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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75)] 제주 면적에 산높이는 2배…어딜 가나 기암절벽

스페인 식민 전진기지 테네리페의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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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3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6.25 09:43:59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1일차. 마드리드 → 테네리페 도착


테네리페 공항의 긴장 


에어차이나 항공기는 상파울루를 떠난 지 10시간 걸려 이튿날 아침 마드리드 공항에 닿는다. 저가항공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긴 시간을 공항 터미널에서 기다린 끝에 테네리페(Tenerife) 행 국내선에 오른다. 


테네리페까지는 약 세 시간, 항공기는 섬을 뒤덮고 있는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무사히 도착하여 안도한다. 1977년 미국 팬암(Pan Am)과 네덜란드 KLM 항공사의 보잉 747 두 대형기가 충돌하면서 583명이 사망하는 인류 최악의 항공 대참사가 일어났던 곳이 바로 이곳 Tenerife North(TFN) 공항이었던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봄의 섬


바나나 같은 열대 작물을 키우며 근근이 살아가던 대서양 절해고도, 스페인 변방 중의 변방이었던 테네리페 섬이 성장한 것도 항공기 때문이고, 불행한 방식이지만 이 섬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도 항공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다. 테네리페는 ‘영원한 봄의 섬’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바닷바람과 무역풍이 식혀줘 온화한 날씨가 연중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후와 풍광, 적절한 물가, 그리고 서유럽 중심부에서 항공기로 3, 4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위치인 테네리페는 휴양지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라틴아메리카 식민 진출 교두보


원래 이 섬의 원주민은 북아프리카 유목민 베르베르(Berber)인 관체스(Ganches)이다. 1496년 카스티야(Castilla) 왕조 때 스페인 영토로 귀속된 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건너온 정복자들이 가지고 온 천연두, 독감 등으로 원주민들이 많이 죽었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차지를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한 테네리페에는 해안 요새들이 잘 보존돼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바다와 산이 모두 아름다운 테네리페의 해안 휴양지. 사진 = 김현주 교수 

콜로니얼 시대에는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 진출의 전진기지이자 보급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섬이 없었더라면 스페인 제국이 성립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훗날 테네리페 사람들은 척박하고 경제 여건이 불비한 이 섬을 떠나 라틴아메리카, 특히 쿠바, 베네수엘라와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등 카리브해 지역, 심지어 미국으로도 이민을 많이 갔다. 

 


22일차 테네리페


절묘한 산악도로 운전


섬 일주를 시작한다. 지난밤 공항에서 픽업해서 숙소까지 몰고 온 폭스바겐 골프 수동변속 렌터카는 단단하고 힘이 좋아 언덕 많은 섬을 탐방하기에 제격이다. 도시 외곽 산 펠리페(San Felipe) 요새부터 들른다. 이 섬에는 이처럼 요새가 수두룩하다. 유럽에서 신대륙 또는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게 되는 중요한 위치에 섬이 자리 잡고 있으니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세력이 노렸겠는가?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니 곧 섬의 지형에 익숙해진다. 분위기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을 많이 닮았다. 굳이 차이라면 하나는 지중해 복판에 있고 또 하나는 대서양 복판에 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산중 마을 마스카(Masca) 부근의 산악도로. 2단 기어로도 오르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가파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어디를 가도 한 폭의 그림


까마득하게 높은 데 걸린 굴곡 산악도로를 넘고 또 넘는다. 산 위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 내 몸을 절벽 아래로 날려 보낼 것만 같다. 산악 곡예 운전은 섬 북서쪽 작은 산중 마을 마스카(Masca)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은 2단 기어로도 오르기 어려울 정도이니 스위스 산악도로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구비마다 만나는 풍경은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저마다 기기묘묘한 생김새를 겨루듯 정상적으로 생긴 산봉우리는 없다. 참으로 역동적인 풍경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마스카 가는 길에 우연히 지나친 소담한 마을 가라치코(Garachico)는 tvN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윤식당 2’의 촬영 장소였다. 그러한 장소를 찾아낸 나영석 PD의 안목에 감탄한다. 

