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2호 정의식⁄ 2018.08.21 16:08:31
역대 최대의 폭염 덕분에 에어컨 제조사, 판매사, 설치업체 등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이번 여름, 소비자의 급한 마음을 이용한 악덕상술이 여전히 횡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저가’를 내세운 오픈마켓 판매자 또는 설치업자들이 지나친 추가 설치비를 요구하거나, 설치를 거부하는 상황이 많이 포착됐다. 한국소비자원 등 소비자단체들은 가격검색 사이트의 헛점을 활용한 최저가 판매자들의 ‘낚시’에 걸리지 않으려면 좀더 면밀히 구입 조건을 파악하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폭염에 에어컨 구입 늘면서 소비자 피해도 증가세
#1.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7월 중순께 벽걸이형 에어컨을 구입한 A씨. 가격검색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쇼핑몰에서 ‘설치비 무료’가 명시된 30만 원대 초반의 최저가 제품을 선택, 구입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설치를 하러 온 기사가 추가 설치비를 과도하게 요청한 것. 기존 제품 철거비 3만 원, 실외기 설치용 앵글 작업비 3만 원, 2층 이상 외부작업시 위험수당 3만 원 추가, 진공비 3만 원, 동배관 교체비 3만 원에 1미터 당 1만 원 추가, 가스 보충비 3만 원 등 20만 원 가까운 비용이 청구됐다. 2005년 경 에어컨을 구입했을 당시 약 10만 원 정도의 설치비를 지출했기에 이번에도 그 정도를 예상했던 A씨는 불과 10년 사이에 같은 장소에 설치하는데 왜 비용이 다르게 청구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2. 가격검색 사이트를 통해 오픈마켓에서 100만 원 상당의 스탠드형 에어컨을 구입한 B씨. 폭염이 한창이던 7월 말이라 설치가 제때 이뤄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설치 기사는 3일 만에 방문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아파트 4층에 위치한 외부 실외기 교체 작업을 위해서는 최소 2명의 기사가 필요한데 설치 기사는 혼자였던 것. 기사는 설치가 불가하다며 2인 이상이 작업하는 다른 설치 업체를 연결해주겠다며 돌아갔다. 5일이 지난 후 2명의 설치 기사가 다시 방문했지만 이들 역시 난색을 표하며 “우리로서는 설치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4층에 위치한 실외기를 교체하려면 사다리차가 필요한 상황인데, 자신들은 그런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 이들은 “하이마트같은 대형매장 또는 삼성디지털플라자, LG베스트샵 같은 제조사 대리점에서 구입하면 설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버렸다.
30도가 넘는 폭염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달째 이어지면서 이전까지 에어컨을 구입하지 않거나, 구입해놓고도 사용을 많이 하지 않던 소비자 층이 올해는 대거 에어컨을 구입하거나, 사용 시간을 늘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전례없는 수준으로 폭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7월에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소비자상담은 7만 449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만 3676건과 비교하면 약 1.1%(816건) 늘었고, 전달(6월)과 비교하면 약 5.8%(4078건) 증가했다.
가장 상담이 쇄도한 품목은 전체 상담 건수의 3.7%를 차지한 에어컨으로 무려 2754건이나 됐다. 침대(2492건), 이동전화서비스(1958건), 휴대폰/스마트폰(1544건), 헬스장·휘트니스센터(1483건)가 뒤를 이었다. 에어컨의 경우 연령별로는 30~39세와 40~49세 사이의 연령대 상담수가 가장 많았다. 주요 불만 사항은 소음 등 품질하자, AS 불만, 광고와 다른 성능에 대한 불만 등이었다.
최근 3년간의 에어컨 소비자 상담 건수와 피해구제 신청 건수의 증감율을 살펴보면 가파른 상승세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에어컨 관련 소비자 상담은 2015년 3807건에서 2016년 6492건, 2017년 8065건으로 2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이 중에서 에어컨 관련 피해구제 신청으로 이어진 사례는 총 664건이었는데 이 역시 2015년 127건, 2016년 210건, 2017년 327건으로 증가세가 뚜렷했다.
