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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41연패 후 1승’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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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2호 정의식⁄ 2019.03.27 14:32:47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 = 연합뉴스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도입 이후 연패를 이어가던 국민연금이 소중한 1승을 챙겼다.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막아낸 것. 그간 당연시됐던 재벌 총수의 독주를 제지한 첫 사례라 그 의미가 크다.

앞서 지난 13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14일부터 20일 사이에 정기 주주총회를 여는 상장사 23곳 중 LG하우시스, 현대글로비스, 한미약품, 풍산, 현대위아, 서흥, 효성, 농심, 아세아, LG상사, 현대건설 등 11개 기업의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할 뜻을 밝혔다.

이후 국민연금은 11개 기업의 이사 보수 한도액 승인, 이사·감사 선임, 정관 변경 등의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그 모든 표 대결에서 ‘전패’를 맛봐야 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의결권을 보유한 회사와 대주주 측 원안이 모두 무사 통과됐고, 국민연금의 반란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2라운드에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19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1일부터 26일까지 주총을 여는 34개 상장법인 중 SK이노베이션, SBS콘텐츠허브, 하나투어, 네이버, SBS, 한국단자공업, 한국전력공사, 디와이, 대상, DB하이텍, 코오롱인더스트리, 셀트리온, 키움증권, 한글과컴퓨터 등 14개 기업의 이사·감사 선임과 이사 보수한도 처리 안건 등에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의결권 행사 내역 정보. 사진 = 국민연금

이같은 기조는 3라운드까지 이어졌다. 2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7일과 29일에 주총을 개최하는 30개 상장사 중 동아쏘시오홀딩스, KCC, 현대그린푸드, 대창단조, KT&G, HDC아이콘트롤스, 덕산하이메탈, 호전실업, 휴맥스, 동아에스티, 한솔케미칼, 한국카본, 와이지원, 신한금융지주, 이노션 등 15개 사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행사한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곳에서 전패가 예상됐다. 이미 진행된 SK이노베이션, 하나투어, 셀트리온, 키움증권, 한글과컴퓨터 등의 주총에서 모두 대주주 측 원안이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 회사들과는 별개로 국민연금은 지난 22일 고의분식회계 논란이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주총 모든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여기에서도 국민연금은 패배의 쓴 잔을 들어야 했다. 자칫하다간 ‘41패 0승’으로 마무리될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증권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무용론’이 확산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주주와 계열사의 지분율이 높은 국내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감안하면, 5~10% 내외의 국민연금 지분으로는 대주주의 지배력에 맞서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진 견제가 문제”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24일 773개 상장사의 협의체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국민연금이 지나친 경영진 견제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스튜어드십 도입 첫 해, ‘변화의 바람’ 불까?

이런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이번 정기 주총 시즌의 최대 이슈로 주목받던 대한항공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반란'이 성공을 거둔 것.

먼저,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는 25일과 26일에 걸쳐 열띤 논쟁을 벌인 끝에 27일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에 따르면 조 회장은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27일 열린 대한항공의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66.66%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지만, 이날 조 회장이 확보한 지분은 약 2.5%가량 모자랐다. 그 결과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후 첫 표결 승리로 사내이사 연임 부결이라는 큰 성과를 얻은 셈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그간 ‘거수기’로 간주됐던 국민연금과 여타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등 참석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물론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29일에는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주주총회가 열린다. 석태수 한진칼 대표의 사내이사 연임을 두고 대주주인 조 회장 측(28.95%)과 2대 주주인 강성부펀드(12.01%)가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3대 주주인 국민연금(6.7%)의 선택에 따라서는 또다른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어쨌든 이번 ‘1승’ 적립으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작지만 큰 걸음’을 내딪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거대 재벌의 전횡 논란이 불거져도 표결에서 앞서는 대주주는 끄덕없고 애꿎은 소액 투자자만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표결로 국민연금의 적절한 의결권 행사가 기업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주의 환기는 물론 개별 투자자의 지분가치 향상에도 도움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지나친 관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 걷어낸다면 우리 기업 문화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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