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4-625합본호 윤지원⁄ 2019.01.23 14:22:13
삼성전자가 지난 연말 미국의 마케팅 전문 매체 애드에이지(AdAge)가 꼽은 글로벌 광고계 최대의 큰손으로 등극했다. 이 매체는 삼성전자의 2017년 연간 마케팅비를 바탕으로 1위에 랭크했지만, 정작 지난해 삼성전자는 평년보다 적은 마케팅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분기별 평균 광고선전비는 지난 7년 중 가장 적었다. 업계는 최근 3년 삼성전자 마케팅비의 가파른 오르내림이 스마트폰 사업의 성패와 궤를 같이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다소 소극적인 마케팅은 갤럭시 10주년인 2019년 더욱 강력한 공세로 전환할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한 나라 GDP와 맞먹는 마케팅비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 이하 애드에이지)는 마케팅과 매체에 관한 분석 및 뉴스, 통계자료 등을 발행하는 글로벌 매체다. 1930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설립된 애드에이지는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와 오토위크(Autoweek) 등을 포함해 54개 뉴스 및 잡지를 발행하는 미국의 미디어그룹 크레인 커뮤니케이션즈(Crain Communications)의 대표 브랜드다.
애드에이지는 1987년부터 연말마다 그 해의 글로벌 마케터 보고서를 발표해 왔으며 2016년부터는 이를 개편한 ‘세계 100대 광고주’(World's 100 Largest Advertisers) 리스트를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발표한 이 리스트에서 삼성전자는 2017년 한 해 동안 광고선전비와 판매촉진비를 합친 마케팅 비용으로 약 112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돼 1위에 랭크됐다.
112억 달러는 마케도니아의 2017년 국내총생산(GDP, 약 113억 달러, 통계청 KOSIS 기준)과 맞먹는 액수이며, 바베이도스와 토고의 GDP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글로벌 대기업'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직전 해에 비해 큰 폭으로 오른 마케팅비로 1위를 차지했다. 직전 해 발표된 리스트에서 삼성전자는 약 99억 달러(2016년 기준) 지출로 2위에 올랐었다. 당시 1위는 이 리스트의 단골 상위권인 미국의 생활용품업체 프록터 앤 갬블(이하 P&G)로, 2016년 7월 1일~2017년 6월 30일까지 약 105억 달러 정도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에 P&G는 전년과 거의 동일한 약 105억 달러로 2위에 랭크됐고, 삼성전자는 10% 가량 늘어난 금액으로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마케팅 업계의 큰손으로 여겨진 것은 이미 5년도 넘은 얘기다. 2013년 로이터는 삼성전자의 연간 마케팅비가 연매출액의 5.4%에 해당하며 이러한 비율은 글로벌 매출총액 상위 20개 기업 중에서 가장 크다고 보도했다. 당시 애플은 매출의 0.6%를, 제너럴모터스(GM)는 3.5%를 광고비로 지출했다.
22일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삼성전자의 연간 마케팅비는 10조 원 후반~12조 원 초반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2013년과 지난해에는 12조 원 이상을 지출했고, 가장 적었던 2012년과 2015년에도 연간 10조 9000억 원 이상이었다. 애드에이지가 글로벌 2위로 꼽은 2016년의 마케팅비는 약 11조 5126억 원, 1위로 올라선 2017년은 약 12조 6129억 원이다.
공시자료에 따른 2017년 마케팅비의 증가율은 약 9.5%, 금액으로는 1조 1000억 원 정도가 늘어났다. 이 금액 차이는 지난 8일 삼성전자가 지난해 연간기준 잠정실적을 발표하면서 밝힌 영업이익(58조 8900억 원)의 2%에 육박한다. 특히 광고선전비는 5조 3508억 원으로 전년(4조 4321억 원) 대비 21% 증가했는데, 연간 광고비로 5조 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었다.
급등 후 급감…광고선전비 롤러코스터
그런데 이처럼 수년간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최고점을 찍은 삼성전자의 마케팅비 총액이 지난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분기를 포함한 사업보고서가 아직 공시되지 않았지만 3분기까지 누적액으로 비교하면 예년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3분기까지 광고선전비로 누적 2조 8163억 원, 판촉비로 누적 5조 2655억 원, 합계 8조 818억 원의 마케팅비를 지출했다. 이는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던 직전 해의 1~3분기 누적 8조 9501억 원보다 10% 이상 감소한 금액이다.
1~3분기 누적 기준으로 지난해 판촉비는 이전 두 해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그런데 광고선전비가 전년 동기 대비 25%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3분기의 분기 평균 광고선전비는 9388억 원으로, 2012년 이후 분기 평균 광고선전비 1조 843억 원보다 13.5% 적고, 해당 항목 지출이 가장 집중됐던 직전 세 분기 평균 1조 5107억 원보다는 27.9%나 적다.
최근 3년간 삼성전자의 분기별 마케팅비(광고선전비 + 판매촉진비) 추이를 살펴보면, 대규모의 마케팅비 지출이 2017년 2~4분기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판촉비는 거의 언제나 일정 규모를 유지한 편이지만 광고선전비는 변화의 폭이 컸다. 특히 2017년 1분기에는 최근 수년 중 가장 적은 광고선전비를 지출한 까닭에 2분기의 급격한 증가가 두드러진다.
2016년 매 분기 1조 1200만~1조 1900만 원의 광고선전비를 지출하던 삼성전자는 4분기에 9911억 원으로 광고선전비 지출을 직전 분기 대비 12% 이상 줄였고, 이어진 2017년 1분기에는 8189억 원으로 또다시 17% 이상 줄였다.