설치 관련 피해가 50% 육박… 비대면 거래 ‘요주의’
에어컨 소비자 피해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설치와 관련된 피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사업자의 설치상 과실, 설치비 과다 청구, 설치 지연·불이행 등 설치 관련 피해구제 신청이 316건(47.6%)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AS 불만 125건(18.8%), 품질 121건(18.2%), 계약 관련 72건(10.8%) 등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에어컨 소비자 피해 신청 2건 중 1건은 설치와 관련한 신청인 셈이다.
설치 관련 피해 유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품 파손, 배관 누수, 설치 미흡 등 설치상 과실이 262건으로 가장 많았고 설치비 과다 청구가 35건, 설치 지연 및 불이행이 19건이었다.
특기할만한 건 백화점, 대형마트, 전문판매점 등 ‘일반 판매’를 통한 경우보다 온라인쇼핑, TV홈쇼핑, 소셜커머스, 모바일 등 ‘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를 통해 구입한 경우 설치 관련 피해가 더 높았다는 점이다.
전자상거래 등 비대면 거래 245건 중 설치 관련 피해는 64.5%(158건)로 전체 피해구제 신청 664건 중 설치 관련 피해가 차지하는 비율(47.6%, 316건)을 크게 상회했다. 이 중에서도 설치비 과다 청구 피해(35건)의 77.1%(27건)가 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에 집중돼 사업자가 판매 페이지에 설치비 관련 내용을 보다 상세히 고지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실제로 G마켓, 옥션, 11번가,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주요 온라인쇼핑몰·오픈마켓에서 에어컨 구매자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설치와 관련된 소비자들의 불만이 상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설치비 바가지를 예상하긴 했는데 직접 당해보니 어이없다. 실외기 거리가 불과 1미터 정도인데 총 17만 원의 설치비를 받아갔다”, “주름 동관이 필요없고 기본 동관으로 설치 가능한 직자 코스인데 애초에 기본 동관은 가져오지도 않고, 총 설치비 15만 원이 나왔다”. “추가 비용이 너무 많아서 기본으로 해달라 하니 안 된다고 거부하고 에어컨을 도로 가져갔다. 이런 최악의 경우는 처음이다” 등 다양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단체 “계약 조건 꼼꼼히 따져보고 구입해야…”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소비자들의 기술적 무지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진공 작업비, 가스 충전비 등이 대표적이다.
진공 작업이란 에어컨 설치 전 배관의 수분을 제거해 열효율을 높이는 작업인데 에어컨 설치의 필수 항목이므로 대부분의 경우 기본 설치비에 포함돼 별도의 비용은 청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업자들은 이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가스 충전비 역시 마찬가지다. 에어컨은 평균 배관 길이에 맞게 냉매용 가스가 충전된 상태로 공장 출고되므로 배관을 연장하지 않는 이상 추가 비용이 필요없다. 하지만 일부 업자들은 가스를 충전하지 않고도 충전했다고 하거나, 배관 연장이 필요없는 데도 배관을 연장하고 추가 가스를 주입, 추가비를 받는다.
설치 기사들도 할 말은 있다. 각 가정마다 설치 조건이 다르므로 설치비도 그에 따라 오르내릴 수 밖에 없는데, 구매자들이 정당한 설치비 요청에 대해서도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 과도하게 설치비를 요구하는 설치 기사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항변도 나온다.
한 설치 기사는 “소비자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에어컨 설치 공임은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며 이를 어기면 우리도 제재를 받게 된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악덕 설치 기사는 소비자들이 적극 신고해 불이익을 받게 하는 게 상책”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제조사 직영점이 아닌 온라인 쇼핑몰 등 유통 업체를 통해 에어컨을 구입하는 경우 설치는 별도의 용역 계약을 맺은 업체에서 하게 되므로 추가 비용 부담 등 상호 계약 조건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전자상거래 등 비대면으로 구입 시 설치비 관련 정보가 명확하게 제공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사전에 정확한 설치비 견적을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설치비 등 추가 비용 발생 여부, 설치하자 발생 시 보상 범위, 이전 설치비 등 계약 조건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 특히 “에어컨 설치 후 즉시 가동하여 냉매 누출 여부를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자가점검을 실시해야 하며, 설치 시 설치 하자에 대한 보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