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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26)] 스물두 번의 발신과 그 수신의 이야기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발신자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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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7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19.05.20 09:07:19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레지던시(artist-in-residence)는 작업을 위한 공간이 필요한 작가, 새로운 환경에서 영감을 받길 원하거나 새로운 소통을 원하는 작가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작업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들은 입주 기간 동안 국내외 전시, 워크숍 등에 참여한다. 작가가 낯선(새로운) 장소에 일시적으로 머무르며 작업하는 상황은 변화된 미술의 개념과 형식, 작업 과정 등을 보여준다. 이동하며 작업하는 작가는 유목민과 같은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레지던시 기간 동안 만들어지는 작업에는 특별한 장소성(지역성)이 반영될 확률이 높아진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레지던시는 작가와 보다 가깝게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이다. 많은 레지던시(창작스튜디오)들이 오픈 스튜디오와 대중을 위한 교육 등을 진행하여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 소통을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 4월, 오픈 스튜디오 ‘발신자 조회’(2019.4.17.~4.21)가 진행 중인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를 방문했다. 2007년 개관한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작가들에게 창작 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창작능력을 배양하며, 정보와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줌으로써 동시대 예술의 담론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신자 조회’라는 제목은 일 년 동안 예술을 매개로 관객(대중)들에게 보내진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 발신자가 누구인지 찾아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12기 입주 작가 스물두 명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을 지나 개별 작가들의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작가들과 만날 수 있었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 오픈 스튜디오 ‘발신자 조회’, 이미지 제공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그중 장용선 작가의 스튜디오에는 얼마 전 열렸던 개인전 ‘Where Is Your Querencia?’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소의 뼈가 한가득 쌓인 전시장의 모습은 충격적이면서도 압도적이었다. 당시 설치되었던 소뼈를 직접 볼 수 있었고, 작업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이다 보니 관련된 자료들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소뼈를 수집하고 세척하여 구워내는 고된 작업 과정이 상상되었다. 작가는 음식점에서 버려진 소뼈를 도자기 가마에 넣고 소성한 뒤 전시장을 가득 채워 용도폐기 된 것들의 영혼에 장례를 치러주는 작업이라 이야기해 주었다. 가스가마 소성을 하면 뼈가 하얗게 되고, 항아리에 뼈를 넣고 뚜껑을 닫은 뒤 굽는 가스가마 갑발소성을 하게 되면 뼈가 검정색이 된다고 한다. 작가는 숯처럼 검게 변한 뼈를 이용해 그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작업이 매우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고 말하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내 작업이 잔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잔인함의 대부분은 국물이 우러나고 고기가 발린 채 버려진 뼈에 이미 담겨 있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소뼈의 형태는 디자인 패턴으로 보일 정도로 인위적이다. 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이다. 오직 인간의 편의만을 위해 생겨난 결과물이다. 인간의 폭력성, 착취되고 수단화된 동물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하나씩 방문하면서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압축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작가와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이들이 다음에는 어떤 곳에 자리 잡을지, 새롭게 자리 잡을 그 특별한 장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장용선, ‘Where Is Your Querencia?’, 소머리(950°C 가스가마 갑발소성), 음식점에서 버려진 소뼈가루(900~1100°C 가스가마 갑발소성), 코일매트, 356 × 1000 × 530cm, 2019, 이미지 제공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자신의 작업 정확히 알고 조급하지 말아야”
한준희 학예연구사와의 대화


Q.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가 작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간단한 소개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만이 가진 차별성이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2007년에 개관했으니 벌써 12기다.

A.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애초에 레지던시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그래서 전시장과 입주 작가가 기거하는 스튜디오의 구조가 매우 효율적이다. 동시대 미술가들을 위한 공간이니 전시장도 회화에서부터 조각, 설치미술, 미디어아트(media art)에 이르는 작품들을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도심에 위치해 생활 편의성이 좋다는 점도 특징이다. 청주시립도서관과 붙어 있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업을 위한 자료 수집에도 도움이 된다. 대중적 접근성이 높은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전시다. 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로 입주 작가들의 개인전이 열린다. 입주 스튜디오 바로 옆이 전시장이어서 작가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와볼 수 있다. 자신의 작업이 전시될 장소(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 때문에 전시 기획 단계부터 작가와 큐레이터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준비할 수 있다. 다른 레지던시가 그렇듯 공동워크숍과 평론가 매칭 프로그램 등도 진행한다. 이번 전시가 마무리되면 곧이어 13기 작가들이 입주한다. 이번에는 스무 명의 작가들이 선정되었다.

Q. 작가 선정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A. 심의위원단을 구성해서 선정한다. 당연히 작업이 중요할 것이다. 선정된 작가들을 보면 작업의 발전 가능성뿐 아니라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와의 시너지 효과가 어느 정도 가능할지, 작가가 계획하는 작업이 레지던시 입주 기간 동안 구현 가능한 것인지 등이 중요한 것 같다. 그동안 신진에서부터 중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입주했다.
 

