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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80)] 3시간 내내 아름다운, 크라이스트처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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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8-59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10.17 09:01:5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퀸스타운 → 마운트쿡 → 페얼리 도착) 


숨겨진 비경 마운트쿡


퀸스타운에서 마운트쿡 가는 길은 뉴질랜드 남섬의 다양한 기후와 지형, 풍광을 모두 품고 있다. 남섬 깊숙한 내륙에는 반사막 지형도 나타난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흡사한 풍경이다. 퀸스타운와 크라이스트처치를 잇는 주 도로에서 벗어나 한참을 들어가야 만나는 마운트쿡 또한 숨겨진 비경이다. 남반구의 한여름에도 여기는 설산이 즐비하니 자동차를 자꾸만 세워야 한다.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갔지만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해발 3724m의 봉우리는 구름 속에 숨어 있다. 산 넘어 아득한 곳에 버티고 있을 남알프스를 상상하며 대자연을 만끽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산악 지형이라서 애석하게도 오늘도 비가 종종 퍼붓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뉴질랜드의 산악 날씨를 몸으로 체험한다. 결국 날씨는 운에 맡기거나 아니면 시간과 비용에 여유가 있다면 한 곳에서 2, 3일 머물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세상에 멋진 드라이브 길도 많지만, 페얼리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180km, 세 시간 반 길처럼, 청정 자연에 아름다운 길 또한 드물 것 같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마운트쿡 국립공원 표지판 뒤로 험준한 마운트쿡이 어깨를 잔뜩 치켜올리고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골프 한 라운드에 2만원?


마운트쿡을 나와 세 시간을 달려 오늘 밤 숙박 예정지 페얼리(Fairlie)에 도착한다. 크라이스트와 퀸스타운 사이에 위치한 인구 700명의 전형적인 뉴질랜드 농촌 마을이다. 마을 복판 작은 공원에는 지난 세월 동안 세계 각지 전쟁터에서 산화한 이 지역 출신 병사 수백 명의 이름이 새겨진 참전 기념비가 서 있다. 

 

마운트쿡에서 크라이스트처치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작은 마을 페얼리의 전몰 장병 기념 동상. 인구 700명의 작은 마을 한복판에는 세계 각지 전쟁터에서 산화한 이 지역 출신 병사를 기리는 참전 기념비가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바로 건너편으로 훌륭한 골프 코스가 보인다. 호기심에 클럽하우스를 찾아가 보니 아직 해가 많이 남았는데 근무자는 벌써 퇴근했다. 골프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요금 함에 돈을 넣고 즐기고 가라는 안내문만이 걸려 있다. 18홀 한 라운드에 25달러(한화 2만 원)이다. 평소 골프를 즐기지는 않지만 골프 클럽만 대여할 수 있다면 당장 ‘황제 골프’ 한 게임 하고 싶은 충동이 절로 인다.

페얼리에서 묶은 호텔은 150년 전에 지은 건물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한국 기준으로 치면 말도 안 되게 오래된 건물이지만,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눈 덮인 설산 마운트쿡을 돌아가는 도로변에는 아름다운 비경이 많아 자꾸 차를 멈추게 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페얼리에서 화끈한 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저녁 시간 숙소 아랫층 바에서 현지인들과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도시 외곽 목장에서 양과 사슴을 수천 마리 키운다는 농부 터보(Turbo)와 덩치가 몹시 큰 맥도날드(MacDonald), 영국 캠브리지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이곳에 와 벌써 몇 개월째 머물러 거의 현지인이 되어 버린 올리버(Oliver)와 그의 아내 제니(Jenny), 그리고 애교와 센스가 넘치는 바 여주인 캐런(Karen)까지 의기투합한 대화는 밤이 깊어 바 문 닫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이곳 역시 스코틀랜드와 뉴질랜드 억양이 섞인 영어를 사용하는지라 종종 알아듣지 못할 때는 영국인 올리버가 통역 아닌 통역이 되곤 한다. 


남섬을 자동차 여행 중이라고 했더니 퀸스타운은 외지 관광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곳이니 다음 번 방문 때는 뉴질랜드의 참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 페얼리 마을에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이구동성으로 권한다. 평소 중국인들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수없이 마을을 지나가지만 어느 누구도 현지인과 말을 섞어 본 사람은 없던 터에 내가 말문을 여니 고마움과 궁금함에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나 같은 외지인 방문자와 정말로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었노라고 반가와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달라서 쉽사리 만나지지 않을 뿐, 서로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면 물처럼 대화가 흐르게 하는 인류 공통의 화제가 무한정 있음을 곧 확인한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중심가에는,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등에서 산화한 뉴질랜드 장병을 기르는 추모 다리(Bridge of Remembrance) 기념물이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6일차 (페얼리 → 크라이스트처치 도착)  