 

섬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로스 히간테스에선 거대한 해안 절벽을 바라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섬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로스 히간테스(Los Gigantes)의 거대한 절벽을 멀리서 조망한다. 어떤 봉우리는 해수면에서 수직으로 500m 솟은 것도 있으니 여기가 큰 대륙의 한복판인지 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섬의 남서쪽 휴양지 라스 아메리카스 해변(Playa de las Americas)까지 간다.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임을 말해주듯 유럽 각국 언어가 모두 들린다. 해변이 잘 발달되어 있고 기후가 한층 온화한 남쪽 해안은 인프라도 잘 발달해서 특히 인기가 좋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해발 1800m의 테이데 산의 경치가 삼엄하다. 200년 전 분출한 용암으로 주변 풍경은 검붉게 물들어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테이데 vs. 한라산


운해(雲海)를 뚫고 해발 1800m 테이데(Teide) 산을 전망하는 지점까지 자동차로 오른다. 멀리 3718m 높이의 봉우리가 경이로운 모습으로 섬 중앙에 버티고 서있다. 산 아래 드넓은 대지는 200년 전 분출한 용암으로 검붉게 물들어 있다. 거대한 산이 섬 중앙에 우뚝 서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 드넓은 이베리아 반도가 아니라 이 작은 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이하고 대서양에 떠있는 모든 섬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 여기라는 점도 의미있다. 


제주도 90% 면적의 섬 중앙에 한라산 높이의 두 배인 산이 버티고 섰으니 섬이 어떤 지형을 가지고 있는지는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어디를 가도 깎아지른 해안 절벽.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을 가더라도 한없이 굽이도는 가파른 언덕을 여럿 넘어야만 닿을 수 있다는 점에서 드라이브 묘미도 뛰어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하며 다시 운해를 뚫고 하염없이 산길을 내려간다. 예정했던 대로 섬의 서쪽을 중심으로 몇 군데 들렀을 뿐인데 해안 낮은 지역으로 돌아왔을 즈음에는 해가 진다. 여유롭게 다니겠다고 맘먹고 천천히 다닌 이유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섬에 불거리가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될 것이다. 

 

 

23일차 테네리페 → 마드리드 도착


카나리아 제도의 두 수도


오늘은 섬의 북동쪽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숙소를 떠나 타가나나(Taganana)로 가는 길은 카나리아 제도(Islas Canarias)의 두 수도 중 하나인 산타크루즈 데 테네리페(Santa Cruz de Tenerife)를 관통한다. 관광 산업 이외에 정유 산업이 가장 큰 산업임이기에 거대한 저유 탱크들을 계속 지나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석유 제품은 본토뿐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에도 수출한다. 

 

산과 바다가 거칠게 만나는 테네리페의 해안선. 사진 = 김현주 교수
테네리페 거리의 멋진 건물들. 사진 = 김현주 교수

카나리아 제도의 또 다른 수도는 테네리페 섬에서 약 100km 동남쪽에 위치한 그란 카나리아(Gran Canaria) 섬의 라스팔마스(Las Palmas)이다. 1960-70년대 한국인들이 대서양 참치 잡이를 위해 진출했던 곳으로, 전성기에는 한국인 1만 5000여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곧 산악도로가 시작된다. 산악도로는 가파른 언덕을 수없이 오르지만 자꾸만 차를 멈춰야 한다. 사진을 찍어야 할 곳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점입가경,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작은 섬이지만 가는 곳마다 날씨가 다르고 바다 색깔이 다르다. 기기묘묘한 모습의 봉우리들이 가파르게 바다를 향하여 쏟아진다. 마스카(Masca) 가는 길과 함께 이 섬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북동쪽 끝 바닷가 작은 마을 타가나나는 어업을 하기에는 바다가 너무 거칠다. 가파른 언덕 척박한 한 뼘 밭이 그들의 삶의 터전 전부다.

 

식민풍 거리에 교회, 성당, 종탑이 어우러진 멋진 마을 라구나의 풍경. 사진 = 김현주 교수

점입가경, 환상의 드라이브


섬은 어디를 가도 아름답다. 다른 것은 오직 아름다움의 종류이다. 조물주가 숨겨 놓은 비경 테네리페는 반전 또 반전이다. 신의 창조물 앞에 경외감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머나먼 대서양 한복판에서 또다시 깨닫는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른 라구나(La Laguna) 또한 예상치 않았던 볼거리를 제공한다. 콜로니얼 거리와 건축물, 교회와 성당, 종탑이 어우러진 멋진 마을을 서둘러 지나가야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공항에서 무사히 차를 돌려주니 48시간 대여 기간 동안 400km를 주행했다. GPS 내비게이션과 완전 면책 풀보험 포함해 대여비 116유로, 유류비 20유로여서 차량 비용은 모두 136유로(19만 원)가 들었다. 쉬지 않고 이어진 험준한 산악도로를 무사히 달려 안전하고 깨끗하게 차를 돌려줬다는 안도감이 컸다. 외국 여행에서 렌터카를 이용해본 사람이면 안도감의 의미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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