장용선, ‘Where Is Your Querencia?’ 전시 전경, 2019,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이미지 제공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Q. ‘발신자 조회’라는 제목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이번 오픈 스튜디오는 12기 입주 작가들의 1년간 작업과 활동을 되돌아보는 행사다. 학예연구사로서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을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특별히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A. 일년간 스물두 개의 전시를 진행했다. 대중을 향해 스물두 번의 발신을 한 거다. ‘기획자와 작가의 입장에서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발신이지만 대중에게는 스팸과 유사한 무의미한 발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계속 전시(메시지)를 송신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메시지가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스물두 개의 전시 중 마음에 들거나 관심이 가는 것이 있다면 그 발신자를 확인해보고 대화를 시도해보라는, 관객을 향한 또 하나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미술의 문턱을 낮추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미술계의 전문적인 언어로만 전달하는 방식을 벗어나 대중도 공감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고 싶었다. 미술의 언어가 필요 이상으로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일 때가 있다는 것은 작가들과의 대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Q. 대부분의 신진 작가들에게 레지던시는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에 중요한 과정처럼 여겨진다.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A. 신중히 답해야 할 것 같다. 지금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자신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며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오는 데에 그친다면 의도를 전달할 수도 없고, 공감을 얻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조급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예술가들의 세계도 정말 치열하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 아니다. 예술적 행위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 힘들다. 그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마인드 콘트롤(mind control)이 필요하다. 미술계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는 있지만, 그것의 실체는 선명히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불안함이나 조급함이 파생되는 것 같다. 비교에 의한 조급함 같은 것도 조심해야 한다. 외부의 인정 여부를 떠나 스스로 확신을 갖고 작업을 해야 한다.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이샛별, ‘녹색 에코(Green Echo)’ 전시 전경, 2019,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이미지 제공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녹색 힐링의 뒷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12기 입주 작가 이샛별과의 대화


Q. 미지의 세계, 초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를 그린 것처럼 보였던 회화들이 역사적이고 사회정치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라 하여 조금 놀랐었다. 그와 같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구체적인 사회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은 아니다. 상징으로 제시하여 사람들의 심리에 울림을 주려 한다. 대학생 시절 놀이패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중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내가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는 한국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전개되던 때이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미술을 접하면서 내 작업도 보다 은유적으로 변했다.

Q. 스튜디오에 전시된 작품들이 대부분 초록색이다. 얼마 전 열렸던 개인전 ‘녹색 에코(Green Echo)’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보인다. 숲(자연)의 이미지와 초록색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도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A. 녹색은 2013년도의 작품에서부터 등장한다. 당시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힐링이라는 단어가 소비되다 보니 치유와 회복이라는 원래 의미가 사라진 것 같았다. 힐링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생겼다. 그래서 힐링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녹색 에코’ 시리즈는 우리가 그렇게 외친 힐링(녹색)이 우리에게 되돌아옴을 그린 것이다. 보통 초록색은 자연을 연상시키고 자연은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장소다. 그러나 나의 작업은 편안한 숲을 그린 것이 아니다. 과도하게 가득 차 터질 것 같은 숲이다. 힐링의 숨겨진 모습이라 이해하면 된다. 그렇다고 어두운 측면만 다룬 것은 아니고 중의적이고 양가적인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다. 힐링을 외치는 시대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희망도 없이 구조주의 속에 포획된 현실을 재구성함으로써 고정된 현실에 균열(틈)을 만들고자 했다. 그 틈에서 상상력의 가능성이 담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도 함께 담았다. 한편 ‘더 베일(The Veil)’ 시리즈는 기념비와 관련된 작업이다. 동상(기념비)이 상징하는 영웅, 중요한 역사적 순간은 대부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다. 내 작품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남성과 여성이 함께 그것을 베일로 싸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샛별, ‘녹색 에코6(Green Echo6)’, 캔버스 위에 유채, 180 × 300cm, 2018, 이미지 제공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Q. 실재하는 숲을 그린 것인가?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작품이 판타지의 세계를 그린 것 같다.

A. 바탕이 되는 숲 이미지는 있다. 그러나 하나의 숲을 그린 것은 아니다. 호주, 제주도, 우연히 지나가다 만난 숲,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미지 등 다양한 숲을 조합한 것이다. 내 작업이 미래 풍경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반응이다.

Q.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의 경험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무엇보다 스튜디오 공간과 전시 공간이 참 좋다. 개인 작업실과 달리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한다는 점도 레지던시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입주한 작가들의 작업이 정말 다양하다. 서로 관심 영역이 다른 작가들이 모여 대화를 하다 보면 자극도 받고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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