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필자가 법조인으로 출발했던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직업별 선호도가 언론에 발표될 때마다 거의 판/검사/변호사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고, 매 연말 학력고사 성적이 발표될 때에는 인문계열의 최고 득점자는 항상 법과대학에 진학, 사법시험을 거쳐 판검사가 되어 사법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처럼 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은 사회의 선망 직업이었고, 법조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고교 시절 시험 성적으로는 학교를 주름잡던 인재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공계열로 진학하여 공과대학이나 의과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거나, 졸업 후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한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사법시험의 열풍이 몰아쳐 ‘고시 낭인’들이 양산되고, 이공계열의 우수한 인재들조차 법조인이 되려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참여정부 시절에 들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였지만 그 부작용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법조인의 숫자는 대략 잡아도 판사는 3000명, 검사는 2000명을 넘어섰고, 변호사는 벌써 2만 명을 넘어 조만간 3만 명에 달할 것입니다. 변호사 업계가 더 이상의 새로운 분야를 창출해 내지 못하고 현재의 상태로 간다면 생존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런 와중에 전관 변호사, 연고 변호사 등의 심각한 폐해가 실제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져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해마다 변호사 숫자는 늘어가고, 로스쿨을 갓 수료한 신참 변호사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 형국임에도 로스쿨에 입학하는 예비 법조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최고의 엘리트 계층 출신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법조인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2500년 전 공자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평소 높은 평가 못 받던 자로가 “시비 가릴 최적임” 칭찬받은 이유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로부터 간단한 몇 마디의 말을 듣고서 신속하게 소송 사건의 시비를 가려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바로 ‘자로’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제자인 자로의 실천력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子曰 片言 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 無宿諾)
자로가 어떤 사람인지 사마천의 기록을 보면 “공자를 처음 만날 때 자로는 닭볏 모양 모자에 멧돼지 가죽 띠를 매고 공자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였으나 공자는 예를 베풀어 자로의 마음을 끌었고, 자로는 가르침을 받을 마음을 먹고 다른 제자들을 통해 입문을 청했다. 공자보다 겨우 9살 아래인 자로는 입문 후 공자의 수행원이자 자발적 보호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그룹에는 속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로에게는 자공과 같은 재기도 없었고, 안회와 같은 선을 향한 의지도 없었지만 욕심도 없고 악의도 없는 사람이었고, 너그럽고 용감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나 의무감을 느끼는 상대를 절대로 배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자는 송사를 잘 처리하는 것보다는 반드시 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자로보다 더 뛰어난 안회 같은 제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도 부국으로 가려면 많은 인재들이 이공계열에 몰려야 하고, 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회 같은 최고의 인재들은 정계로 나서야 하고, 법조인은 건전한 상식과 정의감에 투철한 자로 정도의 인물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2500년 전 공자의 말씀을 깊이 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 1978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돼 ‘특수통’으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다. 2006년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의 초대 심사본부장을 2년간 맡았으며, 2013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금곡서당에서 수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