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보험사기방지법의 역설…무죄추정원칙 어디 갔나
일단 덮어씌우고 보자? 선의의 피해자 양산 우려
▲2017년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3703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양대학교 병원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보험사기를 막기 위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보험사와 사법당국의 조사권한이 커지면서 형법에 명시된 무죄추정 원칙이 훼손되는 등 소비자에게 오히려 불리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CNB가 실상을 들여다봤다.
보험사기란 보험금을 편취(騙取)키 위해 보험제도를 부당하게 악용·남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 가계부채의 증가와 고용구조의 불안정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보험사기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ING생명, KDB생명, DB생명, 신한생명, 현대라이프생명, 흥국생명, 하나생명, KB손해보험,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흥국화재, 한화손해보험,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주요보험사들의 2017년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전년 동기(3480억원) 대비 6.4% 늘어난 3703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1인당 평균 사기금액도 2011년 590만원, 2013년 670만원, 2015년 790만원, 2017년 상반기 840만원으로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회에서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통과시켰고, 지난 2016년 9월부터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보험사기방지법에서는 보험사기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보험사기죄를 신설하고 처벌을 강화했다.
하지만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특별법으로 인해 처벌이 강화됐음에도 모럴해저드 등 범죄의 유혹이 더 커 경각심 효과가 발생되지 않고 있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또 다른 해석은 보험사와 사법당국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측면이다. 보험사기 조사·수사 관련 업무절차 등 제도적 기반이 강화됨에 따라 ‘부정수급 의심자’가 ‘보험사기 범죄혐의자’로 둔갑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교통사고를 당했을 경우, 입원기간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금액을 부풀려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는 부정수급에 해당된다. 이를 아예 ‘사기’로 규정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으로 잡다보니 실제 사법판결과는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CNB에 “수많은 보험사기 의심 건들이 전부 통계 수치로 잡히고 있는 것으로, 적발금액의 증가가 곧 전체적인 보험사기 증가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사기법의 고도화, 공조수사의 발전 등으로 인한 적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법 도입 등으로 인해 ‘의심 가는 사례’들이 ‘보험사기(적발금액)’ 통계에 잡히고 있다는 얘기다.
“보험사에게 칼자루 쥐어준 꼴”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단 ‘적발금액’이라는 말과는 무색하게 금감원의 집계에 허수가 발생하고 있으며 보험사들의 악용 소지가 의심되고 있다는 것.
특별법에 따라 보험사는 보험사기행위로 의심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금융위원회에 보고할 수 있으며, 또 금융위·금감원·보험사는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를 할 수 있다. 수사기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입원적정성 심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험사의 권한이 예전보다 상당히 커진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결론이 안 난 혐의자도 들어 있어 법적으로 최종 범죄로 확정된 금액은 아니다”라며 “사실상 물리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법적 재판까지 간 사람들만 ‘사기범’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고 밝혔다.
사기 혐의자가 재판에서 누명을 벗는 경우, 스스로 자인해 형사처리 없이 보험사와 합의한 경우 등이 섞여 있어 최초 의심받은 사례가 실제 보험사기로 밝혀지는 비율을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CNB에 “특별법 시행으로 오히려 적발금액이 늘어난 것은 보험사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법 자체가 보험사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꼴로 ‘아님 말고 식’으로 보험사기로 몰아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금감원과 각 보험사는 보험사기 제보 접수를 위해 ‘보험사기 신고센터’를 설치·운영 중인데, 지난해 상반기 기준 대부분 보험사를 통해 접수(96.5%)되고 있으며 건수는 총 3912건으로 전년 동기 1253건 대비 무려 47.1%나 증가했다.
이는 긴급·현장출동 업체 직원 등의 제보를 보험사기 제보건수로 정식 접수·관리함에 따른 것이다.
이기욱 처장은 “신고센터·특별법 등을 통해 보험사가 계약자 등을 상대로 사기 혐의가 있다고 걸었지만 최종 무죄로 나온 경우 해당 소비자는 억울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선 본인이 직접 보험사에 소송을 걸어야 한다”며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이를 입증하고 소를 거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지적했다.
반면 보험사에서는 보험사기로 의심해 금융위에 보고하거나 수사기관에 고발 등을 한 경우 보험금 지급을 지체하거나 거절·삭감할 수 있고, 이러한 법적 허용 테두리를 넘더라도 과태료는 최고 1000만원만 내면 되기에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
이 처장은 “물론 보험사기는 근절해야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과잉청구로 모는 등 특별법 악용을 막기 위해선, 모니터링을 통해 최종적으로 보험사기가 아닌 사례가 많은 경우 영업정지 등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법이 사기방지에 초점이 모아지긴 했지만, 보험금을 주지 않거나 삭감키 위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에 남발을 억제하는 소비자 보호장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편,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과거에 비해 특별법 시행 이후 직원들에 의한 보험사기 의심 접수 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내부적으로 충분한 조사를 거쳐 사기 여부를 판단하고 있으며 명백한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금융당국에 신고나 수사기관에 의뢰를 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성호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