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4일차 (뮌헨 → 잘츠부르크 당일 왕복)
모차르트 탄생지
올드타운 중심인 시장 광장(Marktplatz)을 지나 잘자흐(Salzach) 강을 건넌다. 강을 따라 양쪽으로 고성과 교회, 박물관과 저택들이 서 있고 강 위로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걸려 있다. 도시 높은 언덕에는 잘츠부르크 고성(요새, Hohensalzburg Festung)이 서 있다. 강, 다리, 정원, 조각상, 그리고 교회의 도시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강 북동쪽 중심이 시장 광장이라면 남서쪽 중심은 모차르트 광장(Mozartplatz)이다. 광장 가운데에는 모차르트 생가(Mozart Geburthaus)가 있다. 1756년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은 이제 박물관이 돼 방문객을 맞는다. 광장 주위로는 잘츠부르크 박물관과 잘츠부르크 성당(Dom du Salzburg)이 웅장하게 서 있다.
부러운 청춘
뮌헨으로 돌아가는 버스 출발 시각이 다가온다. 사방에서 들리는 교회 종소리가 석양내린 잘츠부르크의 분위기를 더한다. 버스는 세 시간 걸려 뮌헨에 도착했다. 버스 옆자리에는 한국에서 온 남매가 앉아 있다. 뮌헨에서 버스를 환승해 오늘 밤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간다고 한다. 시간이 있다면 커피라도 한 잔 나누고 싶은데 그들의 환승 일정이 빡빡하다. 무거운 가방을 베네치아행 버스 짐칸에 옮겨 싣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젊음에 환호를 보낸다. 오늘 밤도 숙소 바깥 보행자 거리에는 밤새도록 파티가 열린다. 자유분방한 도시다.
25일차 (뮌헨)
중앙역 광장에서 뮌헨 도시 탐방 시작
오늘,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 일정은 뮌헨 도시 탐방이다. 지하철(U-Bahn), 전철(S-Bahn), 트램, 버스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1일 패스를 구입했다. 뮌헨 교통 패스는 이용 기간과 구간(zone)에 따라 요금이 다양하지만 도시 탐방은 시내 구간(inner district, Innenraum)이면 충분하다(6.60 유로).
중앙역(Hauptbahnhof) 광장에서 17번 트램을 타고 님펜부르크 성(Nymphenburg Schloss)으로 향한다. 바바리아 통치자들의 여름 궁전으로 쓰였던 곳이다. 단아하면서도 웅장한 독일 고유의 건축미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궁전 게이트로 들어가니 여의도만한 크기의 거대한 정원이 기다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넓은 정원을 조성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 손이 필요했을까? 봉건 시대 영주들의 무한 권력을 확인한다.
BMW World
올림픽 공원 중앙역에 내려 BMW World(BMW Welt)를 찾는다. BMW 비즈니스 센터, 박물관, 그리고 공장이 한곳에 모여 있는 거대한 단지다. 공장은 100년, 박물관은 50년, 비즈니스 센터는 6년 됐다. 비즈니스 센터는 신차가 구매자에게 양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루에 100대 정도 처리할 수 있으니 상징적인 공간이기는 하다.
실제로 BMW 차량 구매자는 거의 대부분 자신이 사는 지역 판매점을 통해 신차를 받는다. 서울 삼성동 구 한전 부지에 건축 중인 현대기아차 GBC(Global Business Center)는 아마도 BMW Welt 개념을 참고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도 땅값이 가장 비싼 곳에 10조 원을 투입해 토지를 구매한 취지를 분명히 깨닫는다.
서울 올림픽 공원과 흡사한 뮌헨 올림픽 공원
BMW Welt와 인접해 올림픽 공원이 조성돼 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다. 중력 법칙을 거부하는 스타디움은 가히 인간 기하학, 물리학의 승리 아닐까? 올림픽 공원은 서울 송파구 소재 올림픽 공원과 분위기까지 흡사해 깜짝 놀란다. 인공 호수, 인공적으로 조성된 주변 작은 언덕은 서울 올림픽 공원에 복원된 몽촌토성을 연상시킨다.
지금은 시민들의 주거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선수촌 아파트, 야외 공연장,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 높은 것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 뮌헨 올림픽 8년 후 서울 올림픽이 열렸으니 이것 또한 뮌헨의 경험을 많이 참고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검은 9월단 사건
이쯤에서 1972년 뮌헨 올림픽 기간 중 발생한 팔레스타인 과격 무장단체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의 인질 납치 테러 사건을 언급해본다. 올림픽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2년 9월 5일,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난입해 코치 2명을 살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잡았던 사건이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동료 200여 명의 석방과 인질을 맞바꾸는 협상 조건을 내건 것이다. 마침 한국 선수단 숙소가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 바로 이웃이어서 한국에서도 메가 뉴스였다. 검은 복면에 소총을 든 모습이 전달되던 TV 화면이 지금도 내 눈에 생생하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서독 경찰은 협상하는 척 하다가 강경 대응해 테러단을 모두 사살 또는 생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인질들도 함께 사망해서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문제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피의 보복을 시작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새삼 떠오른다. 훗날 인류는 수많은 테러를 겪으니 이 사건을 가히 글로벌 테러리즘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 역사의 현장에 있으려니 멋진 풍광은 잠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야깃거리로 매료시키는 마리엔 광장
뮌헨의 중심 광장 마리엔 광장(Marienplatz)으로 이동한다. 마리엔 광장의 중심은 타운홀(Town Hall) 광장이다. 광장 가운데에는 마리엔 기둥(Marien Column)이 있고 뉴 타운홀, 올드 타운홀, 성 피터 교회 같은 독특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중에서 뉴 타운홀의 85m 높이 고딕 양식의 종탑들이 두드러지는 풍경이다.
