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산업이 2분기 실적에서 신기록을 이어갔다. 업계 일각에서는 내년 D램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조정과 그에 따른 수익률 하락을 우려하는 ‘호황 고점론’을 제기했지만 전문가들은 하반기 전망도 맑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분기 반도체 실적, 여전히 신기록
한국의 반도체 연합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분기에도 나란히 실적 신기록을 이어가면서 지난해에 이어 반도체 신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31일 공시를 통해 2분기 연결기준 확정 실적으로 매출 58조 4800억 원, 영업이익 14조 8700억 원을 각각 올렸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이 1분기보다 4.9% 줄어들고, 7분기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반도체 부문은 매출 21조 9900억 원, 영업이익 11조 6100억 원을 각각 올리면서 나란히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영업이익률은 52.8%에 달했고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8.1%에 달했다.
SK하이닉스는 26일 공시를 통해 올 2분기에 매출 10조 3705억 원, 영업이익 5조 5739억 원을 각각 올렸다고 밝혔다. 상반기에만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9조 902억 원과 9조 9413억 원에 달했다.
두 업체의 실적을 합치면 2분기에만 반도체 부문에서 매출 약 32조 3605억 원, 영업이익 17조 1839억 원에 달한다.
올해 전체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매출 93조 원·영업이익 49조 원을 기록하고, SK하이닉스는 매출 41조 원·영업이익 21조 원을 올리면서 또다시 실적 신기원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미중 통상전쟁의 유탄과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 이어진 악재에도 우려와 달리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는 가운데 가격도 견조한 양상을 보이면서 당분간 급격한 다운턴(하강국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삼성전자 전체 실적에서는 물론 여러 가지 국가 경제 지표에서도 반도체 의존 심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한동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하며 우리 경제를 견인해나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호황 얼마 안 남았다” 반도체 고점론 나와
하지만 반도체 호황에 대한 낙관론이 조만간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부터는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는 최근 들어 일부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하락 반전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초조함도 반영된 우려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토대로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경우 우리 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견해다.
최근에는 증권가에서 시작된 '반도체 고점' 논란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3일 SK하이닉스의 분기 실적이 올해 2분기에 고점을 찍고 내년 2분기까지 감소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내리고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선우 연구원은 "지난 2년간 D램 호황을 유발한 삼성전자의 수익성 위주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4분기부터 삼성전자의 전략 변화가 두드러지면서 D램 가격 하락이 현실화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전자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따른 D램 점유율 하락을 우려해 수익성 전략을 버리고 D램 공급 물량을 늘려 점유율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며, 결국 가격 조정 및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고점론’의 파급력은 제법 커서 이날 두 회사의 주가는 장 초반부터 동반 하락했다. 매물은 외국계 창구를 중심으로 나왔다. UBS와 CS,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이 삼성전자 매도창구 상위 명단에 올랐고 SK하이닉스 매도창구 상위에는 모건스탠리가 올랐다.
장 종료 시점에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2.00% 하락한 4만 6500원, SK하이닉스는 7.05%나 하락한 8만 17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기관이 매도한 SK하이닉스 주식은 1254억 원어치나 됐다. 외국인도 376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이 460억 원어치, 개인이 130억 원어치를 각각 팔았다.
반도체 호황 고점 논란의 영향도 컸지만, 삼성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 추이도 증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들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은 44.9%를 기록했다. 지난 2016년 3분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점유율이 50%를 넘기도 했고, 작년 2분기부터 세 분기 연속 45% 이상을 유지해왔으나 올해 들어 45%선이 깨진 것이 불안감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호황 계속될 것"
그러나 하반기 반도체 사업에 대한 업계의 전반적인 전망은 긍정적이다. 두 회사는 주력 사업인 메모리 시장의 호황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는 데 따라 하반기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내놓았다. 반도체 고점론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SK하이닉스는 26일 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2분기에 우호적인 메모리 수요 환경이 지속됐다"고 설명하면서 올해 하반기에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체들이 투자 계획을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고, 신규 클라우드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서버용 D램 제품의 수요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모바일 D램도 주요 업체들이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으나 공정 미세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최근 공급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지만 연말을 앞둔 계절적 성수기 효과와 가격 하락에 따른 수요 증가로 인해 이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도 비슷한 근거에 따라 하반기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31일 열린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전세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 전무는 “계절적 성수기인 3분기로 접어든 데다 데이터센터 및 모바일 부문의 수요 강세도 예상된다”며 “업계의 공급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기 쉽지 않아 긍정적인 업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버용 D램 수요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봤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하반기에 신규 클라우드 서비스 출시를 계획하고 있어서다. 미국 업체들에 이어 중국 업체의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는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졌다. 하지만 가격 하락이 다시 수요를 만들어내며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사용량이 증가했다는 게 삼성 측 얘기다. 최근에는 64GB 서버용 D램과 8TB SSD 등 고용량 제품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내년 D램 수급 전망도 긍정적으로 봤다. 공급 측면에서 반도체 제조사들이 10나노급 공정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공정기술이 높아질수록 대규모 자본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 전무는 “내년에도 업황이 안정적일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도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 확산 등의 영향으로 서버의 고성능, 고용량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에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단기적인 외적 성장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수익성 강화가 기본 전략이며 이에 대한 변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회사 측은 “연말에는 10나노급 D램 제품 비중이 전체의 70% 이상이 될 것”이라며 “1Z 나노(10나노 초반) D램 제품 등을 차질 없이 개발해 지속적으로 업계 최고 기술력을 확보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증권가도 긍정적…3분기 실적 기대
증권가도 하반기 반도체 업종의 호황을 전망하고 있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Azure)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89% 증가하며 서버용 D램 수요가 견조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면서 "반도체 대형주로 여전히 SK하이닉스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3분기까지 SK하이닉스의 실적 가시성이 뛰어나고 원화 약세에 따른 환율 효과도 기대된다"며 "D램 비트 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가 경쟁사인 삼성전자나 마이크론보다 앞선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와 NH투자증권은 삼성전자가 3분기에는 영업이익 17조 5000억 원으로 다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신한금융투자 최도연 연구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3분기 실적 개선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면서 "반도체는 물량 증가와 D램 평균판매가(ASP) 상승, 디스플레이는 휘어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Flexible OLED) 가동률 급등 덕을 볼 것"이라고 분석했다.
NH투자증권의 도현우 연구원은 "여전히 타이트한 수급으로 D램(DRAM) 가격이 2% 상승할 전망"이라며 "디스플레이의 경우 LCD는 부진을 지속하겠지만 주요 고객사의 신규 스마트폰 출시로 플랙서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가동률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컨퍼런스콜에서 D램 전략이 여전히 수익성 위주라고 강조했다"며 "이는 최근 시장 일부에서 부각 중인 향후 메모리 수급에 대한 우려를 줄일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