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대화녹음 좋아하세요? 자칫 범죄 됩니다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사무실을 이전하려고 짐을 싸다보니, 예전에 사용하던 소형 카세트 녹음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반 카세트테이프의 1/4 크기 소형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녹음기입니다. 제가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에 선물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엔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었습니다.
무엇이 녹음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재생 버튼을 눌러보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의뢰인과 나누었던 상담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의 제 목소리를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녹음이 쉽고 편해진 시대
저는 상담을 하다가 내용이 복잡하거나 길어지는 경우에 종종 녹음을 합니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녹음을 진행합니다. 제가 녹음을 하는 목적은 제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서, 그로 인한 업무상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옛날에는 초소형 녹음기라고 해봤자 한 손에 잡히는 정도의 크기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장 기술의 발달로 녹음기는 갈수록 소형화되고 있습니다. 녹음기 모양도 펜, 열쇠고리 모양 등 언뜻 보아서는 녹음기인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에도 녹음 기능이 있습니다. 통화를 녹음하는 것도, 회의를 녹음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기술 발달 덕분에 이젠 녹음된 내용을 알아서 한글로 타이핑해주는 앱도 등장했습니다. 이제 녹음은 이렇듯 더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녹음, 녹취, 감청, 녹화 등을 규제하는 법이 통신비밀보호법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타인 간의 대화를 함부로 녹음 또는 청취할 수 없고, 이에 위반하여 수집한 녹음 자료 등은 재판이나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4조).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와 조카 이동형 씨가 다스의 경영 실권을 놓고 다투는 정황이 담긴 다스 내부자의 녹취 파일을 대량 확보해 분석 중이다. 이동형 씨가 1월 24일 오전 불법 자금 조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서울동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우리 법에 따르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고,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녹음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녹음하는 사람이 대화하는 사람 중에 있다면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A, B, C가 대화를 하는 중에 C가 대화를 녹음했다면, 몰래 녹음을 하든 공개적으로 녹음을 하든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A와 B가 나누는 대화를 그 자리에 없던 C가 몰래 녹음한다면 이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됩니다.
‘나’ 포함 안 된 남의 대화 녹음은 불법
따라서 C가 남편 A의 외도 증거 수집을 위해 남편 차량에 녹음장치를 부착하여 남편 A와 내연녀 B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하는 경우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는 것이죠. 실제 이러한 사례가 문제 되었던 하급심 판결에서는 C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C는 내연녀 B에게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덧붙여, 불법녹음 한 대화 내용을 A와 B의 부정행위의 증거로 쓸 수 있을지 궁금하실 듯해서 첨언하자면 해당 재판부에서는 그 녹음에 대해 부정행위의 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주었습니다. 형사소송에서는 위법수집 증거를 증거로 쓸 수 없지만, 민사소송에서는 법원의 재량으로 증거로 채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모든 재판부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대해 증거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녹음 및 공개에 대한 상대 동의가 중요
한편, 전화를 하던 도중 상대방과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도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화를 녹음하는 도중에 전화 대화 상대 이외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갔다면 어떻게 될까요? A가 B와 통화를 하면서 녹음을 하고 있는데, 마침 B와 C가 대화하는 소리가 같이 녹음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는 한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녹음을 너무 맹신하다가는 의도치 않게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녹음을 해야겠지만, 이를 남용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최근의 논의는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 녹음을 공개한 행위가 형사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하급심 판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민사상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상대방이 나를 협박하는 경우, 이런 범죄사실을 녹음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없이 상대방이 나와 대화하는 것을 무작정 녹음해서 공개하는 경우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