾀했지만 불과 8개월 뒤 청탁금지법이 전면 시행, ‘선물 5만원 제한’에 발목이 잡히면서 기업의 문화예술 단체 입장권 구매나 협찬을 비롯해 고객초청 행사까지 몸을 사리고 있는 형국이다.
김휘정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 조사관은 CNB에 “문화접대비 제도는 건전한 방식을 유도키 위한 것인데 청탁금지법과 상충되는 부문이 있어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부작용이 호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이어 “문화 티켓 판매 금액과 청탁금지법에서 수용할 수 있는 금액과의 차이, 즉 괴리가 심해 취지가 좋은 제도가 사장되고 있는 형국”이라며 “과도한 포괄성을 억제해 순수 예술 분야만큼은 유예조항이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술 소비와 관련해서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등을 손봐 입장권 선물 등을 예외조항으로 넣거나 이 법의 시행주체인 국민권익위원회가 유권 해석을 내리고 관련 기준을 공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CNB에 “(문화접대비) 제도 촉진을 위해 지난해 관련 전용 상품권도 출시한 바 있고 기업문화 소비 활성화 사업 캠페인 및 우수사례 발표, ‘문화로 인사합시다’라는 홍보도 꾀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해 권익위와 협의해 프레스티켓의 경우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합의가 됐지만 일반적인 공연관람권의 경우 정해진 것이 없다”며 “예외가 인정될 경우 공연계나 문화예술 정책 활성화 차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성호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