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지난 1999년 폐지된 ‘상품권법’ 부활 찬·반 논란이다.
경실련이 선정·발표한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할 8대 분야 35개 개혁입법과제 중에는 ‘상품권법 제정’이 포함됐다.
국회 정무위원회·경실련 등에 따르면 지난 1961년 상품권의 발행과 상환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상품권법’이 제정, 1997년 기준으로 200개 회사에서 약 1조6000억원 규모가 발행될 만큼 상품권 시장이 활성화됐다.
이후 1999년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행정력의 한계에 따른 실효적 규제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상품권법은 폐지됐다. 따라서 별도의 등록·허가 없이 누구나 인지세(모바일상품권·충전식 선불카드 및 정부·공공기관이 발행한 상품권 제외)만 납부하면 상품권 발행이 가능해진 것.
신세계상품권(신세계), 롯데상품권(롯데쇼핑), 현대백화점상품권(현대백화점), 홈플러스상품권(홈플러스), GS칼텍스상품권(GS칼텍스), SK상품권(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상품권(현대오일뱅크), CJ상품권(CJ CGV) 등 기업 직접 발행 상품권과 제휴형 상품권(간접 발행 상품권) 및 온누리 상품권(전통시장 전용)·지자체 상품권 등 정부·공공기관 발행 상품권 등 다양한 유형의 상품권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2016년 조폐공사가 발행한 유통사·정유사·전통시장 등의 상품권 발행 규모는 9조552억원으로 전년 8조355억원보다 1조197억원(12.7%) 증가했다. 이는 화폐발행량의 약 70%에 해당되는 수치다.
이러한 현 시점에서 상품권법을 다시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는 뭘까.
이유인 즉 상품권의 발행·판매·유통 등 관리·감독하는 소관 부처가 없어지면서 누가 얼마나 발행하는지, 시장에 어느 규모로 유통되고 상환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현황조차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품권의 미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당이익인 낙전수입, 상품권 관련 소비자피해 증가,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음성적인 거래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음성적인 거래 등 부작용
한국소비자원의 상품권 피해구제 현황(2014~2017.8)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총 6959건의 상담이 이뤄졌지만 피해구제가 된 것은 373건에 불과했다. 특히 경실련에 따르면 상품권의 발행급증은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무기명 유가증권이라는 특성으로 음성적인 거래 요인으로 유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아울러 법인과 개인사업자는 신용카드로 상품권 구매 시 ▲거래처(접대비) ▲직원(복리후생비) ▲사회공헌(기부금) ▲기타(기타비용)로 경비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접대비로 경비처리 할 시 상품권 사용에 대한 것이 아닌 구매한 신용카드 매출전표로 경비처리가 돼 문제의 소지가 있다.
법인 등은 상품권을 별도의 제한 없이 신용카드로 구매해 탈세 및 불법 로비 등 범죄에 사용해도 경비처리가 가능하고 세제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
이에 국회에는 홍익표·채이배·이학영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상품권법 제정안’ 3개가 계류 중이다. 이 제정안들은 상품권의 발행한도 제한, 자격·신고, 실적 보고 및 소비자 보호에 관한 규제를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상품권 일부가 회수되지 않고 사장되면서 발생하는 상품권 소멸시효 경과이익인 ‘낙전수입(미상환 상품권 수익)’이 연간 2000억원대로 추정되고 있어 이 같은 상품권 발행자의 낙전수입을 서민금융진흥원으로의 출연해 재원을 서민금융생활에 지원토록 명시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부담’
하지만 법 제정에 우려하는 시각도 상존한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영활동과 농·수산물 유통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무위 공청회 자료에 의하면 가뜩이나 소비 위축으로 유통업 종사자 및 중소 업체들의 경영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피해를 줄 수 있고 서비스업·유통업이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역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또 미상환 수익의 일부를 출연하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상환의무를 국가기관에 대신 상환한 것이 돼 이중의 채무를 부담할 수는 없기에 유효 기간이 경과한 고객들의 상품권 사용은 부득이 수취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상품권 발행 시 투입된 비용이 존재하는데 상품권이 회수돼 상품 매출로 연결 되어야만 비로소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미회수된 상품권의 수익은 단순 불로소득이 아닌 사전 투입된 비용의 회수 성격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에서는 모든 상품권 발행인에게 미상환 상품권 수익 출연을 의무화할 경우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부담이 될 수 있고, 외감대상이 아닌 발행기업의 경우 낙전수입의 규모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상임위에 제시했다.
상품권법 제정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어 향후 추이는 지켜볼 일이다.
국회 정무위 여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CNB에 “상품권법 제정을 놓고 일부 야당 측에서 반대 하고 있어 현재까지 뚜렷한 진척이 없는 상태”라며 “국정감사 이후에 법안 논의를 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