뉴질랜드 렌터카


페얼리를 떠나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가는 길, 180km 세 시간 반 또한 변함없이 아름답다. 무사히 도착하여 렌터카를 반납하니 96시간, 4박 5일 동안 무려 2100km를 주행했다. 한 번 움직였다 하면 200~300km,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려면 장시간 운전은 각오해야 한다. 오늘도 렌터카 사무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붐빈다. 승용차부터 소형 캠퍼밴(camper van), 대형 모터홈(motor home)까지 다양한 차량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나처럼 소형 승용차를 대여할 경우 보험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3~4만 원 정도이지만 캠퍼밴은 10~15만 원, 모터홈은 하루 25~30만 원이다. 부디 그들의 남섬 여행 기간 동안 비가 적게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떤 유학생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버스에서 유학 중인 한국 여학생을 만났다. 파티스리(patisserie, 제빵, 케이크)를 공부하고 있단다. 설 명절이라 고국 생각, 집 생각이 절실하다고 몇 번이고 되뇌인다. 소싯적 외롭고 힘들던 미국 유학 시절이 생각나서 내 마음도 짠해진다. 미국의 밤하늘을 쳐다보며 향수를 달래던 것부터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보름달이 뜰 때마다 유독 사무치던 가족 생각, 어머니 생각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유학 생활과 그 후 인생에 큰 행운이 있기를 빈다.
 

2011년 대지진으로 부서진 성당이 아직도 보수 공사 중인 크라이스트처치의 성당 광장. 사진 = 김현주 교수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 과정에서 내진설계를 갖춘 현대식 건축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사진은 크라이스트처치 아트센터의 모습. 사진 = 김현주 교수 

지상낙원에도 슬픔이


숙소에 체크인하고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1850년에 성립된 크라이스트처치는 인구 35만 명, 뉴질랜드 3대 도시이다. 정원 도시(Garden City)라는 별칭답게 도시 전체가 숲과 공원, 꽃으로 가득 찼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어 보이지만 이곳에도 슬픔은 있다. 시내 중심 성당 광장(Cathedral Square)에는 2011년 대지진 때 부서진 성당이 아직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리히터 규모 6.3의 지진으로 사망 185명, 부상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남긴 사건은 인구 480만 명의 작은 나라가 견디기에는 가혹한 시련이었던 것이다. 

 

정원 도시라는 별명답게 크라이스트처치는 도시 전체가 숲과 공원, 꽃으로 가득 차 있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크라이스트처치의 아름다운 해글리 강 모습. 사진 = 김현주 교수

재미없는 천국?


대성당 말고도 도시 곳곳에는 아직 지진 피해에서 복구되지 못한 구조물들이 여럿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진 이후 내진 구조를 갖춘 새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도시 미관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일요일 오후, 그렇지 않아도 한적한 거리는 해가 지기도 전에 가게들이 문을 닫아 버리니 적막강산으로 변한다. 누군가 뉴질랜드를 일컬어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했던가? 유쾌한 표현은 아니지만 일리있는 말이다. 

 

 

7-8일차 (크라이스트처치 출발 → 웰링턴/캔버라/싱가포르 경유 환승 → 서울 도착)


집으로 가는 머나먼 길에 오른다. 서울에서 오클랜드는 대한항공 편도 보너스 항공권으로 왔지만 돌아가는 길은 싱가포르 항공의 저렴한 편도 항공권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크라이스트처치 대신 웰링턴 출발에 호주 캔버라(Canberra)와 싱가포르를 경유 또는 환승하는 먼 길이기 때문에 저렴한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는 오늘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절반을 넘는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절인 춘절(春節, 음력 설 전후) 연휴 기간의 끝 무렵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아주 많은 숫자다.


뉴질랜드인지 중국인지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아무리 깊숙한 곳일지라도 쉬지 않고 중국인들을 만났으니 대도시나 유명 관광지는 뉴질랜드라기보다는 중국 어디쯤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불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무지막지한 여행 매너 때문에 현지인들 중 일부는 아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점이 마음에 크게 걸린다. 아직은 중국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는데도 이 정도인데 장차 그 숫자가 늘어나면 날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지 않을까? 2017년 사드 문제로 중국인들의 한국행 발길이 끊어진 후 제주는 오히려 돌아온 내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간편해서 좋은 나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제트스타(Jetstar) 저가 항공으로 웰링턴까지 날아가 그곳에서 싱가포르 항공기에 오른다. 여권에 출국 스탬프도 찍지 않을 정도로 출국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출입국 절차, 렌터카 대여, 숙소 체크인과 체크아웃, 그 모든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하다. 형식주의, 관료주의가 없거나 적은 자유로운 나라 뉴질랜드의 매력을 또 하나 발견하는 순간이다. 


싱가포르행 항공기 기내에서 읽은 뉴질랜드 일간지의 기사를 하나 소개한다.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에 근무하는 중국 전문가 교수의 집이 강도에게 털렸다는 기사이다. 경찰은 단순 강도가 아니라 의도적 침입이라는 단서를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문은 작은 나라 뉴질랜드를 길들이려는 중국의 보이지 않는 물량 외교 공세를 비판한 해당 교수의 연구를 소개한다. 정당 후원금을 제공하거나, 뉴질랜드 퇴직 공무원이나 그의 가족에게 뉴질랜드 소재 중국계 회사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난 한 주일동안 뉴질랜드 남섬 곳곳에서 만났던 수많은 중국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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