2017년 2분기 삼성전자의 광고선전비는 직전 분기 대비 무려 88% 이상 늘어난 1조 5436억 원, 판촉비는 32% 이상 증가한 1조 8165억 원이었다. 3~4분기에도 기세는 이어졌다. 하반기 판촉비는 3~4분기 모두 2조 원을 넘겼다. 4분기 광고선전비 1조 6281억 원은 1분기와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세 분기 동안 고공 행진하던 마케팅비는 2018년 1분기 다시 급감됐다. 총액은 26%, 광고선전비는 거의 반토막인 44%나 감소했다. 평균 9000억 원이 넘는 분기별 광고비는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글로벌 1위 광고주의 위엄을 느끼기엔 소박한 규모였다.
스마트폰 사업과 마케팅비의 상관관계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마케팅비가 이처럼 큰 폭으로 오르내린 주된 원인으로 갤럭시 노트7 발화 이슈를 꼽는다. 리스트를 발표한 애드에이지 또한 “2016년 발생한 갤럭시 노트7 발화 사고에 따른 리콜 이후 이미지 개선을 위해 일시적으로 광고선전비를 대거 집행한 데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전에 삼성전자가 광고선전비로 1조 원 미만을 지출한 분기는 2016년 4분기와 2017년 1분기 두 차례 뿐이다. 이 시기는 방금 언급한 것처럼 갤럭시 노트7 발화 이슈가 발생했던 시기다.
최근 3년의 분기별 광고선전비, 판매촉진비, 총 마케팅비 변화 추이를 그래프로 보면 갤럭시 시리즈의 성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4월 갤럭시 S8/S8+와 갤럭시 노트8을 내놓으면서 전작의 아쉬움을 묻고도 남을 대성공을 거뒀다. S8은 예약판매 이틀 만에 55만 대의 사전 주문을 받았는데 이는 S7의 예약판매량보다 5.5배나 많았다. 결국 S8은 출시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글로벌 판매량 500만 대를 달성했다. 하반기에 출시된 갤럭시 노트8도 국내 예약판매 약 85만 대를 기록하는 등 크게 성공했다.
이는 2017년 말까지 매 분기 평균 1조 5000억 원 이상의 광고선전비를 쓰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한 성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무렵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외에도 QLED TV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가전 라인업을 확고히 갖추고, 인공지능(AI) 및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첨단 기술력을 더한 가전제품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노력을 더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광고비는 급격히 감소해 평균 1조원 미만이 됐다. 스마트폰 실적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예컨대 갤럭시 S9/S9+를 선보인 지난해 2분기 삼성전자 IM(IT & Mobile Communication) 부문은 매출 24조원, 영업이익 2조 6700억 원의 실적을 거뒀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 34% 감소한 실적이며, 직전 분기 대비로도 16%, 29% 감소한 것이다.
이경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무는 당시 실적에 대해 “시장 전반으로 프리미엄폰 수요가 위축돼 있고 제품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단말기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며 "프리미엄 제품 스펙이 고급화돼 가격이 높아지는 것도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S8 라인업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S9 라인업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웨이, 샤오미 같은 중국 기업들이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약진하며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떨어뜨린 것도 뼈아팠다.
IM부문 매출은 95%가 스마트폰에서 나온다. 증권업계는 S9 라인업의 부진을 바탕으로 지난해 IM부문 연간 영업이익이 10조 원 초반에 그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6년의 10조 8000억 원, 2017년의 11조 8000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영업이익에서 IM부문의 비중은 한때 50%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20% 미만 수준이다.
갤럭시 10주년, 출발부터 적극적
올해 삼성전자는 다시 글로벌 광고계 큰손다운 면모를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이 바로 갤럭시 10주년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2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갤럭시 10주년 기념 갤럭시 S10과 야심작 폴더블폰을 동시 공개하는 ‘갤럭시 언팩(Unpacked) 2019’ 행사(이하 언팩 행사)를 연다. 이를 위해 지난 11일 전 세계 모바일 업계 관계자 및 미디어에 초청장을 보냈고,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서 한글 옥외광고를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매년 이 시기에 새로운 모델을 선보여온 삼성전자지만, 업계는 올해의 언팩 행사가 예년과 달라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오는 25일부터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보다 닷새 먼저 다른 장소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매년 그 해의 전략스마트폰을 공개하는 자리로 MWC를 선택해 왔다. 삼성전자가 MWC에서 새로운 갤럭시 스마트폰을 선보이지 않은 해는 갤럭시 노트7 발화 이슈의 여파로 S8 라인업 출시 일정이 연기됐던 2017년뿐이다. 전 세계 모바일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모이는 MWC야말로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가 신제품을 선보이는 데 어울리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언팩 행사는 MWC가 아닌 단독 행사로 열린다는 점에서 새롭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행사는 갤럭시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더해져야 하는 만큼 MWC에 참가하는 여러 경쟁 업체들과 스포트라이트를 나눠 받기보다 삼성전자 홀로 주인공으로 빛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모두를 초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이번 언팩 행사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정이 MWC보다 일찍 잡혀있다는 점이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2017년에도 S8 출시 행사를 단독으로 열었던 적이 있지만 당시에도 MWC 이후였다. 올해는 삼성전자가 S10 라인업 및 폴더블폰을 경쟁업체들보다 일찍 선보여 이슈를 선점하고, 2019년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초반에 장악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3년 동안 연간 마케팅비가 1조~2조 원씩 차이를 보이며 오르내린 이유에 대해 “연간 총액 차이는 크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매년 비슷한 규모로 집행하고 있다”며 “영업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마케팅비 지출을 일부러 줄일 이유는 없고, 매 순간 글로벌 시장 환경과 현지 상황에 맞춰 집행한 결과”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