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한국어는 보호되고 있을까.
중국 진출 기업들의 ‘중문 브랜드 네이밍’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들었던 의문이다. 중국은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게 반드시 중문 브랜드명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한다. 다소 원음과 달라지더라도 굳이 중문명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국민들의 이해를 돕고 외국어로부터 중국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같은 세계화 시대에 유난이라면 유난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역시 자국어 보호를 위한 법적·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은 외래어 및 외국어 사용에 관대한 국가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외래어와 외국어로 도배된 번화가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이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언어 행태를 목격할 수 있다. 외래어를 자주 사용하긴 하지만 막상 글로 표기해야 할 때는 정확한 표기법을 몰라서 난감했거나, 또는 최근 많이 쓰이는 외국어 용어의 뜻을 몰라 되물어봤던 경험도 누구나 흔히 겪어봤을 법한 사례다.
무분별한 외래어·외국어 남용은 공적인 일을 처리해야 하는 공공기관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공문서에는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외국어, 한자어 등 어려운 용어가 빈번해 시민들의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애초에 공공기관의 이름에서부터 새로운 정책, 사업, 구호 등 다양한 부문에서 외국어와 외래어가 한국어를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글로벌 시대를 맞아 비전을 담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영문명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토부 산하의 공공기관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국토(land, location)의 L과 최고의 전문가(expert, excellence)의 X를 조합해 지난 2012년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생소한 영문명으로 인해 인지도가 낮은 대표적인 기관으로 꼽힌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와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자국어의 존립이 위협받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자국어가 위협받는 일이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지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국가들은 자국어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사회적 안전망을 확실하게 구축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일찍이 1976년 ‘프랑스 정화법’과 1994년 ‘투봉법’을 제정해 광고와 상품 명칭에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부과한다. 폴란드에서도 유사한 법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늦게나마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05년 우리말의 사용을 촉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국어기본법’은 우리말의 보전과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강력한 제재나 벌금 등의 강제성이 없는 탓에 실효성이 다소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의 조승래 의원은 공공기관 국어책임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책임관을 보좌하는 전문 인력을 둘 수 있는 법률안을 발의했고, 앞서 같은 당의 설훈 의원은 5년마다 설정되는 국어발전기본계획 수립 시 환류(feed back)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법적 개선이 이뤄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