종탑 중간에 설치된 인형시계(Glockenspiel)는 단연 이 광장의 명물이다. 평소에는 하루 1번, 오전 11시, 여름에는 12시 정오와 오후 5시에 차임을 울려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체코 프라하 천문시계탑(Orloj)에서 모티브를 땄을 수 있겠으나 프라하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오늘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사람 실물 크기의 인형 놀이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과연 어떤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방문자들을 매료시킬지 궁금하다. 왕세자의 결혼식을 알리거나 페스트의 종료 등 기쁜 소식을 알리는 것쯤으로 짐작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형시계 탑과 뉴 타운홀은 대단히 섬세하고 정교하게 멋을 냈다. 독일인에게 기교가 없는 게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찬란하게 솜씨를 뽐낼 줄 안다는 것을 고급 독일 승용차를 타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왜 고색창연해 보이는 건물인데 ‘뉴’ 타운홀일까? 광장 건너편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오히려 더 세련된 현대식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물이 구 타운홀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더욱 헷갈린다. 숙소로 돌아와 여행기를 정리하는 이 시각까지도 아리송하다.
광장 한켠, 거리 연주자들이 클래식 명곡 메들리를 연주한다. 현악기, 건반 악기, 목관 악기 각 1개씩으로 구성된 단출한 현악 3중주이지만 음악은 풀 오케스트라 못지않게 역동적이다. 경쾌한 모차르트 레퍼토리들을 연이어 소화해낸다. 참 멋진 오후, 참 멋진 광장이다. 내가 지금 분명히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방, 문화와 멋의 도시, 뮌헨 중심에 와있음을 눈과 귀로 확인하는 값진 순간이다.
옥토버페스트의 발상지 호프브로이하우스
마리엔 광장을 빠져 나와 이 골목 저 골목을 배회한 끝에 올란도 광장(Orlando Platz)과 바로 그 옆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am Platzl)를 찾아냈다.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술집이다. 벽과 천장의 우아한 장식들이 술맛을 한껏 돋운다. 1589년에 바바리아 왕국 지정 양조장으로 설립된 이후, 1828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리는 중심지이자 발상지다.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빌헬름 왕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로 열린 이후 정례화 돼 100년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호프집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오늘 일요일 오후 손님들로 가득하다. ‘치맥’을 먹고 있는 모습에 절로 군침을 삼킨다. 올란도 광장은 그야말로 모두 호프집 일색이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9월말, 10월 초 즈음이면 이 부근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오데온스 광장 주변
광장 많은 뮌헨의 또 다른 중심 광장은 오데온스 광장(Odeonsplatz)이다. 마리엔 광장 또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오데온스 광장으로 가다 보면 막스 요제프 광장(Max Josef Platz)을 지난다. 요제프 동상이 광장 중앙에 있고 왕궁(Residenz, 레지덴츠)과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 등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단아한 바이에른 극장이 떠들썩했던 올란도 광장의 분위기를 가라앉혀 준다.
오데온스 광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테아티네 교회(Theatinerkirche)이다. 이태리 바로크 양식의 교회라서 고딕 첨탑 양식의 교회에 눈 익은 도시에서 생경하게 다가온다. 뮌헨은 남북 유럽 문물의 교차로에 있음을 다채로운 건축 양식을 통해서 확인한다.
오데온스 광장 옆 또는 막스 요제프 광장 뒤쪽엔 소담한 르네상스 정원 호프가르텐(Hofgarten)이 있다. 원래 궁전에 딸린 정원이었다고 한다. 예쁜 꽃길 사이의 벤치에 앉아 숨 가빴던 뮌헨의 하루, 아니 지난 4주 동안의 유럽 일주 여행을 되새겨 본다. 가는 곳마다 켜켜이 사람들의 사연이 농축돼 쌓여 있는 곳을 주마간산으로 지나 여기까지 왔다. 짧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매일 아침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설렘으로 가득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26일차 (뮌헨 출발)
발걸음 가벼운 귀국 길
뮌헨을 떠나는 아침, 에어차이나로 베이징까지 9시간, 그리고 그곳에서 환승해 두 시간이면 한국이다.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고맙게도 이번에도 베이징 행 항공기 옆 자리가 비었다. 한국에 가면 밀린 일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을 테지만 여느 여행 귀국길보다 마음이 가볍다. 조국의 가치가, 조국의 품이 이렇게 소중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이번 여행처럼 절실하게 다가왔던 적도 없었다. 먼 길, 장대한 여행길, 수천 km 운전…. 그런 모든 것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켜주신 절대자께 감사드린다.
(정리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