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신화’의 서정진 회장이 ‘갑질’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대한항공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해 미국 LA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던 도중 이코노미석에 탄 직원들을 퍼스트클래스 전용 칵테일 라운지로 불렀는데, 이를 규정 위반이라고 제지한 승무원들에게 외모 비하를 포함한 다양한 막말을 했으며, 이후에도 라면을 3차례나 다시 끓여오라고 요구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것.
논란이 불거지자 셀트리온은 즉각 사과문을 공개했다. 하지만 사과문에 담긴 내용은 ‘사과’라기 보다는 ‘해명’에 가까웠다. 이코노미석 직원들을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로 부른 건 직원들에 대한 배려였고, 승무원들과 의견을 나눴지만 폭언이나 막말은 없었으며, 라면 역시 익지 않아서 한번 더 제공받은 것일 뿐 3차례는 아니었다는 것.
셀트리온 측은 “서 회장의 투박하고 진솔한 성격에서 비롯된 소통의 차이라고 이해를 부탁드리고, 이에 예기치 못한 불편함을 느끼셨거나,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 분 한 분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문구로 사과문을 마무리했는데, 이는 '서 회장은 잘못한 게 없고, 모든 건 오해'라는 의미에 가깝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내부 보고서에 적시된 내용과 셀트리온 측이 자체 조사를 통해 내려진 결론 중 어떤 주장이 진실에 가까울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확실한 건 셀트리온 측의 기대와 달리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으며, 이 사안이 불거진 이후 셀트리온의 주가가 폭락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정도다.
조건부 사과는 사과 아냐
또 하나 추가하자면 셀트리온의 잘못된 사과문 역시 사태 악화에 일조했다는 것. 셀트리온의 사과문이 왜 잘못됐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선 바람직한 사과문에 포함됐어야 할 내용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한 마디 사과가 백 마디 설득을 이긴다”의 저자 존 케이도에 따르면, 공식적인 사과의 핵심 요소는 5R이다. 5R은 잘못의 확인(Recognition), 책임감 인정(Responsibility), 양심의 가책 표현(Remorse). 원상복구를 위한 배상 제시(Restitution), 재발 방지의 다짐(Repetition)으로 구성된다.
불행히도 셀트리온의 사과문에는 이런 내용들이 거의 없다. 잘못한 사항이 없으며, 따라서 책임질 일도 없다. 모든 건 오해에서 비롯됐으며, ‘만약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사과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바람직한 사과 방법에 대해 알리는 블로그 ‘SorryWatch’의 창립자인 수잔 맥카시의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 재교육 과정’에 따르면 가정법을 사용하는 사과 즉 ‘조건부 사과’는 사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내가 무례했다면 미안하다”같은 사과문은 실제로는 자신이 무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무례했다. 미안하다”가 바람직하다는 것. 하지만 셀트리온은 ‘조건부 사과’를 선택했다.
물론 오너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에 소속된 고용인이 오너의 잘못을 적시하는 사과문을 작성하기란 쉽지 않다. 셀트리온의 사과문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런 사과문의 효과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미 호미로 막을 수 있던 사안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앞서의 사례에서 배우지 못했다면, 비슷한 결말에 맞닥뜨리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